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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선(先)은 위쪽에 발을 나타내는 지(止)와 아래쪽에 사람 인(人)이 합쳐진 형태이다.
▲ 先 먼저 선(先)은 위쪽에 발을 나타내는 지(止)와 아래쪽에 사람 인(人)이 합쳐진 형태이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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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고 한다. 한 마리는 선입견이고, 다른 한 마리는 편견이다. 선입견과 편견, 물론 이 두 마리의 개는 견(犬)이 아닌 견(見)이지만, 우스갯소리로 지나치기엔 뭔가 뼈 있는 얘기로 들린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생각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생각을 끊임없이 새롭게 교체하지도 않는다. 생각은 일단 한번 둥지를 틀면 좀처럼 나가려고 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특히 의식의 여백을 선점한 생각은 대단히 고집스런 기득권을 행사하며 생각의 주인처럼 군림한다. 그것이 어쩌면 바로 이 두 마리의 개가 아닐까.

한나라의 10대 황제 애제는 동현(董賢)과의 동성애로 유명하다. 잠자는 동현을 깨울 수 없어 팔베개를 해주던 소매를 잘랐다는 '단수(斷袖)'는 지금도 동성애를 나타내는 말로 남아 있다.

<한서(漢書)>에 따르면, 애제가 제후인 식부궁(息夫躬)이 제안한 흉노 정벌을 위한 출병에 대해 승상 왕가(王嘉)와 의논하던 중에 왕가는 애제에게 이렇게 간언한다. "폐하께선 옛 교훈을 거듭 살펴 숙고하시되, 먼저 들으신 식부궁의 말을 위주로 하진 마시옵소서(唯陛下觀覽古今,反復参考,無以先入之語爲主)."

여기에서 나온 선입지어(先入之語)에서 선입지견(先入支見), 선입견(先入見)이란 말이 생겨났다. 그러니까 선입견이란 말은 먼저 들은 말이나, 먼저 가졌던 생각도 다시 잘 숙고해 봐야 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셈이다.

먼저 선(先, xiān)은 위쪽에 발바닥을 형상화해 발을 나타내는 지(止)와 아래쪽에 사람 인(人)이 합쳐진 형태로, 발걸음이 다른 사람보다 앞서 있어서 '먼저'의 의미가 생겨난 걸로 보인다.

인구가 많아 경쟁도 심한 중국에서는 남보다 앞서 행동하는 '창선(搶先)'이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중국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헤켈의 명언 중에 "미인을 꽃에 비유해도 제일 먼저 한 사람은 천재, 두 번째로 따라한 사람은 범재(凡才), 세 번째로 따라한 사람은 바보다(第一個把美女比作鮮花的是天才,第二個重復這一比喻的是庸才,第三個重復這一比喻的是蠢材)"가 있다.

중국인들은 무한경쟁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품질보다 때론 남보다 먼저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야 소비자의 의식에 강한 인상을 남겨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는 논리다. 장기나 바둑, 특히 오목과 같은 게임에서 선을 점하는 것은 공세의 우선권을 가져 유리하다는 이치인데, 다양한 시장상황에서 이 논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둔한 새가 먼저 난다(笨鳥先飛)"고 한다. 어리석은 새처럼 먼저 생각의 가지를 박차고 날아 올라보는 것은 어떨까. 앞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지에서 새로운 각도로 숲을 보기 위해 말이다. 두 마리의 개와의 작별을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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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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