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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기자말

지압을 하고 있는 중국 초등학생들.
 지압을 하고 있는 중국 초등학생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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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니 두렵고 막막했던 교생 실습도 이젠 나의 일부분인 듯 익숙해졌다(관련기사: 끊임없는 사인 요청, 연예인의 고충이 이럴까). 날씨가 어느새 쌀쌀해지자 실습도 긴장감이 사라져 평범한 일상으로 다가온다. 그즈음 나와 같이 입학한 한국 여대생이 이 곳으로 실습하러 왔다. 혼자 있다는 부담감이 덜어져서일까. 약간은 해이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처음의 신비함이 사라지고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니 다소 지루해진다.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 맞나 보다. 자극이 반복되다 보니 신선함과 흥미가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중국에 와서 더 심해진 증상 같기도 하다. 쉽게 질리고 항상 새로운 것을 기대한다. 뒤늦게 선택한 새 길에 대한 보상심리일지도 모른다.

한국학교와 다른 듯 비슷한 중국학교

어딘지 부실해 보였던 학교 도서관.
 어딘지 부실해 보였던 학교 도서관.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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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덟시까지 출근을 한다. 사무실에 들어가 청소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바닥도 닦고 물을 끓여 차를 우려낸다. 그리고 수업 참관을 한다. 국어, 수학, 음악, 서예, 과학 등등. 수업이 끝나면 막간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간단한 한국말을 가르친다. 한국어를 신기해 하며 활짝 웃는 아이들의 표정은 늘 새롭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고맙다는 생각까지 든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침에 운동장에서 국기를 올리며 경례를 한다. 우리나라의 '국가에 대한 경례'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날, 유난히 아이들이 근엄하게 음악에 맞춰 행진하는 날이 있었다. 알고 보니 만주사변(일본의 만주침략전쟁) 83주년 추모행사였다. 중국인들은 결코 지난 과거를 잊지 않는다. 대륙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애국심과 자부심의 발원이기도 하다. 왠지 숙연해지는 하루였다.

만주사변 83주년을 추모하며 국기를 올리는 행사를 하고 있다.
 만주사변 83주년을 추모하며 국기를 올리는 행사를 하고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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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시작하고 2교시가 끝나면 스피커에서 음악에 맞춰 구호가 흘러나온다. 학생들은 그 음악에 맞춰 눈 주위나 광대, 귀 부위를 지압한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건강 프로그램인 듯했다. 귀찮은 듯이 대충하는 아이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은 고사리 손으로 열심히 꾹꾹 얼굴을 누른다. 나도 아이들을 따라하니 시원해지고 눈이 맑아졌다. 똑같은 행동을 하다 보면 내가 이 곳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곳의 특이했던 점은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을 강제로 운동장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집단과 전체를 중시하는 중국이기에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억지로 아이들을 몰아내면 자율권 침해라고 하지 않을까. 그래서 쉬는 시간이면 밖은 학생들로 빼곡하다. 각자 제기를 차거나 돌아다니며 잡담도 나눈다. 스마트폰에 열중해 고개를 푹 숙인 한국의 아이들보단 맑은 공기 속에 웃음을 나누는 중국 어린이들 표정이 밝아 보인다.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받아 같이 실습하는 친구들과 밥을 먹는다. 식사 후 잡담을 하고 놀다가 오후수업이 끝나면 퇴근한다. 가끔 친구들과 밥을 먹거나 시장을 둘러보고 기숙사로 돌아간다. 매일 같은 일상이다. 평화롭지만, 뭔가 새로운 일이 안 생기나 좀이 쑤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생애 첫 언론 인터뷰, 중국에서 하다

그림에 색을 칠하고 있는 중국 아이들
 그림에 색을 칠하고 있는 중국 아이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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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상태가 엉망이었다. 출근시간이 조금 늦어져 서둘러 학교로 들어서는데 교장실 창문에서 누가 우리를 향해 손을 크게 휘저었다. 아뿔싸, 교장 선생님이다. 지각 현장을 포착 당한 현행범이 된 것이다. 뜨끔한 마음에 괜히 오버하며 인사를 했다.

"하하하! 안녕하세요. 선생님!"
"응! 어서 빨리 올라와! 손님이 와 계셔!"
"네?"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해하며 교장실로 향했다. 노크를 하니 크게 환영해 주시며 문을 활짝 연다. 지각을 했는데도 격하게 반겨주니 뭔가 이상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유가 있었다. 진저우 신문 기자가 중국초등학교에서 실습하는 외국인을 취재하고 싶어 방문한 것이었다.

재수도 없지. 제대로 꾸미지도 않았는데, 하필 이런 날 인터뷰라니. 미리 언질을 하지 않은 교장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눴다. 자칫 깐깐해 보일 정도로 깔끔한 인상의 여기자였다. 명쾌한 어투로 자기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저우 지역신문 기자입니다. 한국인이 왔다고 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어 찾아왔어요."

세상에, 나를 인터뷰하겠다고 신문사에서 찾아오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도 가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후줄근한 후드티를 걸친 게 부끄러워 몸을 배배꼬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기자는 여기까지 오게 된 계기 및 경위,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중국 교생 실습 생활은 어떤지, 중국학교는 한국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차분히 물었다. 다행히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유도해줘 인터뷰는 무사히 마쳤다. 자연스럽게 유도해주는 느낌이 역시 기자는 다르다 싶었다.

기사에 쓰일 사진을 찍기 위해 교실로 이동했다. 곁에 있던 선생님이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앞장을 선다. 쑥스러웠다. 어색한 콘셉트 사진이라니... 썩 내키진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찍어야지.

"여오메이요끈한궈라우싀이치파이쟈오더런?(한국 선생님과 같이 사진 찍고 싶은 사람?)"
"라우싀, 워바! 워!(선생님, 저요! 저요!)"

늘 그렇듯 귀요미들은 열성적으로 손을 흔든다. 그 중 간택(?)된 몇몇 아이들과 교과서를 펴놓고 같이 공부하는 모습, 함께 웃고 떠드는 장면 등을 연출했다. 어색하게 책을 읽고, 부끄럽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야속한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진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사이 촬영은 끝이 났다.

나에게 한국인으로서의 경각심을 일깨워준 인터뷰

받았던 신문을 직접 찍었다. 사진보다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받았던 신문을 직접 찍었다. 사진보다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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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출근을 하니 선생님 한 분이 신문을 건넸다. 드디어 나왔구나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펼쳐봤는데, 한숨과 경악이 교차한다. 사진이 부자연스럽다. 수십 장의 콘셉트 사진 중 하필 이걸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나마 '브이'하는 표정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사진 속 퀭한 얼굴과 후줄근한 옷차림은 잔상이 되어 따라 다닌다.

내용은 취재한 그대로였다. 또 다른 한국인 친구도 함께 인터뷰를 했지만 미안하게도 신문내용은 나를 위주로 서술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나이나 경력 따위가 조금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뒤늦게 신문을 본 친구도 펄쩍 뛰며 질색을 한다. 사진이 유난히 퍼져 보이게 나왔기 때문이다. 내용은 뒷전, 사진에 실망한 눈치였다. 젊은 여성들이기에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내용만은 충실히 전달하고 있었다. 비록 지역신문이지만 외국 신문에서 한국인인 나를 소개하다니. 게다가 진저우는 인구 320만, 우리나라로 치면 인천광역시 이상의 인구를 가진 도시다. 이런 서프라이즈한 일이 중국에서 일어날 줄이야.

이번 인터뷰를 통해 외국인들에게 나는 '한국인'으로 비춰진다는 걸 깨달았다. 대단한 애국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모국을 욕 먹이는 짓을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언론 인터뷰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깨달았나 보다. 이 역시 외국에 나와 생활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다. 대륙 중국에선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여러 일들이 생긴다. 이번 인터뷰 역시 내 인생에 꼽을 만한 추억거리다. 돌이켜보니 일상에 충실했기에 찾아온 특별한 경험 같다. 문득 새로움을 원한다면 평소 게을러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태그:#중국, #중국유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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