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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개봉을 앞둔 <잡식가족의 딜레마>포스터, 이 영화는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공식초청작이기도 하다.
 5월 7일 개봉을 앞둔 <잡식가족의 딜레마>포스터, 이 영화는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공식초청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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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인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지난 3월 29일, 소셜펀딩 21 개봉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후원금 3천만 원을 달성했다. 개봉지원 프로젝트의 후원으로 5월 7일 개봉을 앞두고 4월 30일 압구정 CGV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잡식가족의 딜레마>(아래 <잡식가족>)는 구제역으로 무려 350만 마리의 소, 돼지가 생매장되는 비극적인 장면을 목격한 후, 황윤 감독과 아들이 '진짜 돼지'를 만나면서 겪는 딜레마를 담은 작품이다. 족발, 삼겹살, 돈가스 마니아였던 <잡식가족>의 황윤 감독은 구제역으로 돼지들이 집단 매립되는 뉴스를 본 후 '살아있는 돼지'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돼지는 쉽게 만날 수 없다.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소규모 생태적인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농장주 원중연을 만나면서 돼지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뀐다. 단지 음식으로만 대하던 돼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잡식가족'은 돼지와 사랑에 빠지면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딜레마에 빠진 윤, 야생동물 수의사로 돼지나 닭 등 인간에 의해 사육되는 동물들의 복지보다는 멸종위기에 빠진 야생동물을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육식파 남편 영준, 그리고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들 도영이가 있다.

그러나 <잡식가족>은 채식을 권하는 영화가 아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먹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단순히 채식이 육식에 비해 더 품위 있거나 생명윤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도 없다.

육식이냐, 채식이냐를 묻지 않는 <잡식가족의 딜레마>

넓은 의미에서 보면 육식이든 채식이든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으며, 단지 동물인 인간에게는 동물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더 잔인해 보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잡식가족>은 '채식을 합시다'라는 계몽성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공장식 축산과 그런 방식을 통해서 식탁에 올라오는 '육'에 대해서는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문화인류학자 마빈 헤리스(Marvin Harris)는 <음식문화의 수수께기>라는 책에서는 각 지역의 음식문화에 대해 논하면서, 그런 음식문화가 생기게 된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혐오스러운 음식이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혐오스럽지 않으며, 그런 음식문화를 통해서 그 사회가 유지되어가는 기초가 되기에 각각의 음식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이 혐오스러운 음식으로 낙인이 된 이유는, 제국주의 열강의 입장에서 소수민족이나 약소민족의 음식문화를 미개한 것처럼 여기고 자신들의 음식문화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조목조목, 소위 음식문화의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의 음식문화가 그들이 혐오하는 음식보다 얼마나 혐오스러운 방법으로 식탁에 오르는지도 밝힌다.

"엄마, 돈가쓰 말고 돼지가 좋아졌어요." "돼지가 나를 사랑한데요."
▲ 잡식가족의 딜레마 "엄마, 돈가쓰 말고 돼지가 좋아졌어요." "돼지가 나를 사랑한데요."
ⓒ 스튜디오 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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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가족>은 단지 "육식이냐, 채식이냐?"를 주장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 인간을 위한 음식은 최소한 어떠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단지 돼지의 복지에 관한 영화나 채식주의를 옹호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라 것이다.

삼시세끼, 우리의 식탁에 올라와 우리의 몸속에 모셔지는 이른바 '음식'이 어떤 생산과정이나 유통과정을 거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우리 중 돈가스나 삼겹살 마니아면서도 살아 있는 돼지를 본 적이 없는, 황윤 감독 같은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먹을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위한 생필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소비되는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자.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공장식 축산이 가진 잔혹성은 단지 그곳에서 자라는 동물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는 최종 결과물만 돈으로 사는 삶에 익숙해 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과연 먹을 만한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단, 어떤 메이커이며 얼마인지에 더 관심을 갖는다.

공장식 축산의 비윤리성 그리고 사회 시스템

공장식 축산의 비윤리성에 대한 보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로인해 생기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그런 체제를 만든 사회 시스템이다. 우리는 과연, 그런 시스템을 부정할 수 있는가? 그런 시스템 없이도 인간이라는 종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딜레마'는 시작되는 것이다. 친환경유기농 농산물이 좋은 것을 몰라서 안 먹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채식에 대한 경험을 나눈다. 봄이면 봄나물이 지천으로 올라온다. 우리는 오일장이나 노점에서 할머니들이 뜯어온 봄나물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겉모양만 봐서는 그 나물이 그 나물이다. 그러나 봄나물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캐온 것인가?' 이것이 중요하다. 같은 돌미나리라도 오염된 하천에서 뜯어온 것은 향이 아무리 좋아도 몸에 독이 된다. 다른 봄나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봄나물이 먹고 싶을 때 직접 들로 산으로 나가 깨끗한 곳에서 뜯어 먹는다. 그런데, 그곳이 깨끗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래도 '사 먹기보다는 뜯어 먹는' 것을 선택한다. 물론 오일장이나 노점 할머니들에게서 산 것이 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직접 뜯은 봄나물을 고집한다. 이것이 딜레마다.

결국,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인간의 먹을거리 전반에 대한 이야기다. 알아도 몰라도 우리는 다른 생명을 담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다. 결국,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일까의 문제는 동시에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와도 연결이 된다. 딜레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잡식가족이 딜레마, #황윤, #공장식축산, #구제역, #베를린영화제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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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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