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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가난했다. 그러나 시인 서정주가 <무등을 보며>에서 표현한 대로 가난은 아버지에게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았다. 힘든 형편 속에서도 자식 가르치고 기르는 데 남다른 책임감과 정성을 쏟으셨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고교 입학 비평준화 시절이었다. 관내에 인근 몇 개 시, 군 출신 학생들이 몰리는 이른바 '지방 명문고'가 있었다. 그곳을 목표로 입시에 대비하자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에서였다.

1983년 늦여름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손수레에 장작을 싣고 십 리 길을 걸었다. 아궁이에 솥을 걸고 밥을 해 먹으면서 난방을 해결해야 하는 허름한 집에 자취방이 있었다. 친구들이 보면 창피해 어쩌나 싶었지만 아버지 정성에 목이 멨다. 

나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였다

아버지와 나
 아버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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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5월 어린이날이 잊히지 않는다. 어린 남동생과 나는 아침 일찍부터 들떠 있었다. 구례에서 전주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나들이 때문이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아버지께서 마련한 '특별 이벤트'였다. 전주 고모네에 도착해 동행한 뒷집 당숙, 고모부와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이신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기차에서 내려 동생과 함께 폴짝거리며 걷던, 흙먼지 날리던 기차역 앞 복숭아 과수원 길이 선연하다.

어린 시절, 논틀밭틀을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소나무 장작을 해 나를 때 '아버지가 안 계시면 어떻게 될까' 하고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종종 있었다. 아버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일상을 그리기 힘들었다. 그때 내게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4년째다. 세상의 '전부'였던 아버지가 없어도 나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평범한 일상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그 사이 어느새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유년 시절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아이들에게 세상의 '전부'가 되어 있을까.

요며칠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어제, 그제는 한겨울에 입는 두꺼운 융 파자마를 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거기에 이불 두 개를 겹쳐 덮었는데도 오한이 가시지 않았다. 턱을 덜덜 떨며 잔뜩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온몸이 내내 가시에 찔린 듯 따끔거렸다.

며칠째 집에서 쉬고 있다. '징검다리'인 4일이 특별 휴무일로 잡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딸도 그랬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도 아예 함께 쉬게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어제(4일)는 하루종일 세 아이와 함께 보냈다.

몸이 힘들어서였을까. 아이들 끼니 챙겨주는 일이 너무 귀찮았다. 아침은 며칠 전 볶아 놓은 묵은 김치를 넣고 비빈 밥으로 때웠다. 반찬은 양념 김 하나였다. 점심은 아예 큰딸에게 미뤘다. 큰딸은 라면 두 봉지를 사 와 제 동생들과 함께 끓여 먹었다. 저녁은 배달한 비빔밥으로 해결했다.

세 아이 끼니 고민을 할 때마다 출근해 회식이 잡혀 있던 아내가 부러웠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맡게 된 '책임'을 외면할 수 없었다. 오전에 아이들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사슴 농장을 들렀다. 오후에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수공원에 갔다. 그사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걸 핑계 삼아 아이들에게 연달아 '집에 들어가자'를 외쳤다. 아이들이 크게 아쉬워했다. 내 몸이 아프니 어쩔 수 없었다.

둘째인 아들 녀석은 요새 '탱탱볼'로 불리는 조그만 고무구슬을 가지고 노는 놀이에 푹 빠져 있다. "아빠, 놀아 줘"라고 말할 때마다 아들 손에는 탱탱볼 24개가 담긴 까만 비닐 봉지가 쥐어 있다. 탱탱볼 알까기부터 바구니에 던져 넣기까지 아들이 고안한 놀이방식도 여러 가지다.

지금까지 전적이 104 대 45다. 아들이 104판을 이긴 승자다. 이 정도면 된 셈 아닌가. 그런데도 아들은 아직 탱탱볼 놀이가 부족한가 보다. 어제도 아들 입에서 "아빠, 놀아 줘"가 계속 나왔다. 그때마다 "아빠 아파 죽겠어", "힘들어"라고 대답했다.

364일은 '어른날'... 하루는 아이들을 위해서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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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든 놀러가야 할 것 같고, 선물 하나씩 사 아이들 품에 안겨야 할 것 같다. 며칠 전 제 엄마로부터 선물 약속을 받아낸 큰딸도 어제 하루종일 "엄마가 내일 선물 사 준다고 했어요"를 그치지 않았다. "내일 어디 가요?"를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놀러가는 것보다 바쁜 직장 일에 지친 몸을 쉬어주는 게 낫다. 어린이날 특수를 노리고 시장에 나오는 선물 장난감들은 '거대한' 세트 형태가 많다. 가격도 10만 원대가 기본이어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 품귀 현상이라도 벌어지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 등 가외로 신경 쓸 일이 생긴다. 대체로 어른들이 어린이날을 귀찮아하는 이유가 이런 데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어린이날 부모 노릇이 놀이공원 데려가고 비싼 선물 사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멋진 여행이나 귀한 장난감 선물이 없었어도 나는 아버지를 세상의 '전부'로 여겼다. 가난했지만 그에 굴하지 않으며 자식들에게 쏟은 남다른 사랑과 정성 때문이었다.

많은 돈이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놀이를 실컷 같이 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정말 좋아한다. 아들은 탱탱볼 놀이를 시작할 때 "탱탱볼 몇 판 해 줄 거예요?"라고 묻곤 한다. "세 판" 하고 대답하면 "다섯 판 하면 안 돼요?"라며 애걸하는 말투로 되묻는다. 그런 게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마음껏 놀자", "네 마음대로 해" 같은 말을 듣는 걸 가장 좋아한다.

어린이날은 한 해 단 하루다. 나머지 364일은 '어른날'이다. 어른들에게 힘들고 귀찮은 그 하루도 아이들이 커버리면 다시 '어른날'이 된다. 애틋해하며 지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5월 5일' 하루쯤 아이들에게 온전히 정성을 쏟아도 되지 않을까. 아픈 몸 핑계로 특별 휴무일과 어린이날을 '원망'하던 중에 떠올린 조그만 반성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태그:#어린이날, #선물, #아버지,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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