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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얻어만 먹던 남편, 당차게 죽순 요리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맛은...
 아내에게 얻어만 먹던 남편, 당차게 죽순 요리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맛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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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죽순 요리 해줄까?"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이런 날은 움직이기 보단 지지리 궁상떨기 딱 좋은 날이지요. 늘어지더라도 먹어야죠? 파전이나 부추전이 '딱'인데…. 까불고 있네요. 지금이 제철이라는 죽순이 어딘데! 죽순, 맛이 순해 어느 음식에나 어울리는 고급 건강 웰빙 식품 재료라네요.

사랑스런 아내가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난리니 감사하지요. 이처럼 비 오는 날, '우후죽순으로 자란다'는 대나무 죽순 요리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성싶네요. 대나무는 분죽과 왕죽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그 중 식용 대나무로 '맹종죽(孟宗)竹)'이 꼽힙니다. 하여, 죽순 중 으뜸은 자연스레 '맹종죽순'이 꼽힙니다.

우리나라에선 80% 이상이 거제도에서 납니다. 남기봉 대표(거제농산물수출영농조합법인)에 따르면 "맹종죽은 중국 오나라 때 효자 맹종(孟宗)이 아프신 부모님 병을 고치기 위해 한겨울에 죽순을 찾아 부모님 병을 고쳐 붙인 이름"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효자 맹종이 죽순이 없는 겨울에, 부모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맹종(盲從,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남이 시키는 대로 무턱대고 따름)한 나머지, 지극정성으로 죽순을 찾아, 드시게 해 병을 고쳤다는 겁니다. 이로 보면 죽순은 아픈 사람 낫게 하는 뭔가가 있지 않나 싶네요. 거제도 시인 김용호 님의 시(詩) <죽순> 한 수 읊지요.

뭐 해먹을까? 거제 산 맹종죽순 땜에 행복한 고민

거제 맹족죽순입니다.
 거제 맹족죽순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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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만든 죽순 들깨 나물입니다.
 아내가 만든 죽순 들깨 나물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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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  순
                          김용호

순간을 인내하여 하늘에 닿으리라
햇살은 댓잎사이 파스름 산란하고
새들도 둥지를 떠나 고요도 따로 없다

정지된 시간들을 다시금 또 쪼개어
겨우내 땅속에서 길렀던 힘찬 꿈을
밀어라 하늘을 향하여 봉오리가 솟는다

김용호 시인은 죽순이 땅을 뚫고 태어나는 건, '하늘에 닿고야 말겠다!'는 꿈으로 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끄러운 대나무 특성 상 뱀들이 나무를 기어오르지 못해, 뭇 새들의 알과 새끼들을 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생명의 요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연, 생명의 터전이지요.

"뭐 해먹을까?"

아내는 남편이 거제도에서 가져 온 맹종죽순 땜에 행복한 고민입니다. 죽순은 버섯과 더불어 아내가 좋아하는 식재료 중 하나입니다. 죽순에 특히 많은 식이섬유 때문입니다. 다이어트에 좋고, 변비 해소와 숙변 제거에 효과적이니까. 죽순은 남녀노소 불문, 비만과 고혈압 예방에도 좋답니다.

죽순은 회 무침이 맛있지. 오징어가 있어야겠네!

죽순을 굽습니다. 텍도 없이 죽순, 삼겹살, 양파가 함께하는 죽순삼합 요리에 도전했지요.
 죽순을 굽습니다. 텍도 없이 죽순, 삼겹살, 양파가 함께하는 죽순삼합 요리에 도전했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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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인터넷을 뒤집니다. 죽순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참 많다며 뭘 해 먹을지 망설입니다. 대차나, 죽순 요리가 넘치고 넘칩니다. 죽순 회 무침, 죽순 죽, 죽순 샐러드, 죽순 비빔밥, 죽순 구이, 죽순 냉채, 죽순 무 쌈, 죽순 탕수, 죽순 된장찌개, 죽순 효소 등 다양합니다.

"죽순 구이 먹고 싶은데…."

저도 몰래 눈치 없이 말하고, 아차 싶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할 나이에…. 대신,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고추장 양념에 재워 놓은 죽순을 프라이팬에 올려 지글지글 구워 먹는 상상…. 아~, 침 고인다! 아내는 죽순을 꺼내 잘게 자릅니다. 잘게 자르면 일단 구이는 물 건너 간 걸로. 침만 삼키고 맙니다. '꿩 대신 닭'이지요.

"무슨 요리 하는 거야?"
"왜, 궁금해! 죽순 들깨 나물."

여기엔, 부부의 음식 취향이 들어 있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은 아내. 고기를 즐기는 아이들과 남편. 아내는 지금, 자신을 위한,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에 돌입했습니다. 들깨 가루와 새우까지 등장합니다. 얻어먹는 주제에 그거라도 먹으려면 찍소리 않아야죠. 남편 실망을 눈치 챘을까. 아내가 덧붙입니다.

"죽순은 회 무침이 맛있지. 오징어가 있어야겠네!"

사오라는 건지, 포기하겠다는 건지, 알쏭달쏭합니다. 한 템포 늦게 "내가 사 올까?" 했더니, 반응이 영 시원찮습니다. 에이~, 더러워서…. 토라져 봤자, 저만 손해지요. 아내, 구슬려서 기어코 얻어먹던지, 아니면 일찌감치 포기해야 합니다. 여기에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어머니 같으면 아들이 먹고 싶은 걸 군말 없이 해 주셨을 텐데….

내가 먹고 싶은 요리, 직접 해 먹으면 될 것을...

죽순 삼합, 고추장 양념을 만들었습니다. 아내 왈, 맛이 국적불문이라 이상하답니다.
 죽순 삼합, 고추장 양념을 만들었습니다. 아내 왈, 맛이 국적불문이라 이상하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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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 삼합의 구성물인 삼겹살과 양파를 굽습니다.
 죽순 삼합의 구성물인 삼겹살과 양파를 굽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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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종 죽순

김용호

맹종죽 칼로 썰고 참대순 찢어 담고
양념은 간단하니 손으로 무쳐 내소
생전의 어머니께서 그리 정갈 하였나니

편을 뜬 맹종죽순 찹쌀풀 묻혀내어
튀기듯 전을 부쳐 가지런히 담아 보소
내 오늘 제대로 한번 자식노릇 해보리라

청청한 기슭 돌아 어머니 계신 곳에
차반을 손에 들고 휘이휘 나아 간다
어머니 맹종입니다 그리 좋아 하오시던

이런 방법이 있었습니다. 먹고 싶은 거, 내가 내손으로 직접 해 먹으면 될 것을…. 그렇습니다. 꼭 아내에게 의지할 필요 없습니다. 수틀리면, 눈치 보지 말고 직접 나서면 되지요. 용기 내 봤는데, 순탄치 않습니다. 뭘 먹을까? 고심 끝에 결정한 건 죽순 삼합. 죽순, 삼겹살, 양파의 조합. 죽순, 먹고 싶은 모양과 크기대로 마음껏 자릅니다.

요리. 그냥 해 보는 거지, 막무가내로 달려듭니다. 요리가 무서우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고추장 양념장을 만듭니다. 어깨너머로 봤던 아내 표 양념장 맛을 떠올리며 따라해 봅니다. 해 보긴 하는데, 엄청 어설픕니다.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니, 그 맛이 아닙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햇양파를 깝니다.

"고추장 양념장 맛이 참 재밌네. 어디서 배웠대?"

죽순 삼합 완성입니다. 이걸 해내다니 저도 미쳤나 봅니다. 근데, 요리 별 거 아니라는...
 죽순 삼합 완성입니다. 이걸 해내다니 저도 미쳤나 봅니다. 근데, 요리 별 거 아니라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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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 삼합. 쌈을 싸 한 입에 쏘옥...
 죽순 삼합. 쌈을 싸 한 입에 쏘옥...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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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에 올리브기름을 붓고 달굽니다. 고기 먹지 않는 아내를 위해 죽순부터 굽습니다. 먹기 좋게 가위로 한 번 더 자릅니다. 달달 구워 낸 죽순 맛을 봅니다. 씹히는 식감이 살아 있습니다. 이어 삼겹살과 양파를 함께 요리합니다. 지글지글, 자글자글. 달달한 냄새가 집안 가득합니다.

죽순 위에 양념장을 끼얹었습니다. 맛을 봅니다. 먹을 만합니다. 구은 삼겹살과 양파도 맛봅니다. 맛납니다. 이렇게 죽순 삼합이 한순간 완성되었습니다. 모양이 제법 납니다. 마늘쫑과 상추 등을 꺼내 구색을 맞춥니다. 죽순삼합 폭풍 흡입 준비를 마쳤습니다. 가족을 불렀습니다. 아내는 벌떡. 중간고사 치른 아이들은 여전히 꿈나라.

"고추장 양념장 맛이 참 재밌네. 어디서 배웠대?"

아내, 양념장 맛이 '듣보잡'이랍니다. 듣도 보도 못한 잡동사니 맛이란 거죠. "죽순 맛있어?" 물었더니, "양념장 맛은 별론데, 맛있는 죽순 맛으로 먹는다!"면서도 폭풍 흡입 중입니다. 아이들 용으로 마련한 죽순 삼합을 덜어 따로 보관합니다. 맛을 봅니다. 갑자기 솟는 요리에 대한, 이 자신감은 뭘까!

아내, 갑자기 "죽순 부추전을 만들겠다"며 호들갑입니다. 때 아닌 요리경진대회가 열린 것 같습니다. 죽순, 부추, 오징어, 양파 등 총출동입니다. 뚝딱뚝딱, 아내 손은 요술방망이입니다. 이제 막 밥을 먹었는데도 또 들어갑니다. 뒤늦게 일어난 아이들, 죽순 부추전 후다닥 해치웁니다. 비 오는 날의 즐거움이지요!

아내표 죽순 부추전입니다. 비오는 날의 묘미는 여기에 막걸리 한 잔 쭈욱...
 아내표 죽순 부추전입니다. 비오는 날의 묘미는 여기에 막걸리 한 잔 쭈욱...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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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죽순삼합, #맹종죽순, #죽순 부추전, #막걸리, #비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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