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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강화군을' 선거구를 제외하면, 애초 통합진보당이 일군 텃밭이었다. 선거구가 농토가 아닌 다음에야 텃밭이 어디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정당해산 결정 과정에서 나온 논란과 흠결을 생각한다면 4.29 재보선 자체를 어이없어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정당 해산을 되돌려 놓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왕 치러야할 재보선이라면 야당 통합의 디딤돌이 되고 해산된 정당의 명예회복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또 차떼기 사건에 버금가는 성완종 사태와 일년이 넘도록 유가족을 찬 바닥으로 내몰고 있는 박근혜식 세월호 처방에 단죄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비등했다. 여기에 갈수록 심해지는 서민들의 생활고와 고착화된 저임금 구조,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무상급식 등 국정철학을 되돌릴 수 있는 따끔한 회초리도 필요했다.

이처럼 4.29 재보선은 임기 1년 남짓 4명의 국회의원을 다시 뽑는 작은 선거였지만 명분이나 실리 어느 측면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선거였다.

야권 분열과 민생 외면 때문에 선거에 졌다고? 

전국 4곳에서 치러진 4.29재보선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참패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힌 뒤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 재보선 참배 굳은 표정의 문재인 전국 4곳에서 치러진 4.29재보선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참패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힌 뒤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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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과는 야당인 새정치연합의 참패였다. 27년 동안 한번도 보수정당 후보를 당선시킨 적이 없는 서울관악구을에서 군소야당과 전직 의원의 중도사퇴와 양보를 받고도 새정치연합은 낙선했다.

비록 보수 후보에게 유리한 지역이라고는 하나 인천서구강화군을에서는 인천시에 수천 억원의 빚을 안긴 전직 시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했다. 경기 성남시 중원구도 야당의 강세지역임을 감안하면 새정치연합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광주서구을에서 무소속 천정배 후보의 당선은 분열의 불씨만 키운 셈이 되었다.

선거가 끝나자 새정치연합의 완패에 대한 진단이 당 안팎, 언론 등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 야권분열과 민생외면이 패배의 요인이라는 것이다.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현상만 볼 때 광주 서구을이나 서울관악구을은 무소속 천정배, 정동영 후보의 출마가 없었다면 새정치연합 후보의 당선이 무난한 곳이었다.

그러나 야권분열을 불러온 건 새정치연합의 무능과 계파 우선주의였다. 이는 천정배, 정동영 후보의 새정치연합 탈당 이유이기도 하다. 관악의 경우, '어부지리로 새누리 후보가 당선되었다'며 정동영 후보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없다. 여당의 어부지리 당선이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정동영 후보와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 내지 못한 이유 또한 새정치연합의 무능과 아집 탓이기 때문이다.      

보수지나 종편에서 진단하는 '민생외면이 패인'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가 서민경제는 내팽개친 채 친재벌주의 경제정책을 펴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때로는 잘못된 경제정책에 부화뇌동하여 거수기 역할을 해온 것이 새정치연합의 행보였다. 담뱃값 인상안, 부동산 3법의 국회 통과가 대표적인 예다. 국민이 새정치연합에 실망한 건 민생을 외면했기 때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바로잡을 대안과 힘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대통령 팔아 호가호위하는 계파 정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권노갑 고문이 4월 10일 오후 4.29 재보궐 선거 관악을에 출마한 정태호 후보 선거 사무소에서 열린 선거대책위 출범식에 나란히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권노갑 고문이 4월 10일 오후 4.29 재보궐 선거 관악을에 출마한 정태호 후보 선거 사무소에서 열린 선거대책위 출범식에 나란히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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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에 관심 없어요. (야당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자신이) 국회의원 떨어지면 그만이잖아요. 선거보다 지역구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지난 대선 직후 야당 선거 진영에 있던 지인이 한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당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은 대선보다는 지역구 관리가 우선이었다는 이야기다.

설마라는 의문으로 선거에 관계한 몇 사람에게 물어봐도 별반 다르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대선에서 이겨 여당이 되는 것보다 본인의 국회의원 자리가 더 중요하다는 이기주의. 이번 재보선에서도 야당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 권노갑 상임고문의 회동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선거 때가 되면 당대표와 계파 수장들의 불협화음이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린다. 동교동계 6:4 지분설, 선거 운동에 대한 당 중진들의 미온적인 태도... 국민들의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 선거 결과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새정치연합. 그러나 통합의 정신보다는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팔아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 분당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반복되고 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 지리멸렬한 야당을 이겼네.'

재보선 결과를 보고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가 트워터에 남긴 글이다. 핵심을 찌르는 분석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 정권보다 더 무능한, 국민보다는 당, 당보다는 계파의 이익 챙기기에 눈이 먼 야당을 이겼다는 지적이다.

보수 세력은 오랫동안 정권을 잡고 장기 독재의 길을 걸어왔다. 그 반대에서는 진보라고 자처하는 세력들이 그 세월만큼 야당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보수 세력들은 살아 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모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영입해 왔다. 반면 야당은 구태의연하게 소위 가신들, 중진들이 계파의 수장으로 남아 선거 때면 '파워 게임'을 한다. '야당의 장기집권', '야당의 독재'가 더 강고하고 길다는 우스갯소리. 새정치연합이 새겨야 할 지적이다.

부패한 정권보다 무능한 야당이 먼저 망한다

전국 4곳에서 실시된 4.29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3명을 당선시킨 가운데, 4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김무성 대표를 업어주고 있다.
▲ 재보선 승리 축하 '어부바' 전국 4곳에서 실시된 4.29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3명을 당선시킨 가운데, 4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김무성 대표를 업어주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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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제1야당이었던 신한민주당(신민당)은 당총재였던 이민우씨가 전두환 정권의 내각제에 합의할 수 있다는 '이민우 구상'을 발표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군부독재와 대척점에 서기보다는 야합으로 정치적 생명과 야당의 안녕을 확약받고자 했던 신한민주당. 독재 정권에 맞서지 못하는 야당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새정치연합은 야당 노릇을 못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과 어깨를 걸지도 않았고(비록 몇몇 의원들이 나섰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성완종 사태 등 국가 정체성을 뒤흔드는 사건에서도 정권과 대척점에 서지 못했다.

복지가 축소되고 서민들의 생활이 연일 나락으로 떨어져도 박근혜 정권의 폭주기관차 같은 경제정책에 야당은 구경꾼이거나 동조자였을 뿐이다. 박근혜 정권 내내 새정치연합은 무력했고 무능했다. 선거 때가 되면 지분 나누기 탐욕마저 내보였다.

문재인 대표는 4월 30일 재보선 전패와 관련해 고개를 숙였다. 박근혜 정권의 경제실패와 인사실패,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분노하는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이런 반성이 얼마나 현실 정치에서 각골쇄신의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부패한 정권의 대척점에 서지 못하는 무능한 야당은 국민들에게 먼저 버림받는다는 것, 1986년 신민당 몰락에서 배우길 바란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4.29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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