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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 자신이 잘 살아야 합니다."

전성은 선생은 지난 4월 16일 열린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관련기사: "아이교육 방법? 당신들이나 잘 사시오").

정말 당연한 답이지만, 동시에 쉽지 않은 일이다. '가치'는 '지식'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오직 '행위'로만 전해진다. '아, 나도 꼭 저렇게 살아야지' 자발적으로 느끼는 순간 교육이 된다. 만약 부모가 '거짓말하지 말라'고 백날 가르쳐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지 뻔하다.

입으로는 공부와 인성, 둘 중에는 인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자기 아이의 착한 행동보다 성적만 좋은 옆집 아이를 부러워하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에게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올 것이다. '엄마는 너의 착한 성품보다 백 점짜리 성적표를 원한단다'라고.

"자식을 잘 키우려고 하지 마라. 너나 잘 살아라. 아이들을 망치고 싶은가? 부부 싸움을 해라. 아이들을 더 망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서로를 비하하라. 무조건 아이에 대해서는 욕심을 버려라. 부모는 그저 이 아이를 열심히 도와주라고 위탁받은 존재에 불과하다." -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에서

거창고 직업 선택의 십계, 그 의미를 찾아 보낸 3년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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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과 중1, 두 딸을 키우는 강현정 작가는 '대한민국 평균치의 기대감'으로 자녀를 대하던 평범한 엄마였다. 공부를 더 잘했으면, 친구 관계가 더 원만했으면, 아이의 결함만을 찾아 보던 엄마였다. 어린 시절, 영어 유치원을 보내지 못한 후회를 안고 살던 그런 엄마였다.

그랬던 그가 전성은 선생을 만나고 3년 동안 거창고 졸업생 30명을 만나면서 삶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갖게 됐다. 그 여정을 엮어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을 내놨다. 부제는 '보통 엄마의 직업 십계명 3년 체험기'다. 그에게 울림을 준 직업 십계명이 뭘까.

경남 거창읍의 거창고등학교 강당 뒤편엔 '직업 선택의 십계'라는 빛 바래고 촌스런 액자가 걸려있다. 1956년부터 20년 동안 이 학교 교장을 맡았던 고 전영창 선생의 철학과 가르침을 그의 아들이자 후임 교장이었던 전성은 선생과 도재원 선생이 열 가지 계명 형태로 정리한 것.

아래는 거창고의 졸업생들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들여다보는 거울로 삼는다는 '직업 선택의 십계'다.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에서 재인용

내 아이에게 시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솔직한 부모다. "왜 그래야 하는데?"란 반문을 하고 싶다면 더 솔직한 부모다. 그런데도 거창고 졸업생 다수는 세상 살면서 이 십계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꼽았다.

작가는 바로 그 답을 찾아 3년을 보냈다. 서툰 몇 마디로 십계를 설명하려면, 희생적인 삶을 살아내라는 막연한 뜻밖에 남지 않을 게다. '도달하기 어렵지만 외면할 수 없는, 마음에 자꾸 말을 걸어오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남의 아픔에 무관심한 사람은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다"

20여 년 동안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어온 교육방송 피디를 통해 더 많은 월급을 포기하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 삶을 말하는지 체득했다. 남들이 가고자 하는 도시 학교가 아닌 가장자리로 향한 초등학교 교사를 만나 진정한 사랑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보았다.

안정적인 직장인 은행을 뛰쳐나와 마음의 소리를 쫓아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간 문화재복 원가도 만났다.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향한 영농인의 삶을 사는 농부의 아들도 있었다.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기 위해 일본에서 '종군위안부' 영화를 상영한 시민 운동가이자 교수도 거창고를 졸업했다.

직업십계명이 삶과 일에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라면, 그것을 실천하는 원천이 되는 에너지가 사랑이다. 치열하게 노력하여 만들어가는 사랑, 그 사랑은 남의 아픔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아픔을 섬기는 마음이다.

섬기는 과정에서 내가 다소 힘들 수도 있고 내 이익을 챙기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길로, 그 좁은 문으로 기꺼이 걸어가는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직업 십계명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에서

작가를 만난 어느 거창고 졸업생은 직업 십계명을 '브레이크'라고도 표현했다. 지키지 못하면 자꾸 걸리는 가슴 속 못 같은 존재. 차라리 몰랐더라면 마음이나 편했을 텐데 알고 있으니 마음대로 못 하겠고 지키지 못하니 찜찜하게 만드는 그런 애물단지였단다.

"브레이크 하나씩 달고 졸업하는 것 같아요. 브레이크가 있다고 해서 다 잘 작동하는 건 아니잖아요. 고장이 날 수도 있고, 본인이 밟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만 분명히 브레이크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거창고를 거쳐 나가면 그런 거 하나씩은 달고 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는 힘들죠. 하지만 그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인생에서 생각보다 큰 부분일 수 있어요." -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에서 

전 선생은 책에서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위대함이 진정한 위대성'이라고 말했다. 교육 정책을 탓하기 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게 먼저라는 얘기다. 그게 바로 선생이 가장 잘한다는 "너나 잘 하세요" 정신이 아닐까.

역시 상통한다. 부모들이 잘해야, 부모들이 바뀌면 아이들도 달라진다. '10만인특강'에서 "1만 명의 졸업생 중에 부부관계가 좋은데 문제를 가진 아이를 단 한 명도 본 적 없다"며 목청을 높인 선생의 자신감은 여기서 비롯한다.

달리는 힘이 있다면 멈추는 힘도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에 귀 기울이는 이유, 전성은 선생의 이 한 마디는 우리 교육이 분명히 바뀌어야 할 대상이란 점을 여실 드러낸다.

"남의 아픔에 무관심한 사람은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다." -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에서

덧붙이는 글 |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강현정·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펴냄 / 2015.01 / 1만2800원)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 보통 엄마의 거창고 직업십계명 3년 체험기

강현정.전성은 지음, 메디치미디어(2015)


태그:#전성은, #강현정, #메디치미디어,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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