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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는 유명한 게임 이론이면서 협력과 경쟁의 참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다. 용의자 '갑'과 '을'이 각각 다른 취조실에 격리되어 심문을 받는다고 하자. 세 가지 선택지가 제시된다. 갑과 을 모두 죄를 자백하면 각각 5년을 복역한다(가). 모두 자백을 거부하면 각각 6개월을 복역한다(나). 갑(을)이 죄를 자백하고 을(갑)이 자백을 거부하면 갑(을)은 즉시 풀려나고 을(갑)이 10년을 복역한다(다).

'자백'을 경쟁으로, '자백 거부'를 협력으로 바꿔보자. 쌍방 경쟁은 갑, 을 모두 자백하는 경우다. 둘 다 5년을 복역해야 한다. 쌍방 협력은 갑과 을이 함께 자백을 거부하는 것이다. 각자 6개월을 복역해야 한다. 쌍방 경쟁에 비해 복역 기간이 10배로 줄어든다.

갑과 을 각자에게 최악의 경우는 한쪽이 협력하고 다른 쪽이 경쟁할 때 생긴다. 가령 갑이 자백하고 을이 자백하지 않으면 갑은 석방되지만 을은 10년을 복역해야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죄수의 딜레마에 담긴 함의는 개인에게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 서로에게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역설이다. 각자가 이기적인 선택을 해 경쟁을 하게 되면(가, 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협력을 선택했을 때(나)보다 큰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의 4․29 재·보선 패배 원인에 대한 분석이 여러 갈래로 나오고 있다. 무능한 야당론, 야권분열론 등이 대표적이다. 나는 무능한 야당론의 연장선에서 야당 특유의 싸움닭 기질을 잃어 버리고 피아를 구별하지 못하는 '물렁한 야당론'을 덧붙이고 싶다. 죄수의 딜레마 이야기를 꺼낸 이유이기도 하다.

싸움닭 기질 잃어버린 물렁한 야당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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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지난 2월 9일 취임 후 첫 일정을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서 보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언론에서는 (당내 반발로 비록 일부에 그치긴 했지만) 야당 지도부가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두 전직 대통령 묘역을 처음 참배한 것이라며 비중 있게 보도했다.

문재인 대표는 참배에 앞서 방명록에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입니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꿈꿉니다"라고 적었다. '화해'와 '통합'을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쉽게 하지 못하는(않는) 화해와 통합을 야당 대표가 강조한 것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린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화해와 통합은커녕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행보를 걷는 이가 박 대통령 아닌가. 영남권 인물 중심의 극심한 편중 인사,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에서 드러나는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탄압,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철저한 외면 따위가 대표 사례들이다.

문 대표는, 화해하고 통합할 의사가 없어 뒷짐만 지고 있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앞에서 뻘쭘히 혼자 손만 내민 꼴이 돼버렸다. 통 크고 포용력 있는 야당 대표 이미지를 노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공언하고 강한 야당을 표방한 문 대표에게 기대를 건 야당 지지자들은 한숨만 내쉬었다.

문 대표의 '천안함 폭침 인정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살필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천안함 조사에 대한 신뢰 여부를 물은 적이 있다. 조사 결과, 정부 조사를 '불신한다'는 의견이 47.2퍼센트, '신뢰한다'는 의견이 39.2퍼센트로 나왔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을 '의심'하면 '종북'이 되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많은 국민이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문 대표는 천안함 폭침 인정 발언 등 최근의 행보가 '우클릭'이 아니냐는 질문에 "유능한 경제정당, 안보정당은 왼쪽과 오른쪽,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수권 정당이 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능력"이라고 규정하면서 반박했다고 한다.

천안함 폭침을 진짜 믿어서 한 말이 아니라 '정략적'인 의도를 갖고 계산되어 나온 발언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그것을 인정하는 데 5년이 걸린 것은 너무 길었다"라며 은근히 '조롱'한 배경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카메라 앞에서는 으르렁, 뒤에선 친분과시

물색없이 '물렁한' 새정치연합의 정점 사례는 동교동계를 대표하는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이 에스엔에스(사회관계망서비스, SNS)에 올린 '홍준표 경남지사 응원 글'이 아닐까.

지난달 27일 박 의원은 에스엔에스를 통해 "홍준표 지사! 그가 요즘 성완종 리스트와 연관돼 고초를 겪고 있지만 곧 올무에서 빠져나오리라 기대한다. 홍 지사! 홧팅!"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비판 여론에 밀려 급히 삭제했다. 며칠 후 박 의원의 응원 글 소식을 전해 들은 홍 지사는 "고맙죠"라며 화답했다고 한다.

홍 지사는 속으로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힘든 상황에서 평소의 인간적인 정리를 잊지 못해 격려의 말을 전해 준 박 의원에게 진정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했을까, 아니면 '성완종 리스트로 흉흉해진 민심 잘 모르는 박 의원'이라며 비웃었을까.

무엇이 되었건 박 의원의 응원 글이 '성완종 리스트'를 물타기하려는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임은 틀림없다. 카메라 앞에서는 서로 으르렁대다가도 뒤에서는 인간적인 냄새가 물신 풍기는 '형님, 동생' 호칭어를 써 가며 친분을 과시하는 게 여야 정치인들이다. 박 의원의 글을 계기로 그런 정치인들의 행태에 새삼 넌더리를 낸 국민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조선 영조 때 노론의 영수였던 민진원(1664~1736)은 소론의 거두인 이광좌(1674~1740)와 함께 정승이 되었다. 이들은 빈청에 좌정할 때 가운데에 병풍을 치고 떨어져 않았다고 한다. 노론의 명신이었던 이명식(1720~1800)이 남인 채제공(1720~1799)과 신구 화성유수로 인장을 교환할 때에도 병풍을 사이에 두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인 심노숭(1762~1837)이 <자저실기(自著實記)>에서 당파 간 금기의 사례로 든 이야기들이다.

새정치연합과 새누리당을 조선 후기의 당파로 볼 수는 없겠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움직이는 현실 정치는 힘과 명분, 실리 등이 복잡하게 얽힌 '피 튀기는 전쟁터'다. 힘과 명분이 부족하다고 그 시대 당파들처럼 곧장 사약을 받거나 유배를 가는 건 아니지만 물리적인 죽음과 배척이 전혀 없지도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그 극명한 예가 아닐까.

현재의 새정치연합은 상대방이 죄를 자백하면서 배신하고 경쟁을 하는데도 자백을 거부하면서 '무한 협력'을 하려는 어리석은 죄수와 비슷해 보인다. 그런 무능과 물렁함 때문에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물타기의 하나로 참여 정부 시절의 '사면 논란'을 키워가며 '노무현 때리기'를 시도한 새누리당에게 변변히 대응하지 못한 게 아닐까. 그 결과는 재·보선 전패라는 '악몽'으로 나타났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가 협력과 경쟁의 현실적인 측면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그의 관심사는 우리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헤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액설로드는 죄수의 딜레마 이야기를 게임으로 보고 복역 기간을 최소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대회를 열였다. 그의 명저 <협력의 본질>에 따르면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 이 대회에 1차에 14개 팀, 2차에 62개 팀이 참가했다고 한다.

두 대회 모두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략은 단 2수로 이루어진 간단한 것이었다. '첫 수는 협력한다', '그다음부터는 상대방이 방금 전에 한 대로 따라 한다'가 전부인 이른바 '팃포탯(Tit for 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었다. '협력에는 협력으로, 경쟁에는 경쟁으로'가 최선의 이익을 가져온 것이다.

노루 때린 몽둥이 삼 년 우린다는 속담이 있다. 조금이라도 필요한 것을 두고두고 우려먹는다는 뜻이다. 잊힐 만하면 새누리당이 들고 나오는 '노무현 때리기'가 바로 그 '노루 때린 몽둥이' 격 아닐까. 협력을 외면하는 상대방에게 협력은 필요 없다. 그것이 냉정한 현실 정치의 논리다. 재·보선 전패로 위기에 빠진 새정치연합이 발분할 때 새겨보아야 할 현실적인 방책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태그:#새정치민주연합, #팃포탯 전략, #죄수의 딜레마, #새누리당, #4.29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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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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