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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앞모습
 책방 앞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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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마을 고양이마을>이라는 만화책 3권을 보면 39쪽에 "책 위에서 자면 안 된다니까. 제발 소중하게 다뤄 줘. 이 책들은 또 누군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질지도 모른다고."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느 조그마한 바닷마을에서 헌책방을 꾸리는 젊은이가 고양이한테 들려주는 말입니다. 고양이더러 책에 앉아서 낮잠을 자지 말라고 부드럽게 타이르면서 '책 하나'가 어떻게 흐르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책은 먼저 숲에서 태어납니다. 숲에서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를 베어 종이를 얻은 뒤, 사람들이 저마다 즐겁고 아름답게 일군 삶을 이야기로 갈무리해서 종이에 얹을 적에 책이 됩니다. 나무만 있어도 책은 안 되지만, 이야기만 있어도 책은 안 됩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과 따사로이 가꾸는 삶이 함께 어우러질 적에 비로소 책이 태어납니다.

광주 동구 계림동에는 헌책방이 제법 많습니다. 지난날과 견주면 무척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문을 닫고 사라진 곳은 사라졌어도, 오늘 이곳에서 '새로운 손길'을 기다리면서 묵은 책에 앉은 먼지를 닦고 책손을 기다리는 책방은 씩씩하게 책방 문을 엽니다. 대인시장에서 광주고등학교 사이로 띄엄띄엄 헌책방이 있습니다.

대학교 앞이 아닌 고등학교 앞에 있는 헌책방입니다. 그만큼 광주고등학교는 광주에서 남다른 곳이라는 뜻일 텐데, 지난날에는 광주고등학교 앞뿐 아니라 여느 대학교 앞에도 헌책방이 북적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젊은이라면 생각을 가꾸는 힘을 얻으려고 책을 손에 쥐었을 테고, 나이든 어른이라면 마음을 언제나 젊게 북돋우려고 책을 손에 잡았을 테지요.

책방에서
 책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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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지식을 담는다고 합니다. 이 지식은 학문이나 철학을 하려는 지식일 수 있고, 사회나 역사를 밝히려는 지식일 수 있습니다. 이 지식은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려는 지식일 수 있으며, 뒷사람한테 물려줄 삶을 가꾸려는 지식일 수 있습니다. 먼 옛날부터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이야기는 모두 '삶을 가꾸려는 지식'입니다.

먼 옛날부터 이 땅에 살던 사람한테는 따로 책이나 글이 없었지만,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로 모든 것을 가르쳤습니다. 씨앗을 갈무리하고 심고 가꾸고 북돋우고 거두는 모든 삶을 이야기로 엮어서 들려주었어요. 씨앗을 거둔 뒤에는 밥으로 짓거나 옷으로 깁는 모든 삶을 이야기로 여미어서 들려주었고, 씨앗을 훑고 남은 짚으로 새끼를 꼬고 지붕을 잇고 신을 삼고 자리를 짜는 모든 삶을 이야기로 묶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종이에 얹어서 빚는 책에는 흙짓기나 밥짓기나 옷짓기나 집짓기 같은 이야기를 싣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책 하나에 흙짓기 이야기를 다루자면 천 쪽이 아닌 만 쪽으로 써도 모자랄 테니까요. 철마다 다른 풀과 나무 이야기를 책으로는 도무지 담을 수 없고, 겨울 끝자락과 봄 첫머리에 돋는 봄나물 이야기를 책으로는 도무지 실을 수 없습니다. 몸으로 겪고 눈으로 보며 손으로 만질 때에 비로소 삶을 바라보면서 알아차리고 깨닫습니다.

책시렁 한켠
 책시렁 한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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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 손길이 묻은 책
 책방지기 손길이 묻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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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시장 옆자락에 깃든 조그마한 헌책방 〈일신서점〉 앞에 섭니다. 이곳은 어떤 헌책방일까 하고 한참 생각합니다. 이곳에 있는 책에는 어떤 손길이 깃들었을까 하고 한동안 헤아립니다. 오늘 이곳에 이 작은 헌책방이 있어 책마실을 할 수 있으니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손때와 책먼지가 묻어 낡은 책꽂이를 바라봅니다. 책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끈으로 알맞게 묶어서 쌓은 매무새를 느낍니다. 알뜰히 손질해서 다룬 책은 머잖아 새로운 손길을 받으면서 새삼스레 읽힐 수 있겠지요. 누군가 이 모든 책을 기쁘게 바라보고 장만해서 읽었기에 이 헌책방 한켠에 곱게 꽂힐 수 있겠지요.

나의 칼 나의 피
 나의 칼 나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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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나희덕 옮김-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진선출판사,1989)라는 책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1989년 9월에 1쇄를 찍었고 1991년 3월에 9쇄를 찍었습니다. 이 책을 옮긴 이는 나희덕이라는 분이고, 이무렵 수원 창현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고 합니다. 요즈음에는 조선대학교에서 교수로 계신다지요. 시집이나 수필책보다 먼저 나온 나희덕 님 책이 '칼릴 지브란' 시집 번역이로군요. "내 영혼이 나에게 충고했네 /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보라고. / 우리가 매달려 온 것은 / 우리가 갈망하는 것들이었음을 / 내 영혼은 보여주었네(내 영혼이 나에게 충구했네)." 같은 싯말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눈을 뜨면 눈에 보이는 모습이 있고, 눈을 감으면 눈에 안 보이는 모습이 있습니다. 내가 눈을 떠서 보기에 내 앞에 누군가 있다고 할 텐데, 내가 눈을 감아도 누군가 내 앞에 있습니다. 내가 바라볼 곳은 내가 사랑할 곳이고, 내가 마주할 사람은 서로 따사로이 어우러질 곁님이요 벗님이지 싶습니다.

책탑을 이리저리 살피니 <칼릴 지브란/권국성 옮김-어느 광인의 이야기>(진선출판사,1990)라는 조그마한 책이 보입니다. 책탑 뒤쪽에 숨은 책꽂이 아래쪽에 머리를 박고 안쪽 깊은 곳을 들여다봅니다. 어떤 책이 오랫동안 먼지를 먹으면서 이곳을 지켰는지 살펴봅니다. 시집 <김남주-나의 칼 나의 피>(인동,1987), <김주대-도화동 사십계단>(청사,1990), <박재삼-찬란한 미지수>(오상,1986), <김초혜-어머니>(한국문학사,1988) 같은 책이 눈에 뜨입니다. 광주에 있는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왔으니, 그동안 여러 차례 읽기는 했어도 <나의 칼 나의 피>를 다시금 장만해서 새로 읽자고 생각합니다.

김주대 님 시집과 박재삼 님 시집도 예전에 읽어 알뜰히 건사하지만, 한 권씩 더 갖추어도 즐겁습니다. 온누리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책을 두세 권'이나 갖추느냐고 물을 수 있을 텐데,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진 책은 앞으로 도서관에서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헌책이 새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습니다. 새옷을 입고 다시 태어나더라도 처음 나오던 옛모습을 간직한 책에는, 이 책을 처음 장만해서 읽은 사람이 남긴 손길과 자국이 있습니다. 책을 쓴 사람 이야기가 있을 뿐 아니라, 책을 읽은 사람 이야기가 나란히 있어요.

촘촘히 쌓인 책탑
 촘촘히 쌓인 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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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혜 님 시집 <어머니>를 펼쳐 애틋한 싯말을 하나하나 읽다가, 책 사이에 꽂힌 책살피를 하나 봅니다. 1989년에 8쇄를 찍은 책에 꽂혔으니 1989년 자취를 보여주는 책살피일 텐데, '산수동 오거리 형설서점' 고무도장이 찍힙니다. 고무도장 책살피에는 "중고참고서·일반서적·복사·코팅' 같은 글월이 함께 찍힙니다. 그러면 이 시집은 광주 산수동 오거리 한쪽에 있던 <형설서점>에서 처음 팔린 책이라는 뜻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형설서점>은 이제 광주에 없습니다. <형설서점>을 꾸리던 분이 낳은 두 아들이 여수와 순천에서 이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헌책방을 하고, 작은아들 동무가 진주에서 이 이름으로 헌책방을 꾸립니다.

광주 산수동에 있던 <형설서점>을 떠올리는 분이 틀림없이 있을 텐데, 이 책방이 어떤 모습이었고 간판은 어떠했는지 떠올리는 분도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진이나 간판이 남았을는지 모르지만, 이 책방에서 쓰던 책살피는 묵은 책 사이에 남아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전남의 농요
 전남의 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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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춘상-전남의 농요>(전라남도,1986)라는 두툼한 책을 봅니다. '농요'는 "시골노래"요 "들노래"입니다. 들에서 일하는 시골사람이 부르던 노래이니 시골노래이면서 들노래입니다.

이제 들에서 일하는 시골사람은 들노래나 시골노래를 거의 안 부릅니다. 들에서 움직이는 것은 경운기와 트랙터와 콤바인이니, 기곗소리가 시끄러워서 들노래도 시골노래도 못 부릅니다. 두레나 품앗이를 하는 시골지기도 거의 사라졌으니 함께 부르는 노래도, 서로 북돋우는 노래도 부를 일이 없습니다. 아스라이 먼 옛이야기요 옛노래가 됩니다.

..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마을에서는 3년 전까지는 소리를 하면서 들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모찌기나 모내기는 여자들이 하고 논매는 일만 남자들이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전남의 해안이나 도서 지방에 두루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데, 고흥군의 경우는 도양면과 도덕면에서 그와 같이 여자들이 모를 찌고 모를 심는다. 따라서 이 마을에서도 모를 찌고 심는 일을 여자들이 하기 때문에 이때의 들소리도 여자들이 한다. 더구나 3년 전까지 노래를 부르면서 들일을 했기 때문에 여자들은 들소리뿐만 아니라 강강술래나 그밖의 많은 노래들도 잘하며, 가창력도 뛰어나 그 소리가 좋을 뿐만 아니라 가락이 정확하고 사설도 풍부히 알고 계셔서 이 마을을 돋보이게 했다 ..  (633쪽)

<전남의 농요>에는 악보가 함께 나옵니다. 시골노래나 들노래를 담아서 엮는 책을 보면 으레 '노랫말'만 다루는데, 이 책에는 악보까지 있어서, 악보를 살피면서 시골노래나 들노래를 어떻게 불렀는가 하고 되새길 수 있습니다. 아주 뜻깊게 알뜰히 엮은 책입니다. 옛노래를 고이 물려받은 분들 가운데 오늘까지 튼튼히 이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는 분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책 한 권
 책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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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도서지>(전라남도,1995)를 봅니다. 이태 앞서 순천에 있는 헌책방에서 이 <도서지>를 처음으로 구경했습니다. 이태 앞서 만난 <도서지>는 1973년에 처음 나온 책이었고, 오늘 만난 도서지는 1995년에 새로 나온 책입니다. 1973년에 나온 <도서지>를 보면, 조그마한 섬에도 으레 분교가 한둘씩 있고 아이들도 꽤 많다고 나오지만, 1995년에 이르면 섬마을 분교는 거의 사라지는 흐름이면서 아이들 숫자도 부쩍 줄거나 아예 없기까지 합니다. 섬마을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늘면서 아이들 숫자가 줄어요. 사람이 없는 섬도 퍽 많습니다.

오늘 씀바귀꽃으로 살아
 오늘 씀바귀꽃으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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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엮음-오늘 씀바귀꽃으로 살아>(들불,1988)라는 책을 집어듭니다. '일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밝히려고 펴낸 책이라고 하는데, 이 책이 나올 무렵이든 요즈음이든 가시내는 사내한테 눌리면서 푸대접을 받습니다. 여성학이 학문으로 서고 여성부라는 정부기관이 있어도 사회와 문화와 교육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 경제나 정치, 문화가 더욱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성들은 변함없이 억압받고 있읍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경제권이 없고, 밖에 나가 일을 해도 남성에 비해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 있읍니다 … 우리가 남성 중심의 사고를 갖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주입되어져 온 교육과 문화적 환경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읍니다 ..  (27, 43쪽)

사회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아이들한테 삶과 사랑과 꿈을 슬기롭게 안 보여주고 안 가르칩니다. 사회에서는 돈에 얽매이고 학교에서는 대학입시에 얽매입니다. 사회는 사회대로 고단하고 학교는 학교대로 힘겹습니다. 사회와 학교 모두 직업훈련과 입시지옥 두 가지만 있을 뿐, 아이들이 손수 삶을 짓거나 일구는 길은 안 보여주고 안 가르칩니다. 도시와 시골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도시에서 돈을 많이 버는 일자리를 얻으면 삶이 달라질까요? 시골에서 힘든 들일을 안 하면 먹고살기 나아질까요?

곰곰이 살피면, 도시에서 돈을 버는 까닭은 집과 밥과 옷을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집과 밥과 옷을 얻은 뒤 문화를 누리고 싶어서 돈을 더 법니다. 집과 밥과 옷은 도시에는 없습니다. 모두 시골에서 태어납니다. 시골에서 손수 짓거나 시골에서 나는 것을 자원으로 삼아 공장에서 이리저리 만져서 공산품으로 찍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시골이 있어야' 밥을 먹고 집과 옷을 얻습니다. 시골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밥과 집과 옷뿐 아니라, 몸을 살리는 맑은 바람과 물과 햇볕을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책들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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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손수 흙을 가꾸어 밥과 옷과 집을 얻는다면 따로 돈을 벌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돈으로 밥과 옷과 집을 사서 쓰지 않고 흙을 정갈히 다루어 알차게 일구면, 가장 좋고 아름다우면서 빛나는 삶을 이룹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이와 어른 누구나 손수 삶을 짓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평화요 평등이며 민주이고 자유입니다. 손수 삶을 짓지 못하는 자리라 한다면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많아도 평화와 평등과 민주와 자유하고는 외려 더 멉니다.

<당신은 오월바람 그대로>(전남대학교 비나리패,1987.4.)라는 조그마한 문집을 봅니다. 더께를 뒤집어쓴 책들 사이에서 살짝 고개를 내민 문집을 꺼내어 책방 바깥으로 나가서 먼지를 탁탁 텁니다. 옷섶으로 책먼지를 닦습니다.'비나리 글마당' 셋째 권으로 내놓았다고 하는 문집을 펼칩니다. '재학생 작품'으로는 송광룡, 정준호, 송혜경, 이봉환, 정명철, 김경애, 김재경, 성명진, 정경운, 민문희, 남영재, 김성호, 이종주, 장영기, 장옥근, 이형권, 윤정현, 박금옥 같은 이름이 나오고, '졸업생 작품'으로는 김경윤, 윤동훤, 임동확, 류진주라는 이름이 나오며, '선배 시인 작품'으로는 손광은, 김희수, 최승권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공동체 시'로 〈수몰민의 노래〉를 싣고, 소설로 조성현 님 글을 싣습니다.

전남대 비나리패 문집
 전남대 비나리패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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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 돈을 벌어야 한다고 / 몇번이나 새기던 나의 다짐은 / 아침 창 밖의 눈부신 햇살과 함께 / 광주천 지나는 공단으로 나섰지만 / 자꾸자꾸 안 되겠다고 / 다른 자릴 알아보라고 / 내가 가야할 곳의 전화번호까지를 / 곱게도 적어주며 등짝을 밀어내던 / 눈살에 실려 / 텅빈 공복의 거리를 쏘다녔다 ..  (윤정현-광주일기 3)

고른 책을 셈대에 올려놓습니다. 헌책방 〈일신서점〉 할배가 책값을 셈하시는 동안 책시렁을 더 돌아봅니다. <서재환-오지게 사는 촌놈>(전라도닷컴,2003)이라는 책이 보입니다. 2003년 3월에 1쇄를 찍고 이해 12월에 3쇄를 찍었습니다. 이 책은 어느 분이 즐겁게 장만해서 읽은 뒤 스스럼없이 내놓았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즐겁게 장만했고 기쁘게 읽었기에 다른 이웃이 이 책을 고이 알아보기를 바라면서 헌책방에 내놓아 주었을 테지요.

책값을 치르고 나서 명함 한 장 얻을 수 있을까 여쭙니다. 명함이 다 떨어져서 없다 하셔서 빈 종이에 적어 달라고 다시 여쭙니다. 영수증도 한 장 얻습니다. 헌책방 할배가 꾸린 이곳을 앞으로도 마음으로 새기고 싶어서 '손글씨 영수증과 명함'을 하나씩 얻습니다. 오랜 나날 책을 다루고 책꽂이를 보듬은 손은 오랜 나날 흙과 나무를 만진 손처럼 울퉁불퉁 투박합니다. 이 손을 거쳐서 수많은 책이 되살아났고, 이 손을 지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책을 만났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책
 누군가를 기다리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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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작은 책방이 있습니다
 여기에 작은 책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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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빛나기까지는, 책을 쓴 사람과 책을 엮은 사람과 책을 펴낸 사람이 있습니다. 갓 나온 책을 다루는 새책방 일꾼이 있고, 이 책을 알아본 책벗이 있으며, 책벗은 다른 책벗을 헤아리면서 이녁 책을 내놓습니다. 책은 갓 태어날 적에도 읽히지만, 두고두고 되읽힙니다. 도서관은 온갖 책을 찬찬히 보듬어 오랫동안 건사하면서 읽히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도 건사하지 못해 버리는 책이 있어, 헌책방은 모든 묵은 책을 차근차근 매만지면서 되살릴 책을 추립니다.

<전남의 농요>도 <도서지>도 '전남대 비나리패 문집'도 '나희덕 시인 첫 번역책'도, 헌책방이라는 곳이 있어서 새롭게 만납니다. 이 책들은 내 마음을 새롭게 밝히는 빛줄기가 됩니다. 따사로이 비추는 빛이 어여쁜 고을인 광주에서 오래도록 책숨을 지킨 사람들 손마디가 고맙습니다.

오랜 나날 책방 한곳을 고요히 지킨 손
 오랜 나날 책방 한곳을 고요히 지킨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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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을 밝히는 작은 전구
 작은 책방을 밝히는 작은 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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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광주 계림동 〈일신서점〉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1동 381-9
062.222.5782.



태그:#헌책방마실, #헌책방, #일신서점, #책이야기,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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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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