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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관계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에 의하여 그 관계가 명확히 결정된다. 하지만 부자관계는 그 관계 확정을 위한 별도의 요건이 필요하므로 이를 위해 민법상 친생추정제도가 도입되었다. 민법에 따르면 처가 혼인 중에 포태한 자 또는 혼인관계 종료 뒤 3백일 안에 출생한 자는 아버지의 자로 추정한다. 이처럼 혼인 중에 포태된 자(子)는 결국 전남편(夫)의 친생자로 추정되며(민법 제844조 제1항), 이러한 친생추정은 원고적격과 제소기간이 엄격한 친생부인의 소에 의해서만 깨뜨릴 수 있도록 제한되고 있다(민법 제846조, 제847조).

현실에서는 이를 회피하기 위해서 가령 모(母)가 자(子)에 대한 전남편의 친생추정을 회피하기 위하여 이미 출생한 자(子)의 출생신고를 연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즉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子)의 입장에서는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급여에 관한 법적 지위에 공백이 생기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30일 헌법재판소는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를 전남편(夫)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민법 제844조 제2항 중 "혼인관계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에 관한 부분이, 입법재량의 한계를 일탈하여 모(母)가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결정(2013헌마623)을 선고하였다.

사례를 보면,

청구인(母)은 2005. 4. 25. A(夫)과 혼인하였다가 2011. 12. 19. 이혼에 합의하고 서울가정법원으로부터 협의이혼의사 확인을 받은 다음 2012. 2. 28. 관할 구청에 이혼신고했다. 이후 청구인은 B(生父)와 동거하면서 2012. 10. 22. 딸(子)을 출산했다.

청구인은 2013. 5. 6. 관할 구청을 방문하여 C라는 이름으로 딸의 출생신고를 하려 하였으나,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그 딸이 혼인관계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하였으므로 전남편의 성(姓)에 따라 전남편의 친생자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며,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야 한다는 말을 듣고 출생신고를 보류했다.

청구인은, 혼인 종료 후 300일 내에 출생한 자를 전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민법 제844조로 인하여 청구인의 기본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친 결정을 내린 까닭은,

"심판대상조항이 민법 제정 이후의 사회적·의학적·법률적 사정변경을 전혀 반영하지 아니한 채 아무런 예외 없이 일률적으로 300일의 기준만 강요함으로써 가족 구성원이 겪는 구체적이고 심각한 불이익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은, 입법형성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모가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조문에 대해서 단순위헌으로 결정하면, 혼인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에 대한 친생추정이 즉시 없어지게 되므로, 그 자가 부(夫)의 친생자임이 명확한 경우에도 친생추정이 소멸되어 자의 법적 지위에 공백이 발생하게 되므로, 심판대상조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로 결정하되,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있을 때까지 계속적용"을 하도록 했다.

독일에서는 전 남편과의 혼인 중에 출생한 자라도 그 출생일이 이혼소송 계속 이후이고, 생부가 그 자를 인지한 경우라면 전 남편의 친생추정을 제한하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혼소송이 계속 중이라면 이미 가정의 평화가 깨진 상태이다. 이때 출생한 자를 생부가 인지하여 그 자의 법적 지위가 안정된 경우에는 굳이 이혼한 전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할 아무런 법률상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태그:#헌법재판소,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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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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