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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하는 국민들의 건강이 걱정됐다. 그래서 담뱃값을 올렸다고 했다. 이제 4500원짜리 담배를 사면 3300원이 세금이다. 하루 한 갑 흡연자는 1년에 약 120만 원 정도를 세금으로 낸다. 9억 원대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내는 재산세에 맞먹는 금액이다. 그렇게 정부의 국민 건강 걱정은 연간 2조8300억 원 정도의 세수 확보로 이어졌다.

하지만 걱정마라.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다. 우연일 뿐이다. 그런데 우연치곤 너무 빈번하다. 무상보육 예산 떠넘기기,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추진, 연말정산 세금폭탄, 13월의 분노, 서민의 울분만 쌓여간다. 그럼에도 '증세는 없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들이 말하는 증세는 무슨 증세란 말인가.

뭔가 거꾸로 가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부시의 감세정책을 소득 계층 98%에 대해서 연장하고 상위 2%에 대해서는 소득세율을 39.6%로 올리는 부자증세를 단행했다. 동시에 연소득 100만 달러 이상에게는 '공정분배세', 일명 '버핏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도 최고세율을 41%에서 45%로 올렸다. 100만 유로 이상의 고소득자에겐 2년 동안 최고 75%의 부유세를 부과했다. 일본도 소득세 최고 세율을 40%에서 45%로 올렸다.

이런 기조 속에서, 캐나다에서는 진보와 보수 진영의 '부자증세'에 대한 뜨거운 토론이 있었다. <부자가 천국 가는 법>은 그 치열했던 공방을 고스란히 담았다. 우리도 이 토론을 통해 뭔가 해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세수 줄지 않을 것" vs. "창업 의욕 꺾을 것"

<부자가 천국 가는 법> (폴 크루그먼·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뉴트 깅리치·아서 래퍼 지음 / 양상모 옮김 / 오래된생각 펴냄 / 2015.01 / 1만 원)
 <부자가 천국 가는 법> (폴 크루그먼·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뉴트 깅리치·아서 래퍼 지음 / 양상모 옮김 / 오래된생각 펴냄 / 2015.01 / 1만 원)
ⓒ 오래된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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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0일, 캐나타 공공정책 토론 '멍크 디베이트'에는 네 사람의 거장이 등장했다. 증세 찬성파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그리스 총리가, 반대파에 아서 래퍼 박사와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이 자리했다.

토론 전 3000명의 청중들은 부자증세에 대해 58%가 찬성, 28%가 반대, 14%가 미정했다고 투표했다. 이 성적표는 토론이 끝난 후 다시 집계된다.

먼저 크루그먼 교수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쟁점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좋은 정책에는 예산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누군가의 세율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둘째, 미국의 세율 변화와 래퍼 곡선을 통한 통계적 수치는 부자증세가 세수 확보로 이어진단 사실을 보여준다. 셋째, 클린턴 정부의 예를 들면서 세금을 올리면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래퍼 곡선에서 세수가 감소로 돌아서는 최고 세율 지점이라는 것이 상당히 정확하게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70%입니다. 아마도 80%나 그 이상이라도 세수는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학 교수, <부자가 천국 가는 법> 중에서

이를 깅리치 전 의장이 받았다. 그는 세금을 올려도 부유층은 유능한 전문직을 통해 세금을 회피할 것이며, 오히려 창업 의욕을 꺾을 것이라 지적했다. 또한 세계적으로 큰 정부는 사라져 가는 추세라며 "성공한 사람을 처벌할 생각 말고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자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기억하세요. 이것은 자선이나 사회공헌, 도덕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과세하는 힘은 파괴하는 힘입니다. 과세하는 힘은 강제하는 힘입니다." -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 <부자가 천국 가는 법>에서

"사회 일체성 유지" vs. "경기 침체 부른다"

뒤이어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증세를 주장했다. 자신이 총리에 취임할 당시 그리스는 보수 정권을 거치며 탈세가 횡행하고 투명성이 부족해 경제 성장의 혜택이 밖으로 줄줄 새고 있었다는 것. 불평등은 공정·정의·신뢰란 사회의 기본원리를 약화시키며,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 요체라 지적했다. 이를 위해 부유층의 증세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회의 일체성을 위해 세금으로 인적 자원에 투자한 국가들은 경쟁력 높은 경제를 소유했고, 평등이 보장되는 나라는 수명·건강·고용 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근거 지표를 제시했다.

"국가 경쟁의 시대이기 때문에 철저히 경쟁해야 한다고 보수파는 주장합니다. 신흥경제국과 경쟁하기 위해 세율을 낮추고 임금을 줄여라. 복지를 줄이고 환경 기준을 완화하라. 교육 예산을 줄이고 건강 보험이나 연금 등의 안정망을 축소하라고 말입니다. 즉, 사회의 일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계약의 토대를 무너뜨리라고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그리스 총리, <부자가 천국 가는 법>에서

래퍼 박사는 과거 미국의 상황을 예로 들어 증세를 반대했다. 1913년 7%에 불과하던 최고세율이 1919년 77%까지 치솟았으며 이는 불황을 불러왔고 제1차 세계대전의 씨앗이 됐다고 주장했다. 1920년 공화당이 승리해 세율을 25%로 낮추자 다시 호황이 찾아왔다고 덧붙였다.

또한 부유층은 충분히 세금 회피를 할 것이라며, 차라리 포괄적인 세제 개혁을 주문했다. 내국세법·자본이득·비영리법인·자선기부 등에 일률적 세금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영국의 상황을 살펴봅시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취임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소득세 최고 세율을 40%에서 50%로 올린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더블딥을 초래해 세수도 꽤 줄어들었습니다." - 아서 래퍼 박사, <부자가 천국 가는 법> 중에서

치열했던 토론, 청중들의 평가는?

이 후로도 네 사람은 논리와 수치를 들이밀며 치열하게 대립한다. 그러나 끝내 합의를 이루진 못했다. 3000명의 청중은 어떻게 지켜봤을까? 토론 후, 부자증세 찬성에 투표한 비율이 70%로 치솟으며 반대를 선택한 30%를 압도했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부자증세에 대한 필요성이 사람들의 마음에 더 와 닿았단 말이다.

한국의 복지지출 수준(9.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8%)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그러나 조세부담률(19.8%)은 OECD 평균(25%)보다 낮다. 조세부담률을 높여 세수를 올리고 급속한 노령화에 따른 복지수요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근거다.

책을 옮긴 양상모씨는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복지를 대폭 학대하되 증세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노인 20만 원 기초연금 지급 공약·4대 중증질환 의료비 보장 공약을 대폭 후퇴"시키고 "담뱃값 인상·무상보육 예산 파동·주민세와 자동차세 등 지방세 인상을 추진했다"면서 "정부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증세에 대한 논의가 당당히 무대에서 펼쳐지기보단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표만 의식해 '아님 말고'식으로 슬며시 들이미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공허한 공약으로 남기 부지기수다. 네 거장의 토론처럼 공론의 장에서 청중들의 손에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당당함이 부럽다. 계속해서 '증세 없는 복지'만 되뇌지 말고 좀 솔직해지자. 그럴 때다.

덧붙이는 글 | <부자가 천국 가는 법> (폴 크루그먼·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뉴트 깅리치·아서 래퍼 지음 / 양상모 옮김 / 오래된생각 펴냄 / 2015.01 / 1만 원)



부자가 천국 가는 法 -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불평등에 관한 논쟁

폴 크루그먼 외 지음, 양상모 옮김, 오래된생각(2015)


태그:#부자가 천국 가는 법, #오래된생각, #폴 크루그먼, #뉴트 깅리치, #아서 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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