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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공무원에 임용된 뒤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지난해 11월의 어느날. 유년을 함께 보냈던 한 친구의 휴대폰으로부터 발송된 문자메시지로 부음을 받은 적이 있다.

놀란 마음으로 퇴근하자마자 서둘러 빈소에 가니 나처럼 황망한 마음으로 허둥지둥 모여든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생전에 늘 친구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일에 정성을 다하던 정래는 영정사진으로 우리를 맞았다.

너무 놀라 우황청심환을 연달아 2개 먹고 왔다는 친구를 비롯해 내 유년의 친구들은 모두 술에, 슬픔에 취해 경황없이 허둥대며 유년의 친구 정래를 보내야 했다. 친구들을 늘 한 자리에 모으는 일에 정성을 다하던 정래의 주검을 앞에 하고 나를 일으키려 애쓰는 통에 정래를 돕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며 이제부터라도 내가 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 동반자가 되기위한 모임을 제안하다

그후 몇몇 친구들 간에 이런저런 논의가 오가던 중에 한 친구가 모임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원해 그 일에 합류했다. 2005년 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서본 경험을 통해 난 주변의 사람들에게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졸업한 지 38년만에 가지게 되는 이번 행사도 일회성 행사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은 각자 앞만 보며 살기 급급했지만 이번 모임을 통해 누구나 겪게 되는 삶의 주기마다 서로를 챙길 수 있는 협의체를 꾸려야 한다는 생각에 여가를 이용해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가며 함께 준비하는 친구들과 상의하며 공감대를 넓혀갔다.

나는 지금의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전교생이라고 해야 450명인 충남 논산의 왕암국민학교 20회 졸업생이다.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 격인 우리 세대는 취학 아동이 많아서 도회지의 학교들은 2부제, 3부제 수업이 일상적이었다. 우리학교가 있는 충남 논산 가야곡면도 4개의 국민학교가 있었다.

 1974년 4학년때의 소풍사진으로 가운데 계신 선생님이 이기서(63, 공주 신관동)선생님이시며 초임지로 발령을 받으셔서 6학년 담임도 하셔서 '38년만의 소풍'에도 참석하셨다.
▲ 그 시절의 소풍사진 1974년 4학년때의 소풍사진으로 가운데 계신 선생님이 이기서(63, 공주 신관동)선생님이시며 초임지로 발령을 받으셔서 6학년 담임도 하셔서 '38년만의 소풍'에도 참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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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함께 꾸려갈 모임의 명칭은 함께 입학했지만 다른 학교로 전학 갔던 친구들도 있어 입학년도를 나타내고, 한 가족처럼 앞으로 10년을 하루처럼 70년을 어울려 살자는 의미를 담아 '칠일이네'로 정했다. 아울러 이번 행사는 나무도시락에 싼 김밥과 삶은 달걀, 사이다로 꾸린 가방만으로도 풍선처럼 두둥실 뜬 마음으로 신나게 나섰던 당시의 소풍을 38년만에 가진다는 의미를 담아 '38년만의 소풍'으로 정하고 그때의 친구들,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연락했다.

모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 보석이는 그 시절 소풍지였기 때문에 이번 행사장으로 정해진 성겁들저수지(탑정저수지)의 붕어를 손수 낚시해 당일 저녁메뉴로 제공했다. 충북 보은의 대농으로 성장해 한우를 300여 마리 키운다는 충식이는 소고기 10킬로그램을 후원했다. 농사지은 무농약 쌀, 경비를 후원한 친구들, 특히 개인일정으로 참여를 못하면서도 비용을 후원해준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5월 1일 저녁, 어버이날을 앞두고 고향 부모님을 뵈러온 형님들 그리고 동생 내외와 화목한 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며 지낸 지난 10년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장애를 얻고 아무도 하지 못한 '완전한 재활'을 해내겠다며 몸부림쳐 유년을 함께했던 친구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돼 감개무량했다. 그렇게 짧은 밤을 보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5월 2일 아침 성겁들 저수지변의 계백장군유적지옆 '계백쉼터'로 향했다.

학교 다니던 시절 소풍지로 찿곤 했던 탑정리 저수지변은 백제의 패망을 막으려 결사항전했던 계백장군 유적지로 황산벌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붕어를 여러 마리 가져온 보석이가 일찍 도착해 붕어를 손질했고, 음식을 일일이 준비해온 은자도 도착해 준비를 도왔다.

연이어 도착하는 친구들이 모두 달려들어 행사 준비를 마치니 잘 짜인 올림픽의 개회식처럼 미리 예고하신 시간에 6학년 담임이셨던 이기서 선생님(63, 공주신관동)과 김경수 선생님(69, 대전 둔산동)이 행사장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오셨다.

행사장에도 주차장이 있는데도 굳이 멀리 차를 두고 오시는지에 대해서는 38년 만에 선생님들과 함께한 감동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에야 알 수 있었으니…. 제자들을 철저히 배려하신는 선생님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그 시절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함께한 "38년만의 소풍"은 환호와 탄성이 교차하는 감동의 행사였다.
▲ 너른 잔디밭에서 환호와 탄성이 교차했던 "38년만의 소풍의 연회 모습 그 시절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함께한 "38년만의 소풍"은 환호와 탄성이 교차하는 감동의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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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서선생님의 건배제의로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38년만의 소풍"에서 가진 감동과 환희의 연회를 마쳤다.
▲ 선생님의 건배사로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 이기서선생님의 건배제의로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38년만의 소풍"에서 가진 감동과 환희의 연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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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담임선생님들을 에워싼 친구들이 환호와 탄성이 교차하는 38년만의 만남을 즐기는 사이 선수(?)답게 택시로 서대식 선생님(70, 논산시 내동), 유강선 선생님(75, 논산시 가야곡면)이 도착하셨고 그제야 우리는 준비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감동의 시간이 무르익어가던 때 리기서 선생님이 몇몇을 부르시더니 "7시가 되면 선생님들은 갈 것이니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하셨다. 대리운전을 부르겠다고 하니 "운전병을 데리고 왔으니 걱정말라"는 말씀을 하셔서야 왜 멀리 차를 두고 걸어오셨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아차 싶어 준비한 선물을 들고 허겁지겁 차로 가보니 사모님이 운전석에 홀로계신 게 아닌가? 제자들에게 부담주지 않으려 38년 만에 만나는 자리에서마저도 치밀한 계획으로 제자들을 배려하시는 선생님의 '절제된 감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선생님은 즐거움의 자리에서마저 우리에게 절제된 사랑을 통해 또 다른 가르침을 주셨다.

그렇게 큰 감동이 있는 '38년만의 소풍'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이번 행사는 준비하는 일단의 사람들만이 아닌 모두가 준비하고 모두가 진행했던 우리 모두의 축제였다. 준비단계에서는 손수 기른 소고기, 쌀, 낚시한 붕어, 비용의 협찬이 줄을 이었다. 행사 중에는 전혀 계획이 없었음에도 고기를 굽고, 사진을 찍고, 음식을 나르고, 선생님들을 세심히 살피며 접대하는 일 등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했던 친구들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주최자였던 우리들의 진정한 '축제'였던 것이다.

또한 이번 축제를 통해 친구의 단계를 넘어서 육친의 정을 친구들 사이에서 느꼈는데 뒷마무리에 34명 중 10명이 남아 함께했다. 먼저 떠나는 친구를 위해 행사 후 남은 음식을 정성껏 챙겨주는 모습은 친형제 자매의 모습이었다.

병아리같이 유년을 함께한 친구들이 큰 감동과 환희 속에서 '38년만의 소풍'을 마쳤다. 이제 1971년도에 왕암국민학교에 입학한 20회는 이번에 결의한대로 '칠일이네'를 결성해 학교의 동창생이 아닌 인생의 동반자가 되려고 한다.

 병아리같이 유년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38년만의 소풍"을 큰 감동속에서 마칠 수 있었으며 그 일을 만10년간의 재활로 당당히 함께할 수 있었다.
▲ 왕암국민학교 20회의 '38년만의 소풍"단체사진 병아리같이 유년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38년만의 소풍"을 큰 감동속에서 마칠 수 있었으며 그 일을 만10년간의 재활로 당당히 함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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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간간이 내 소식을 접하던 친구들과 선생님들 앞에 당당히 나서 그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칭찬과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해서 성황리에 끝내면서 장애를 얻고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며 재활에 몰두하던 지난의 상처를 많이 보상받을 수 있었다.



태그:#서치식, #왕암국민학교, #이기서선생님,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 #38년만의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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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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