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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규 담임교사가 되면서, 지키고 싶었던 일들이 몇 가지 있었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지키고 싶었던 일은, '아이들을 편견 없이 생각하기'였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지키기 힘든 일들에 대한 것들이 곧 자신의 좌우명이 되고 다짐이 되듯이 나의 다짐에도 위태로운 순간이 찾아왔다.

첫 번째 이야기

어제는 남아서 할 일을 마저 하고 가라는 나의 부탁에도 나 몰래 우리 반을 도망쳐 나갔다. 물론, 오늘도 숙제는 빈 공간이다. 아침 내내 머리카락만 계속 만지작거릴 뿐, 아침에 해야 할 일들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매일이 제자리걸음이다. 나는 완벽한 선생님이 아닌지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사랑스럽지는 않았다. 듣기 좋은 말이 그 아이에게 닿을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급식시간 급식을 먹기 시작한지 무려 40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무 말 없이 수저, 젓가락을 내려두고서는 급식판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그 친구를 답답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래도 급식을 늦게 먹는 편이긴 했지만, 오늘은 아예 먹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못 먹겠어? 배불러?"
"더 못 먹겠으면 정리해서 들어가자. 이제 5교시 시작할 시간도 다 됐어."
"하... 선생님한테 뭘 얘기를 해 줘야지. 이제 다른 학년 점심시간이야."
"... 일어서. 가야 돼."

아이는 내 물음에 어떠한 대답도 없었다. 답답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뱉은 말은 싸늘한 기운이 담겨있었다. 급식이 먹기가 싫으면 얘기를 해야지, 왜 나에게 아무 말도 없는 것일까? 그냥 대답 없이 버티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화가 났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교실로 향했다.

그 사건이 있었던 날 오후, 아이들은 다 빠져나간 빈 교실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를 물끄러미 보는데, 그 친구 책상 위에 수상한 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혀에 난 혓바늘을 치료하는 '알보칠'이라는 약이었다. 아차, 싶었다. 왜 급식을 먹지 못하고 입을 다문 채로 내 물음에도 답이 없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도 급식을 먹지 못하고 끙끙 대는 아이에게, "혓바늘 때문에 못 먹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왜 전날 급식소에서의 아이 반응을 걱정하기보다 화가 먼저 났을까. 아마, 내가 이 아이를 비뚤어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 반의 반장이 급식을 먹지 못하고 앉아 있었더라도 과연 내가 걱정보다 화를 먼저 냈을까?

두 번째 이야기

또, 싸우고 말았다. 싸우는 날이면 불러다가 행복한 내일을 같이 다짐하지만, 오늘도 여지없었다. 여자 아이들이 몰려와 그 아이의 잘못들을 낱낱이 고자질한다. 본래 말을 툭툭하는 성격이라 친구들과 다툼이 잦다. 나는 역시, 완벽한 선생님이 아닌지라 매일 다른 친구들의 고자질 대상이 되는 이 아이가 그저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도 이 친구에 대한 고발이 내 귀로 들어왔다. 아직, 나는 점심을 먹고 교실에 채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고자질이다. 청소시간에는 청소하는 아이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교실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는데, 의자를 책상에서 내려 앉아 책을 읽고 있다고 한다. 한 숨을 한 번 푹~ 쉬고, 교실로 향했다.

"교실 밖으로 나오세요."
"우리 청소시간에는 청소하는 친구들 방해하지 않기로 했잖아."
"아니, 제 쪽은 청소 다 됐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의자 내리고 앉았어요."
"약속했잖아. 교실에 들어가지 않기로. 왜 자꾸 선생님 실망시키니?"

아이는 울먹였다. 내가 하는 말들에는 깊은 한숨이 묻어났다. 솔직히, 계속되는 아이와의 마찰에 마음이 지친 상태였다. 사실, 청소가 다 되었다면 교실에 들어가 앉아도 상관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의 말썽이 괘씸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아이에게 반성문을 요구했다.

아이는 A4 한 장을 가득 채운 반성문을 나에게 가져왔다. 반성문에는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 그리고 자신에 대한 한탄이 가득했다. '선생님이 본 학생들 중에서 제가 최악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제가 생각해도 저 자신이 최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 왜 이럴까요?', '전 안 될 것 같아요.'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이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는지, 반성문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사실, 오늘의 사건은 반성문을 쓸 일도 크게 잘못한 일도 아니였다. 분명한 행동의 이유가 있었고,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하니까 교실에서 나가자는 너그러운 말로 충분히 해결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조금씩 비뚤어져 간 안경으로 이 아이를 바라보고 가시 박힌 말로 아이를 대했다.

진짜 다짐의 위기는 비뚤어진 선생님인 '나'이다

정작,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편견 없이 아이들을 생각하겠다는' 다짐은커녕, 다짐을 지키지 않고 있는 나를 전혀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난 나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아이들을 사랑하겠다던 내가 뭘 하고 있는지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나로 인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 받았을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나는 다시 다짐을 마음에 새기고, 아이들에게 다시 처음처럼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다짐의 위기는 비뚤어진 안경을 끼고 아이들을 대한 선생님 나 자신의 문제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아이들을 위해, 힘을 내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나는, 두 아이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서 책상 서랍 안에 넣었다. 짧은 편지 하나로 아이와 나의 관계가 한 번에 나아질 수는 없겠지만, 나는 꼭 나의 미안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전하고 싶었다.

'선생님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매일 듣기 싫은 말만 해서 미안해. 아직은 선생님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지만, 나중에라도 선생님한테 서운하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이야기해 줘.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게.'

'반성문 읽었는데, 선생님이 그동안 너에게 선생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상처 주는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어. 선생님이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전 안될 것 같아요가 아니라 우린 할 수 있어! 다시 힘내서 파이팅 하자!'

아직 나는 그냥 모든 게 서툴러서 아는 길도 돌아가고 쉬운 것도 실수하는 그런 신규교사이다. 그런데 그 문제들이 나 자신이 피해를 보고, 혹은 일을 못한다고 선배 선생님들께 내가 꾸중을 듣는 것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지만, 경험이 적은 나의 크고 작은 실수들이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되는 이 순간은 정말 견디기가 힘들다. 단지, 이 문제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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