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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나온 이준석 선장의 모습. 이날 광주고등법원 형사5부는 그의 승객살인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또 이 선장의 형량을 징역 36년에서 무기징역으로 높였다.
 4월 28일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나온 이준석 선장의 모습. 이날 광주고등법원 형사5부는 그의 승객살인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또 이 선장의 형량을 징역 36년에서 무기징역으로 높였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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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이준석은, 자신의 선내 대기명령 및 안내방송에 따라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질서정연하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단원고 어린 학생 등을 포함한 304명에 이르는 승객들을 방치했고, 이른바 '골든타임(구조에 결정적인 시각)' 때 선장으로서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않아 이들을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심지어 이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선원들만 데리고 먼저 탈출했다…."

28일 오전 10시 30분경 광주고등법원 201호 법정,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항소심 양형 사유를 차분히 설명하던 서경환 부장판사(광주고법 형사5부)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심호흡을 한 뒤, 그는 이 선장에게 1심(광주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임정엽)보다 무거운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법원이 '퇴선명령' 주장을 믿지 않은 이유

이날 재판부는 이 선장의 승객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은 1심 판단도 뒤집었다(관련 기사 : 세월호 선장, 항소심서 '승객살인죄' 인정). 두 재판부의 결정적 차이는 '퇴선명령'의 존재여부 판단에서 나왔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26분경 사무부원 강혜성씨가 "해경 구조정이 앞으로 10분 뒤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안내방송한 내용은 조타실 무전 연락 덕분이라고 봤다. 또 선원들이 계속 진도VTS와 교신하는 등 나름의 조치를 했고, 해경의 구조활동을 확인한 상황에서 배에 나왔던 만큼 이들이 '승객들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판단했다(관련 기사 : 법원은 왜 세월호 선원들의 '살인죄'를 인정 안 했나).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퇴선명령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10분 후 해경 도착' 방송이 이뤄진 점을 볼 때 "사무부에 무전으로 퇴선 방송 지시를 전달했다"는 김영호 항해사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들이 세월호를 퇴선할 무렵에도 여전히 선내 대기방송은 계속되고 있었던 데다 승객 탈출 유도 상황 확인 등 후속조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관련 기사 : 선원 탈출할 때도... 세월호 갑판에선 "기다려라").

또 다른 이유는 '퇴선명령을 주장한 선원들의 말을 믿기 어렵다'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조타실에 계속 있다가 빠져나온 선원들은 모두 8명이다. 이 가운데 이준석 선장과 강원식·신정훈 1등 항해사, 김영호 2등 항해사, 조준기 조타수는 퇴선명령이 있었다고, 박한결 3등 항해사와 박경남 조타수는 없었다고 진술해왔다(관련 기사 : 엇갈리는 선원들의 진술... 누구를 믿어야 하나).

재판부는 "이준석 등 퇴선방송 지시가 있었다는 피고인들은 퇴선방송 지시가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극심한 비난에 노출되므로 이 사실을 은폐하려는 동기가 강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박한결 항해사와 박경남 조타수는 비난을 감수한 채 진실을 털어놨다며 그들의 진술이 더 신빙성 있다고 설명했다. 조타실 생존자 가운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지위였던 필리핀인 가수 알렉스의 같은 진술도 중요한 이유였다(☞ 1심 법정 증언 바로가기).

마지막 근거는 참사 당일 9시 37분경 무전 교신 내용이었다. 이때 김영호 항해사는 '지금 침수 상태가 어떻습니까?'란 진도VTS의 물음에 "침수상태 확인 불가하고, 지금 탈출할 수 있는 사람들만 탈출 시도하라고 방송했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이와 달리 퇴선방송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 내용은 승객 전부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탈출할 수 있는 사람들만 탈출 시도하라'는 표현은 이상하다고 봤다.

세월호 승무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28일 오전 광주고등법원 201호 법정에서 이준석 선장이 선고가 내려지길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승무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28일 오전 광주고등법원 201호 법정에서 이준석 선장이 선고가 내려지길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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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재판부는 진도VTS가 세월호에 "선장님께서 최종 판단을 해서 승객을 탈출시킬지 지금 빨리 결정해달라"고 말한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25분경을 '골든타임'으로 봤다.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세월호의 경사도를 분석한 최초 시각, 9시 34분 3초에 배의 기울기는 아직 52.2도였다. 재판부가 말한 골든타임 때는 더 기울기가 완만했던 만큼 승객들을 갑판 등 탈출이 쉬운 장소로 유도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했다(☞ 세월호 '각도의 재구성' 바로가기).

그러나 이준석 선장은 이때부터 자신이 배에서 탈출하는 순간까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퇴선한 뒤에도 승객들 구조상황을 신경 쓰지 않았고, 신분이 드러날 때까지 선장임을 밝히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그가 '승객들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먼저 빠져나왔다고 판단했다. 또 이 선장의 행동은 "고층빌딩 화재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장이 갇혀 있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먼저 빠져나온 일로, 살인행위와 동일하다"고 평가했다.

울먹인 재판장 "크나큰 비극 초래... 용서받기 어렵다"

이어 "피고인의 무책임한 행위로 꽃다운 나이에 꿈도 펼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수많은 학생들"이란 말을 꺼낸 서 부장판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 생때같은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내고 아직도 자식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 분노와 좌절 속에 신음하는 부모들, 1년이 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팽목항을 맴돌면서 방황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으면서도 죄의식과 우울증 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생존자들에게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겨줬다.

나아가 세월호가 어린 학생들과 함께 침몰하는 과정을 언론을 통해 지켜보던 많은 국민들에게 크나큰 공포와 슬픔을 안겨줬다. 국민 전체가 집단적인 우울증을 겪게 됐고, 국가기관과 사회 질서에 대한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공동체가 극심한 분열과 혼란에 빠졌다. 또 외신으로 전 세계에 세월호의 사고 모습과 선장의 무책임한 탈출 장면이 보도되는 등 대한민국의 국격은 곤두박질쳤다. 이 같은 크나큰 비극을 초래한 피고인의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서받기 어렵다."

서 부장판사는 끝내 울먹였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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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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