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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의 묘를 지키고 서있는 고목 나무.
 백범 김구 선생의 묘를 지키고 서있는 고목 나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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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제품을 장만하거나 A/S를 받으러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 갈 때마다 가까워서 꼭 들르는 곳이 효창공원(용산구 효창동)이다. 요즘 같은 봄날 효창공원에 들어서면 초록과 연두 빛의 울창한 수목들이 반겨줘 상쾌한 기분이 든다.

공원 입구 연못 습지에 사는 개구리와 맹꽁이들의 합창소리는 방문객을 흥겹게 반겨준다. 귀엽게 지저귀는 새들 노랫소리, 화사한 꽃과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난 고즈넉한 산책로...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에 손꼽힐 만했다. 이처럼 인근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효창공원은 알고 보니 조선후기부터 근현대사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와 사연이 깃든 곳이었다.

조선왕조 묘원에서 일제 강점기때 주둔지와 공원으로 격하

효창공원(孝昌公園)은 원래 조선 제 22대 정조 임금의 큰 아들로 세자책봉까지 받았으나 5살 어린 나이에 죽은 문효세자와 몇 달 후 죽은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의 묘원인 효창원(孝昌園)이 있던 자리였다. 참고로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묘를 말하고, 원(園)은 왕이 되지 못한 세자나 세자빈의 묘를 이른다. 묘역이 넓고 송림이 울창했던 이곳은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의 주둔지로 이용되면서 무덤들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 당했다. 이후 묘역은 훼손돼 효창공원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효창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받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 된다. 해방 후 1946년 김구 선생이 일본군 숙영지를 철거하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삼의사의 유해와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등 독립운동가 묘소를 이 공원으로 이장했다. 1949년 통일의 한을 품고 흉탄에 맞아 돌아가신 김구 선생 또한 평소 유언에 따라 동지들 곁에 안장되었다.

선생의 묘소 앞에는 2002년 개관한 백범 김구 기념관이 있다. 그런 역사를 품고 있어서인지 효창공원은 사적 330호이기도 하다. 효창공원엔 효창운동장과 반공투사위령탑도 자리하고 있는데, 알고보니 과거 제1공화국과 3공화국 정권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이장하고 공원과 그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 만든 것들이었다.

과거 조선왕조의 묘원답게 수목이 울창하고 산책 길이 고즈넉하다.
 과거 조선왕조의 묘원답게 수목이 울창하고 산책 길이 고즈넉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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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 독립 운동가들의 묘를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이에 국회에서 김두한 의원은 "효창공원의 선열 묘지는 성묘이다. 이 성묘를 함부로 파서 헐어 트리는 것은 생명을 조국광복에 바친 선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등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결국 효창운동장 공사중지건의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결국 현재 규모 정도로 축소해 축구장을 지었다. 이 축구장이 바로 지금의 '효창운동장'이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공원에 골프장을 만들려는 공사를 시도하였고, 결국 효창공원에 반공투사 위령탑, 백범 김구 선생의 묘 옆엔 노인회관을 세웠다. - 위키백과 인용 

시민들의 참배가 쉽지 않은 의열사

공원 왼쪽으로 난 길로 산책을 하다 맨 먼저 의열사(義烈祠)와 마주쳤다. 의열사는 김구 주석을 비롯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녕(1869~1940), 국무위원과 비서장을 지낸 차리석(1881~1945), 광복군을 창설하고 군무부장을 지낸 조성환(1875~1948),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진 의사 이봉창(1900~1932), 상해 의거의 주인공인 의사 윤봉길(1908~1932), 아나키스트 계열의 독립운동가인 백정기(1896~1934) 등 임정 수반과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이다.

이곳에서는 임시정부수립일인 4월 13일 합동추모제가 매년 시행되고 있다. 사당 안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훼손을 이유로 문이 잠겨 있었다. 의열사 사당에 들어가 참배를 하려면 공원 관리 사무소에 따로 요청을 해야 한다. 여기까지 온 김에 의로운 선인들의 영정 앞에 서서 묵념이라고 하고 싶어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했지만 외근 중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7인의 독립운동가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 의열사(義烈祠).
 7인의 독립운동가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 의열사(義烈祠).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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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현대사 박물관이기도 한 백범김구기념관.
 우리의 근현대사 박물관이기도 한 백범김구기념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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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사 맞은편에 있는 근현대사 역사박물관이기도 한 백범 김구 기념관에도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서 김구 선생이 특유의 푸근한 웃음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기념관은 선생의 일대기와 함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찬찬히 짚어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힘세고 부강한 나라보다는 아름답고 높은 문화를 가진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겨레의 큰 스승 김구 선생(1876~1949)의 삶과 유업을 계승하고 추모사업을 봉행하기 위해 2002년 개관했다.

구한말과 근현대사를 치열하게 살다간 선생의 삶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목도할 수 있었다. 1층에선 동학혁명 관련 문서들이, 2층의 전시실에서는 이봉창·윤봉길 의사 등 독립투사들의 의거 내용과 기록문서·편지, 임시의정원 회의록과 임시정부 시정방침, 각종 증명서와 수료증 등도 볼 수 있다.

백범(白凡)이라는 김구 선생의 호에 담긴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 옥중에서 호를 백범이라고 바꾸었다. 언뜻 '흰 호랑이'라고 생각했던 백범의 의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미천하고 무식한 백정(白丁)의 백(白)과 범부(凡夫)의 범(凡)자를 따서 호를 삼은 것이다.

천한 백정과 무식한 범부까지 전부가 적어도 선생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뜻이라고. 1949년 6월에 돌아가신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은 당시 국민장을 통해 유해가 안장된 묘소로서 백범기념관 위쪽에 위치해 있다(누리집 : www.kimkoomuseum.org).

효창공원의 국립묘소화는 국가의 예

푸르른 소나무들이 뒤로 서있는 삼의사(三義士)의 묘, 맨 왼쪽이 안중근 의사의 가묘다.
 푸르른 소나무들이 뒤로 서있는 삼의사(三義士)의 묘, 맨 왼쪽이 안중근 의사의 가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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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자연스레 삼의사(三義士)의 묘와 마주했다. 삼의사란 일제에게 사형 당했거나 옥중 순국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의사를 말한다. 1946년 의사(義士) 3인의 유해를 안장한 묘소엔 3개의 묘소와 비석이 있다. 삼의사 같은 분들을 '순국선열'이라고 한다. 순국선열이란 1945년 8월 15일 광복 전에 순국한 독립 운동가를 뜻하고, 애국지사는 살아서 8.15 광복을 맞은 독립 운동가를 뜻한다.

김구 선생은 삼의사 장례식 추모사에서 "그 세 사람을 보낸 나만이 살아 있으면서 아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3열사에 대하여 부끄럽기 한량없고 회한을 금할 수 없다... 지하에 불귀의 손이 된 수만 수천의 동지들의 사심 없는 애국의 지성을 본받아 하루바삐 통일된 우리 정부 수립이 실현되기 위하여 3천 만과 같이 분골쇄신 노력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3개의 묘소 옆에는 유골이 없는 가묘(假墓)가 있다. 이 가묘는 안중근 의사를 위해 남겨놓은 가묘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게 되어 국내로 운구될 경우 이 가묘에 공식 안장할 예정이다. 안 의사의 유해는 104년이 지난 아직까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임정 요인의 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인 이동녕과 임시정부 국무장관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1945년 9월 중국에서 숨진 차리석, 그리고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역임하고 귀국 후 숨진  조성환 선생 등 애국지사 3분의 유해를 안치한 곳이다. 삼의사묘와 마찬가지로 3개의 묘소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요즘 들어, A급 전범의 후손이기도 한 일본의 아베 총리 같은 정치인들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일제 강점기 때 큰 상처와 피해를 입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게 용서와 화해는커녕 도를 넘는 극우주의, 자국 이기주의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효창공원을 국립묘소로 지정하는 것은 시대의 필요성 외에도,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에게 국가가 예를 다하는 것으로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해방 혹은 광복을 맞은 지 70년, 효창공원의 국립묘소화는 늦으나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잊지 않으며, 지난 역사를 반추하는 좋은 계기와 공간이 될 것이다. 햇살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졌던 효창공원 나오는 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 일침처럼 들려왔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4월 30일에 다녀왔습니다.
ㅇ '내 손안에 서울'에도 송고하였습니다.
ㅇ 효창공원 교통편 : 수도권 6호선 전철 효창공원역 1,2번 출구 도보 10분
ㅇ 효창공원 관리 사무소 : 02)2199-8823



태그:#효창공원, #백범 김구, #의열사, #삼의사,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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