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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 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인류 사회는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걸친 계몽 사상, 근대화, 현대화의 여파로 우리는 아마 역사상 가장 빠른 변화의 시류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20세기 초 중국에서 현대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계몽을 부르짖었던 '루쉰'의 문학이 현대까지 널리 읽히며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루쉰의 문학은 '계몽'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불운'한 중국과 중국인의 현실을 날카롭게 조명하며, 문학을 매개로 이성과 대립하는 악습, 미신, 유교와 같은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사회 풍조를 타파하고 중국인의 국민성을 개조하고자 했다.

루쉰의 작품을 읽노라면, 이후 활발한 좌익 사상 운동에 참여하기도 한 그의 사회 비평 문체가 머금고 있는 당대 중국 사회와 중국인에 대한 냉소를 행간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1911년 청조의 몰락과 민주 공화제 행정부의 등장을 야기한 신해 혁명과 1919년 반제국주의적, 계몽주의적 5.4운동의 봄바람은 마치 '중국의 봄'을 연상케하는 동시에 유교를 근간으로한 지금까지의 봉건적 중국 사회로부터의 단절 시도라고도 보여진다.

일부 지식인은 계몽과 개화, 근대화를 부르짖었으나 대부분의 일반 민중은 무지와 익숙함의 장막에 갇혀 있기만 했다. 이런 맥락 속에서 루쉰의 사회 비판적, 계몽적 문학 풍조가 탄생하게 됐고, 1919년 9월 발표된 <약(药)> 역시 그 맥락을 같이하며 근대 태동기의 혼란 속 중국을 배경으로 전근대적인 중국의 풍속과 생활 양식을 비판한다.

화샤오솬의 아버지 화라오솬은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인혈만두(人血馒头)'를 구하고자 한다. 혁명가 샤위(夏瑜)가 처형되는 날, 라오솬은 캉아저씨(康大叔)를 통해 샤위의 피가 묻은 '인혈만두(人血馒头)'를 구해 샤오솬에게 먹인다. 그렇지만 아이는 낫지 않고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샤오솬은 가운뎃길을 기준으로 왼쪽은 사형수나 옥살이로 죽은 사람들의, 오른쪽은 빈민들의 무덤이 있는 곳에 묻힌다.

묘지의 오른편에 묻힌 샤오솬을 찾아간 화따마(华大妈)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나 왼편 무덤에 묻힌 아들, 위(瑜)를 찾아온 어머니를 마주치고 다가가 말을 건다. 문득 그녀가 놀라며 가리킨 무덤의황토 위에는 드문드문 꽃들이 피어 있었고, 여인은 무덤 속 아들에게 자신의 말을 들었다면 그곳의 까마귀가 무덤 위로 날아오르게 하여 보여 달라고 한다. 얼마 후 두 어머니가 발길을 돌릴 때, 샤위가 어머니의 부탁에 답하기라도 하는 듯 까마귀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리고 작가는 펜을 내려놓는다.

루쉰은 이 작품을 통해 특정 '누군가'를 비판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모두'를 비판하려고 했을 뿐이다. 화씨네 가족부터 캉아저씨까지, 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루쉰이 비판하고자 하는 중국 생활 인습을 가진 중국인의 표상이다. 과학적인 치료나 약이 아닌 인혈 만두를 먹으면 폐렴이 낫는다고 믿는 화씨 가족과 캉아저씨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 자신과 같은 사람의 피가 묻은 인혈 만두를 먹는 기괴한 풍습, 무엇이 정말 자신들을 위한 것인지를 모르고 당대의 반청 혁명가에 대해 국가가 일방적으로 죄인이라고 규정한 대로 비난하는 무지와 몽매, 시대적으로 보았을 때 일본 제국주의를 포함한 외부 열강의 침입보다는 국가 내부에서 서로 죽고 죽이며 끊임없이 분쟁을 불러 일으키는 모습, 사형 집행을 단순한 구경거리로 받아들이고 캉 아저씨의 이야기에서도 사형수의 사형 이유 보다는 사소한 가십에 더 관심을 두는 무정하고 무지한 대중의 구경꾼 심리까지. 루쉰은 <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표상하는 인습과 전근대성을 비판한다.

그렇지만 루쉰이 완전히 중국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는 마지막 장면 화따마와 위의 어머니가 함께 무덤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모두가 평등한 무덤이라는공간에서, 봉건적 미신 풍습의 희생자인 샤오솬과 무지와 오인 그리고 권력의 입김의 희생자인 샤위가 묻혀있다.

루쉰은 그 무덤 주변을 완전하게 메마른 곳이 아닌 '花也不很多,圆圆的拍成一个圈,不很精神,倒也整齐。华大妈忙看她儿子和别人的坟,却只有不怕冷的几点青白小花,零星开着(많진 않았지만 둥그런 원을 그리고 있었고 썩 생기가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지런했다. 화씨댁은 얼른 자기 아들 무덤과 다른 무덤들을 둘러보았다. 거기엔 추위를 무서워 않는 작은 꽃들만 드문드문 창백히 피어있을 뿐이었다)'라고 묘사했다. 죽음의 무덤 황토 위에는 아직 조금이긴 하지만 몇 송이 꽃들이 드문드문, 창백히 피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두 여인이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고 마지막으로 무덤으로부터 등을 돌려 떠나는 순간 '只见那鸟鸦张开两翅,一挫身,直向着远处的天空,箭也似的飞去了(아까 그 까마귀가 두 날개를 펴고 몸을 웅크리더니 화살처럼 먼 하늘을 향해 솟구쳐 날아가는 것이었다)'라고, 마치 샤위가 어머니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까마귀가 화살처럼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여준다.

두 어머니가 아들들을 가슴에 묻는 이 장면은, 루쉰이 말하고자 한 전근대적 사회 풍토를 이젠 땅에 묻어버리자 라는 메시지와 겹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럴 때야만, 중국에도 계몽을 통한 인간 사회의 진보라는 꽃이 필 수 있고, 혁명가 샤위의 영혼을 담은 듯 날아올랐던 까마귀처럼 중국 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굳이 화따마 혹은 샤위의 어머니가 혼자 무덤에서 꽃을 발견하고 까마귀의비상을 발견한 것이 아닌 두 어머니의 만남과 유대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외형적인 발전과 진보, 계몽뿐만 아니라 따뜻한 정서적 유대나 근대적 의식의 고양도 필요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루쉰은 그의 또 다른 저서 '고향'에서 원래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생기는 것에 희망을 비유했다. 아마 <약>에서는 화따마와 샤위의 어머니가 그 '걸어가는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루쉰은 이제 민중들이 이전까지의 인습을 땅에 묻고 그 위로 동행하며 근대화와 계몽의 길을, 희망을 만들어가며 이전까지의 사회에 '약'을 처방해주길 바란 것이다.

루쉰의 <약>을 읽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거봐 너도 북어지'였다.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불쌍하다고생각하는 순간/느닷없이/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북어/ 최승호

<약>에서 모든 주인공은, 모든 중국 민중은 결국 아Q였고, 화씨 가족의 일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닌가? 우리는 루쉰을 떳떳하게 마주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를 재조명해 보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기보다는 무관심한 구경꾼 심리가 팽배한 상태에서,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적 불평등에서,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는 수직적 인간 관계, 혈연주의와 같은 전통적 윤리 사상과 인습에서, 주변에 대한 무관심에서, 사회적 부조리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생기는 '진정한' 지식의 무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이 아직 심심찮게 눈에 띄곤 한다.

기술 문명의 발전만이 인류의 발전과 계몽일까? 외관의 발전에 대한 내면의 도태는 그 불균형을 메우지 않으면 어느 순간 균열을 만들고 전체를 무너지게 한다. 루쉰이 말하고자 한 계몽도 외적인 발전과 계몽만은 아닐 것이다. 이젠 우리가 화따마와 샤위의 어머니와 함께 희망의 길을 닦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회의 한 단락을 보았을 때는 아직 많은 병폐가 존재하고 있을지라도전반적인 맥락을 보았을 때 다행히 우리는 10년 전, 100년 전의 우리보다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

앞으로의 사회를 살아갈 우리는 지금까지의 눈부신 기술 문명의 쉼 없는 발전 속에서 놓치고 온 가치들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루쉰의 문학이 아직까지 읽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루쉰의 메시지가 현대 사회에도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열리지 못한 마개(栓)들이 존재하며, 마지막 남은 물줄기가 마개를 열고 근대적 사회로 뻗어나가는 순간까지 우린 '거봐, 너도 아Q지', '거봐 너도 라오솬이지'라는 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태그:#루쉰, #문학,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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