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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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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대단한 장난감이 있어야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맨손과 맨몸으로도 즐겁게 놉니다. 아이들은 비싼 옷을 입어야 예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모래밭이나 풀밭에서 뒹굴며 놀아도 예쁩니다. 흙투성이가 되어도 예쁘고, 땀투성이가 되어도 예쁩니다. 씩씩하게 뛰놀 줄 아는 아이들은 모두 예쁩니다. 활짝 웃고 노래하는 아이는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 새앙쥐 한 마리가 외양간 모퉁이 벽 뚫린 구멍으로 얼굴을 쑥 내밀었어요, 쪼끄만 두 눈이 반짝반짝했어요 ..  (7쪽)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아이들은 모두 한 가지를 바랍니다. '신나게 놀고 싶어!'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은 놀지 못합니다. 신나게 놀기는커녕 놀이가 콱 막힙니다.

아이들은 공부해야 하는 목숨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시험공부를 잘 해서 시험성적이 잘 나와야 하는 목숨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대학교에 붙을 때까지 '죽은 듯이' 놀이하고 동떨어진 채 참고서와 문제집만 붙잡아야 하는 목숨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이들은 시험기계나 입시노예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홀가분하게 뛰놀 수 있어야 하고, 마음껏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 골마루에서 조용조용 걸어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길거리이든 골목이든 마당이든 어디에서든 까르르르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마에 땀을 흘리며 뛰놀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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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한밤중에 뭣 하러 나왔니?" "동생들 먹을 것 찾아 나왔어요. 우리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황소 아저씨는 뜻밖이었어요 ..  (14쪽)

권정생 님이 쓴 글에 정승각 님이 그림을 그린 <황소 아저씨>를 아이들과 찬찬히 읽습니다. 누렁소와 새앙쥐가 나오는 그림책을 조용히 읽습니다. 어두운 밤에 언니 새앙쥐는 먹이를 찾으러 외양간에 갑니다. 고요한 밤에 누렁소는 새앙쥐 소리와 몸짓에 잠을 깹니다.

언니 새앙쥐는 동생 새앙쥐를 보살핍니다. 어미 새앙쥐를 잃었으나 씩씩하게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아저씨 누렁소는 새앙쥐를 보면서 참으로 대견하다고 여깁니다. 아저씨 누렁소가 먹고 남은 밥을 새앙쥐한테 기꺼이 나누어 줍니다. 추운 겨울밤이 찾아오니 새앙쥐더러 좁은 굴에서 오들오들 떨지 말고 이녁 품에 깃들어서 따스하게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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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앙쥐는 얼른 콩 조각 하나를 물고 동생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갔어요. 새앙쥐네 집 작은 방엔 동생들 넷이서 모여 앉아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요것 넷이서 나눠 먹어라. 내 또 가서 금방 가져올게." 새앙쥐는 열네 번이나 황소 아저씨 등을 타넘었어요 ..  (18쪽)

누렁소는 고삐에 매인 몸입니다. 누렁소는 사람들이 주는 밥을 받아서 먹습니다. 누렁소는 갇힌 몸이요, 사람이 시키는 일만 해야 합니다. 누렁소가 '가진 것'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누렁소한테 일을 더 시키지 못할 만한 때가 다가오면, 누렁소는 목숨을 잃고 고기가 됩니다. 외양간도 누렁소한테는 '오늘 깃든 집'일 뿐, '언제까지 깃들 수 있을 집'인지 알 수 없습니다.

누렁소는 빈몸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빈몸이라 할 누렁소는 이녁한테 몇 가지 없는 것을 새앙쥐하고 스스럼없이 나눕니다. 함께 즐기고 같이 누리며 서로 아끼는 길을 갑니다.

새앙쥐는 누렁소 도움을 받을밖에 없습니다. 새앙쥐도 빈몸이고 누렁소도 빈몸인데, 빈몸끼리 만나서 돕고 도움을 받습니다. 언니 새앙쥐는 동생 새앙쥐를 이끌고 아저씨 누렁소 둘레에서 놀고 먹고 자고 이야기하고 웃고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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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앙쥐들은 황소 아저씨랑 사이좋은 식구가 되었어요. 황소 아저씨 등을 타넘고 다니며 술래잡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했어요. "오늘부터 나하고 함께 여기서 자자꾸나." "예, 아저씨!" ..  (31쪽)

빈몸끼리 살을 부비고 지내는 삶입니다. 빈몸끼리 어깨동무를 하는 삶입니다. 틀림없이 누렁소와 새앙쥐는 빈몸입니다. 그런데, 둘(누렁소하고 새앙쥐)은 넉넉히 나눕니다. 너그러운 품이 되고 넓은 마음이 됩니다. 따사로운 웃음이 되고 기쁜 노래가 됩니다. 이리하여, 누렁소와 새앙쥐는 아름다운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몸은 갇혔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홀가분하게 하늘을 날아오르는 고운 숨결입니다.

권정생 님은 <황소 아저씨>라는 이야기에서 이녁 삶을 고스란히 드러냈구나 싶습니다. 몸은 아프고 갇히고 외롭다고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하늘나라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사랑이라는 넋을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로구나 싶습니다.

꿈을 꾸기에 사랑을 찾습니다. 사랑을 찾기에 꿈을 꿉니다. 삶을 생각하기에 자그마한 일에도 웃습니다. 삶을 헤아리기에 작은 힘으로도 이웃을 도우면서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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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황소 아저씨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2001.1.25.



황소 아저씨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2001)


태그:#황소 아저씨, #그림책, #권정생, #정승각,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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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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