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Alice 영화 포스터

▲ Still Alice 영화 포스터 ⓒ 구글 이미지


콜럼비아 대학 언어학 교수. 세 아이의 엄마. 남편은 의과대학 교수, 법대를 다니는 큰 딸과 의대를 다니는 큰 아들, 비록 막내딸 하나가 연극을 한답시고 대학 갈 생각은 안 하지만, 쉰 살을 맞는 앨리스에겐 이루어놓은 것이 많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언어학자인 그녀는 일도 연구도 왕성하게 하고 아이들도 잘 키웠고 남편은 더없이 자상하다. 조깅으로 다진 건강한 몸매와 미모. 쉰 살의 생일을 맞는 그녀에게 딸이 축하하며 말한다. "엄마는 여전히 마흔 살쯤으로 보여요!"

앨리스는 어느 날 출장 강연을 갔다가 순간, 어떤 특정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당황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조깅을 하다가 세상이 온통 하얗게 되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뭔가 하나씩 머리에서 지워지는 경험, 자신의 일부를 조금씩 상실해나가는 경험. 그녀는 신경외과를 찾아가서 '조발성 알츠하이머'란 진단을 받는다. 그녀처럼 젊은 나이엔 몹시 드문 병이고 아이들에게도 유전이 될 수도 있는 병이라고 듣는다.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그녀는 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하고, 유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며 자녀들에게 "미안해"를 반복한다. 엄마의 마음이 그런 것이리라. 본인의 고통은 차치하고 자식에게 병을 물려주게 되면 한없이 미안해지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기억과 추억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지나간 시간들은 추억으로만 쌓이지 남는 것은 없지 않은가. 우리가 죽는 순간에 마지막에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살아온 기억이리라. 그런데 지금 여전히 나는 살아있는데 기억이 서서히, 혹은 뭉텅 뭉텅 지워진다면? 내가 과연 나인지 알 수 없다면? 앨리스는 차라리 자신이 암이면 좋겠다고 한다. 서서히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도 어렵다. 그 두려움은 또 얼마나 클까.

"저는 고통받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싸우고 있어요(I am not suffering. I am struggling)."

앨리스는 그녀의 병과 담담히 싸우기 시작한다. 단어를 메모하고, 기억을 완전히 상실할 경우를 대비해서 자신에게 보내는 영상을 만들어두고,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둔다. 자꾸 실수를 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약속도 잊어 버리는 부끄러움과 싸우고, 잃어 버리는 것들 을 놓치지 않으려 싸우고,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자신의 삶에서 부여받은 의무들을 끝까지 해내려고 싸운다.

처음 병을 진단받았을 때, 언제나 자신은 함께 있을 거라는 것만 잊지 말라던 남편도 서서히 지치고, 똑똑한 자녀들도 엄마에게 지치고 부담스러워 한다. 결국 그녀의 곁에 남은 것은 대학도 안 가고 연극에 빠져 엄마를 걱정시키던 막내딸 하나뿐이다(자녀를 똑똑하게 키우려고 하고 좋은 대학 보내려고 애쓰는 것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역시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 거야."

남편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앨리스의 마음은 어떨까.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녀는 살아있는 시간 동안, 끝없이 기록하고 메모하고 반복해서 떠올리려 애쓴다. 막내딸이 글을 읽어주며 엄마에게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엄마는 몹시 어눌한 말투로 한참 생각하다가 겨우 한 마디 꺼낸다. "그건… 사랑이야."

앨리스 분을 연기한 줄리안 무어는 혀를 내두를 만큼 뛰어나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 리처드 글랫저는 루게릭 병으로 사투를 벌이면서 이 영화를 찍었고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감독이 유작이 된 이 영화에서 그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살아간다는 것이 여전히 숭고하다는 것이 아닐까.

가정의 달 5월이 시작되었다.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 더 건네는 것은 어떨까. 내가 나일 수 있고, 내가 나로서 추억을 쌓아가며 살아가는 것은 결국 가족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이번 연휴에는 가족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는 것을 권한다.

스틸 앨리스 줄리안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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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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