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에는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영역'이 존재한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평균 자책점 부문은 언제나 '국보 투수' 선동열의 영역이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홈런 타이틀은 늘 '국민 타자' 이승엽(삼성라이온즈)의 차지였다.

2010년 이후에도 몇 가지 타이틀에서는 변함 없이 '그들만의 영역'이 이어지고 있다. 넥센히어로즈의 '파괴왕' 박병호는 홈런과 타점 타이틀을 3년 연속으로 차지했고, 한화이글스의 김태균 역시 약한 팀 전력 속에서도 지난 3년 동안 출루율 타이틀을 놓친 적이 없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이 아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박병호는 아직 홈런 6개에 그치고 있고 김태균 역시 출루율 4위(.468)에 머물러 있다(물론 김태균의 출루율은 1위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언제든 역전이 가능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올 시즌 김태균을 제치고 출루율 1위(.475)를 달리고 있는 최준석(롯데자이언츠)이 통산 출루율 .362에 불과한 선수라는 점이다. 하지만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최준석의 출루율이 높아질수록 롯데 중심 타선의 위력도 함께 커진다는 사실이다.

FA 자격 얻고 데뷔팀으로 돌아온 '의리의 사나이'

포철공고 출신의 최준석은 지난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6라운드(전체49순위)로 롯데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 포지션은 포수였으나, 프로 입단 후 타격 재능을 살리기 위해 1루수로 전향했다(사실 1루 수비 역시 썩 뛰어난 편은 아니다).

최준석은 입단 동기인 이대호(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함께 롯데의 중심타선을 이끌어 줄 거포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입단 4년 만에 시즌 20홈런을 친 이대호와는 달리 최준석은 프로 입단 후 5년 동안 10홈런에 그쳤다. 결국 최준석은 2006년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김동주(은퇴)의 부상으로 마땅한 거포가 없던 두산에서 최준석은 2006년 11홈런 47타점, 2007년 16홈런 75타점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폭발했다. 특히 2010년에는 타율 .321 22홈런 82타점으로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최준석은 2012년 6홈런 30타점, 2013년 7홈런 36타점에 그쳤다. 하지만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는 16경기에서 6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역대 단일 시즌 포스트 시즌 최다 홈런 타이 기록을 세웠다. 순수 '파워'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장타력을 또 한 번 증명한 셈이다.

2013 시즌 종료 후 FA자격을 얻은 최준석은 두산과의 우선 협상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시장에 나왔고 4년 35억 원의 조건으로 롯데와 계약을 체결했다. 2006년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를 떠난 이후 8년 만에 친정 팀으로 컴백하는 의리를 과시한 것.

최준석은 작년 시즌 외국인 선수 루이스 히메니스의 부진 속에서도 꾸준히 롯데의 4번 타자로 활약하며 타율 .286 23홈런 90타점을 기록했다. 타고투저 시즌에서 아주 돋보이는 성적은 아니었지만, 최준석 개인에게는 한 시즌 최다 홈런(23개)이자 최고 출루율(.411)을 기록한 의미 있는 복귀 시즌이었다.

최준석의 출루율과 함께 높아지는 롯데 중심 타선의 위력

최준석은 올 시즌 롯데의 주장에 선임됐다. 지역 출신 선수도 아니고 롯데에서 뛴 기간(6년)보다 두산에서 뛴 기간(8년)이 더 많았지만, 팀을 향한 애정과 선수들을 이끄는 통솔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최준석이 맡을 수 있는 포지션은 1루수와 지명 타자. 하지만 1루에 투타를 겸비한 박종윤을 활용하려면 최준석은 지명 타자로 나설 수밖에 없다. 수비에서 팀에 기여를 해야 할 부분이 거의 없는 최준석이 주장으로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이려면 그만큼 공격에서 더 큰 활약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올 시즌에도 최준석의 타순은 4번이다. 많은 홈런과 타점을 쌓아 올리는 것이 최선이지만, 파워로는 이대호에게도 뒤지지 않는 최준석에게 상대가 호락호락 정면 승부를 해 줄 리가 없다. 자칫 치려는 욕심이 앞서 상대 투수의 유인구에 방망이가 따라 나가면 공격의 흐름이 끊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최준석이 선택한 방법은 '출루'였다. 타점은 앞∙뒤 타석에 등장하는 황재균과 강민호에게 양보하고 본인은 3번과 5번 사이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겠다는 주장으로서의 '희생정신'이다. 최준석이 4번 타석에서 많은 출루를 하면 주자가 쌓이는 5번 강민호는 물론이고 3번 황재균과도 정면승부를 하기 때문에 타점 기회는 그만큼 늘어난다.

결과는 모두에게 나쁘지 않다. 최준석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30개의 볼넷을 골랐고 롯데의 중심 타선은 올 시즌 20홈런 68타점을 합작하고 있다. 굳이 최준석이 나서서 해결하지 않고 주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중심 타선 전체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롯데는 짐 아두치-손아섭-황재균-최준석-강민호로 이어지는 상위 타선을 가동하고 있다. 오른발 부상으로 이탈한 박종윤이 예정대로 5월 중순에 복귀한다면 롯데의 중심 타선은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사실 출루율 타이틀은 타율이나 홈런, 타점 등에 비해 그 가치가 폄하될 때가 많다. 하지만 한 선수의 높은 출루율이 팀 성적에 얼마든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올 시즌 롯데의 캡틴 최준석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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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롯데 자이언츠 최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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