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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으로 장식된 화려한 붉은 벨벳 의자에 한 노인이 앉아 있습니다. 부드러운 흰색 레이스 의상에 어깨엔 붉은색 케이프를 두르고 붉은색 모자를 쓴 노인은, 오른손 약지에 황금 반지까지 끼고 있어서 한 눈에도 고위 성직자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찌푸린 미간과 다듬지 않은 수염, 붉은 기가 짙은 얼굴빛에 무섭기까지 한 강렬한 시선, 그리고 꽉 다문 입과 앞으로 약간 굽힌 자세는 고집 세고 성질 고약한 영감님처럼 보입니다. 이 영감님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입니다. 스페인 바로크 미술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입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 디에고 벨라스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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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17세기 초 카라바조의 화풍은 전 유럽에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나 봅니다. 벨라스케스 역시 초기에는 중간 단계를 생략한 어두운 조명 아래 인물과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테네브리즘(tenebrism, 어두운 방식)'에 매료되어 수많은 인물화를 남깁니다. 하지만 그의 사실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카라바조와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먼저 그림의 대상이 달랐습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당시 생존해 있던 인물들이었죠. 특히 왕족이나 귀족 같은 권력층뿐만 아니라 시녀나 난쟁이, 물장수, 노예, 광대 같은 하층민도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인격을 가진 실존 인물로서의 사실성을 부여하죠.

벨라스케스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그는 카라바조와 같은 연극적인 조명이나 렘브란트와 같은 심리적 느낌이 들어간 빛이 아니라 실제 우리 눈이 지각하는 빛으로 인물을 묘사합니다. 그리고 정밀 묘사로서의 사실성이 아니라 물감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자유로운 붓질에 의한, 말하자면 200년 후 인상파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진보된 의미의 '현실성'을 추구합니다. 이상화된 인물 묘사에서 탈피한 것이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 앞에 나타난 브뤼헬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부분) 로마 도리아팜필리 미술관
▲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 (부분)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부분) 로마 도리아팜필리 미술관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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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벨라스케스의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을 다시 봅니다. 이상화된 이전의 초상화들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들로 인해 첫 부분에 나열했던 고집 세고 성질 고약한 영감님의 특징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실제로 일중독에, 고집스럽고 성급한 성격이었던 인노켄티우스 10세가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인노켄티우스 10세도 이 그림을 보고 처음엔 너무 현실적인 자신의 모습이 못마땅했으나, 나중에는 "지극히 생생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걸 보면 (역사에서 부정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괜히 교황은 아닌가 봅니다. 어쨌든 벨라스케스는 이후 18세기의 고야, 19세기의 마네와 인상주의, 심지어 20세기의 피카소와 프란시스 베이컨 같은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화가 중의 화가'(마네의 편지 중)라는 평가까지 받게 됩니다.

벨라스케스를 만나고 나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의 숙제를 다 한 것 같아서 나머지 그림들은 슬슬 스쳐 지나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궁전이었던 곳을 미술관으로 꾸민 탓에 그림들이 궁전 주인들의 컬렉션처럼 배치되어 전문 미술관처럼 한 그림에 집중하기가 쉽지도 않았습니다. 아, 물론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한 방에 따로 전시실을 마련해서 집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합니다. 그렇게 명작들을 스치듯 둘러보고 있는데 그만 내 눈을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브뤼헬 때문이었습니다.  

근래에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아르킴볼도, 히에로니무스 보스, 그리고 브뤼헬. 그런데 그중에 브뤼헬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얀 브뤼헬 '지상 낙원' 로마 도리아팜필리 미술관
▲ 지상 낙원 얀 브뤼헬 '지상 낙원' 로마 도리아팜필리 미술관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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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폭에 확대경을 대고 보아야 할 만큼 세밀하게 묘사된 소품들이나 동식물들. 그런가 하면 등장인물은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 전체가 비현실적 상상의 세계처럼 느껴집니다. 이후 미친 듯이 브뤼헬만 찾았습니다. 한 작품 한 작품 온 신경을 다해 보고 또 보았죠. 그림에 말 그대로 코를 박고 가까이 봅니다. 그것은 경이와 탄식의 연속이었습니다.

얀 브뤼헬 '불의 은유'(부분) 로마 도리아팜필리 미술관
▲ 불의 은유 (부분) 얀 브뤼헬 '불의 은유'(부분) 로마 도리아팜필리 미술관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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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브뤼헬의 화풍이긴 한데 정말 브뤼헬의 그림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런 그림들을 브뤼헬의 화집에서 본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명패를 보니 'J. Breughel'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순간 요즘 말로 '멘붕'이 살짝 오려고 합니다. 나와 당신이 알고 있는 플랑드르의 풍속화가 브뤼헬은 '피터 브뤼헬(Pieter Brueghel)'인데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급하게 아이패드를 꺼내 구글링을 합니다. 그러자 금세 '얕은' 지식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그는 피터 브뤼헬의 둘째 아들 '얀 브뤼헬'이었습니다. 첫 아들 '피터 브뤼헬 2세'도 유명한 화가라고 합니다. 심지어 얀 브뤼헬의 아들 '얀 브뤼헬(2세)'도 역시 화가라고 합니다. 정말 가족끼리 다 해먹은 셈이지요. 그러다 보니 브뤼헬 일가의 그림들 중에는 아직까지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작품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곳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 제가 찾은 브뤼헬 일가의 작품은 12, 13편 정도입니다. 대부분 '얀 브뤼헬'의 작품이었는데 얀 브뤼헬 1세인지 2세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제목들만 소개하면 '성모자와 동물들', '에덴 동산과 아담의 창조', '불의 은유', '물의 은유', '공기의 은유', '땅의 은유' 등입니다.

생애 첫 여행의 깜짝 선물 브뤼헬 일가의 작품

피터 브뤼헬 2세 '새덫과 스케이터가 있는 겨울 풍경' 로마 도리아팜필리 미술관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아버지 피터 브뤼헬의 작품의 모작같습니다.)
▲ 새덫과 스케이터가 있는 겨울 풍경 피터 브뤼헬 2세 '새덫과 스케이터가 있는 겨울 풍경' 로마 도리아팜필리 미술관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아버지 피터 브뤼헬의 작품의 모작같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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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피터 브뤼헬의 작품, '나폴리 만의 전투'와 '새덫과 스케이터가 있는 겨울 풍경'도 발견했는데, '겨울 풍경'은 아무래도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아버지 피터 브뤼헬의 작품을 아들 피터 브뤼헬이 모방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나에게 이곳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 만난 브뤼헬 일가의 작품들은 생애 첫 여행의 깜짝 선물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입니다.

브뤼헬 일가의 작품들 이후 티치아노의 '세례 요한의 목을 든 살로메', 조반니 벨리니의 '할례', 안니발레 카라치의 '이집트로의 도주', 그리고 필리포 리피의 또 다른 '수태고지' 등 수많은 명작들을 안타깝게 스쳐 지나고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 나오니 로마의 초겨울 햇살이 눈부십니다. 이제 다시 이탈리아인들이 얼마나 카라바조를 사랑하는지 확인하러 갈 시간입니다. 목적지는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Chiesa di San Luigi dei Francesi)'입니다.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 다른 성당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 모여 있습니다.
▲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 다른 성당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 모여 있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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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십자군 원정을 주도했던 프랑스 왕 루이 9세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앞에는 지금까지 봐왔던 다른 성당들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처음엔 단지 이곳이 관광객 많기로 유명한 '나보나 광장'과 '판테온' 사이에 있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중앙 제단 왼쪽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나는 단번에 그들이 모두 나와 같은 목적으로 이 성당에 왔다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그것은 카라바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 이 성당의 '콘타렐리 예배당'을 장식하고 있는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 연작 세 편을 보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로마, 산 데이지 루이 프란체시 성당 - 그림 속의 빛과 성당 창을 통해서 들어온 빛이 같은 방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성 마태오의 소명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로마, 산 데이지 루이 프란체시 성당 - 그림 속의 빛과 성당 창을 통해서 들어온 빛이 같은 방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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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먼저 왼쪽에 있는 '성 마태오의 소명'을 봅니다. 마태복음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성 마태오는 원래 로마를 위해 일하는 세금 관리였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특히 강했던 그는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녀나 죄인과 같이 천대받는 부류였던 세리가 되어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거두어들였죠.

그런 마태오(성경에서는 제자가 되기 전의 마태오를 레위라고 합니다)가 16세기 베네치아인 복장을 한 채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술집에 있습니다. 그들은 돈을 세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전통적 차림의 예수가 베드로와 함께 나타나 누군가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나를 따르라." 갑작스러운 부름에 놀란 마태오는 돈을 세던 것도 잊어버리고 '저 말입니까?'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예수를 바라봅니다.    

성경의 한 구절을 묘사한 이 그림은 바로크 미술과 카라바조의 예술 정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선 일반적인 성화와 달리 예수가 화면의 중앙에 위치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작품의 주인공이 성 마태오이니 만큼 그럴 수도 있지만, 예수는 화면 가장 오른쪽 위치에, 카라바조 특유의 어두운 배경 속에서, 그것도 몸 대부분이 성 베드로에게 가려져 있습니다. 머리 위의 윤광(nimbus : 성인들의 성화상 머리 뒷부분에 둥근 광채를 그린 것)이나 손 동작이 아니면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죠. 신성을 일상적이고 사실적으로 재현하려 했던 카라바조의 정신이 잘 드러납니다.

우리에게 많은 고민 안겨주는 문제적 화가 카라바조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부분)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 자신을 가리키는 예수를 의아한 듯 바라보는 마태오. 가장 왼쪽의 돈을 세고 있는 젋은이와 그 위의 안경 쓴 이도 물욕에 빠져 있기는 마태오와 마찬가지입니다.
▲ 성 마태오의 소명(부분)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부분)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 자신을 가리키는 예수를 의아한 듯 바라보는 마태오. 가장 왼쪽의 돈을 세고 있는 젋은이와 그 위의 안경 쓴 이도 물욕에 빠져 있기는 마태오와 마찬가지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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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작품의 주인공인 성 마태오에게는 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은 그림 속에 묘사된 빛만이 아닙니다. 그림 속의 빛의 방향은 실제 성당의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의 방향과 일치합니다. 현실의 빛과 허구의 빛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의 빛과 자연의 빛, 그리고 어둠 속을 살아가던 마태오를 깨닫게 하는 신의 빛이기도 한 그 빛은 감상자들에게도 가상과 현실의 절묘한 교차를 통해 무언의 가르침과 특별한 감동을 줍니다. 앞서 '성 이그나치오 디 로욜라 성당' 천장화에서 보았던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지요. 

그런데 그림을 계속 보다 보니 저 사람이 정말 성 마태오가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러면, 주변 상황에는 아랑곳없이 고개를 숙인 채 돈만 열심히 세고 있는 화면 제일 왼쪽의 젊은이는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안경을 쓰고 돈 세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그들 모두 사실 깨닫기 전의 성 마태오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저들 모두 물욕에 사로잡힌 현실의 인간들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의문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카라바조는 정말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 문제적 화가가 분명합니다.

이제 중앙의 '성 마태오와 천사'를 봅니다. 의자에 한 쪽 무릎을 얹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마태오. 그 위에 천사가 나타나 신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문맹이었던 성 마태오에게 천사가 영감을 주어 복음서를 쓰게 했다는 일화를 표현한 이 그림은 두 명의 인물만으로 굉장히 매력적인 장면을 보여줍니다.

카라바조 '성 마태오와 천사'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 성 마태오와 천사 카라바조 '성 마태오와 천사'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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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카라바조는 원래 이 그림에서 글자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모습으로 성 마태오를 묘사하려 했다고 합니다. 다리를 꼬고 앉아 관람객 쪽으로 뻗은 더러운 발, 농민처럼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얼굴, 거기다가 천사가 쥐어주는 펜에 손을 맡기고 수동적으로 복음서를 써 내려가는 모습은 분명 성당 측이 원했던 성인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이 첫 번째 그림은 이탈리아의 한 부자가 구입했으나 세계 2차 대전 때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흑백사진으로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카라바조 '성 마태오와 천사' - 가톨릭 측으로부터 거절당한 원래의 그림인데 세계 2차 대전 때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흑백사진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 성 마태오와 천사 카라바조 '성 마태오와 천사' - 가톨릭 측으로부터 거절당한 원래의 그림인데 세계 2차 대전 때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흑백사진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 위키피디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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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로마 가톨릭 측으로부터 '점잖지 못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카라바조는 새롭게 아카데믹하고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게 됩니다. 붉은색 옷을 입은 성 마태오와 하얀색의 천사는 어둡고 검은 배경 위에 극적인 명암과 색채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방금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천사의 움직임과 비스듬히 몸을 돌려 천사를 바라보는 성 마태오의 불안정한 자세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 있어 보입니다. 비록 가톨릭의 제약에 자신의 뜻을 굽힌 작품이긴 하지만 그 제약마저 저토록 아름답게 수용한 카라바조. 왜 그가 이탈리아인들의 사랑을 받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에 있는 '성 마태오의 순교'를 봅니다. 시리아와 동방의 페르시아에서 선교에 힘쓰던 마태오는 에티오피아에서 칼에 찔려 순교합니다. '포폴로 성당'에서 보았던 '성 베드로의 순교' 장면처럼 십자가 형상으로 누워있는 성 마태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는 그에게 순교를 뜻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건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성당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그런 마태오를 비춰주고 있습니다. 성 마태오를 부른 것도, 그를 천상의 성인으로 구원한 것도, 바로 하늘의 빛이란 뜻이겠지요. 바로크 미술의 지향을 선도적으로 보여준 카라바조의 천재성에 말 그대로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순교'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 성 마태오의 순교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순교'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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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느낌은 나만 가진 게 아닌가 봅니다. 카라바조를 만나기 위해 몰려온 수많은 사람들.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모인, 그래서 좋은 위치에서 제대로 된 그림 감상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에는 숨길 수 없는 찬탄과 감동이 가득합니다.

그 와중에 타인에 대한 작은 배려도 잊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것은 물론이고, 셔터 소리를 내지 않고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 촬영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뒷사람이 먼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Sorry(미안해요)'하며 살짝 비켜 주기도 합니다.

카라바조의 예술 정신이 이런 방식으로 수백 년을 거쳐 사람들과 함께 생생하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소름이 돋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오로지 3편의 그림을 보기 위해 찾아 오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무시 못할 우리의 예술 작품들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가 하는 안타까움도 듭니다.

카라바조의 감동을 가슴 깊이 간직한 사람들과 함께 성당을 나섭니다. 그리고 그들의 흐름대로 발길을 옮깁니다. 이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탁 트인 광장이 나타납니다. 어제 만났던 바로크 미술의 또다른 거장, 베르니니가 만든 세 개의 멋진 분수가 나란히 서 있는, 로마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입니다.

(* 2-4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도리아팜필리미술관, #벨라스케스, #산루이지데이프란체시, #카라바조,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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