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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광고에 나온 아이유
 소주 광고에 나온 아이유
ⓒ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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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은 이상하리만큼 술을 많이 마셨다. 주종(酒種)은 물론 '한국인의 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주다. 저렴한 값에 알딸딸하게 취할 만큼 마실 수 있어서다. 손에 쏙 들어오는 소주잔으로 단박에 한 모금을 들이킨 순간, 투명한 소주잔 바닥에 누군가의 형체가 보인다. 벌써 취했나? 아니면 맞은편에 앉은 친구인가? 아니다. 가만히 보니 긴 생머리에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는 가수 아이유였다. 나도 모르게 '헤헤'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앞으로는 소주잔 바닥은 물론 각종 주류광고에서 아이유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게 됐다.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때문이다.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방송과 신문, 인터넷 매체 등에서 24세 이하의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주류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애초에 법안은 '청소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 24세 이하의 사람'을 광고 출연 제한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청소년에게 중대한 영향'이라는 문구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이를 삭제하고, 나이를 주요한 기준으로 정하기로 했다. 이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만 24세 이하의 운동선수와 연예인 등은 모든 대중 매체의 주류 광고에 출연할 수 없다. 현재 주류 광고에서 눈에 띄게 활약하고 있는 1993년생 아이유도 마찬가지다.

주류 광고 모델 연령 제한과 청소년 음주율의 관계

그야말로 '기계적'이며, 더 나아가 '무책임한' 법안을 뚝딱 만들어 던져둔 것이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다. 음주가 가능한 연령과 주류 광고에 출연이 가능한 연령 간에 커다란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법안은 '9세 이상, 24세 이하'를 청소년으로 규정한 청소년 기본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우리나라 민법은 만 19세 이상을 음주가 가능한 성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음주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정작 주류 광고에는 출연할 수 없는 촌극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연령은 이미 만 24세를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아이유처럼 '동안'을 자랑함은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들은 어떨까? 예컨대 슈퍼주니어 등의 아이돌이 출연하는 주류 광고는 괜찮다는 것인가? 법안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주류 광고 모델의 연령을 제한하는 것이, 음주율 감소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존재한다(혹은 할 것이다)라는 자료라도 최소한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법안을 발의한 이에리사 의원은 그러지 못했다. 단지 청소년 음주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점만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에리사 의원의 법안에서는 청소년의 음주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조금의 실효성도 찾을 수 없다. 애꿎은 만 24세 이하의 운동선수와 연예인들의 선택만 제약해 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도리어 주류업계의 '영업의 자유'는 물론, 당사자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의 소지마저 있다. 당장 법안이 통과돼 아이유가 더 이상 주류 광고에 나서지 못한다면, 정부는 해당 광고 회사와 소속사를 상대로 치열한 법정 싸움부터 벌여야 할 것이다.

물론 오늘날 청소년 음주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고심 끝에 내놓은 해결책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정치는 그저 '선한 의도'에만 그쳐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근본적인 문제의 개선을 추구한다면, 보다 실질적인 정책의 변화가 우선이다.

급작스럽게 광고 출연 연령의 제한선만 올려버리고 말 것이 아니다. 차라리 현행 민법과 동떨어져 있는 청소년 기본법의 연령 규정을 낮추어 조정하거나, 청소년들이 지금처럼 손쉽게 주류에 손을 댈 수 없도록 관리 및 규제를 강화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주류 판매 연령을 광고 연령 규제에 맞추어 조정하는 등 최소한의 '현실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에리사 의원의 법안은 여전히 청소년을 불완전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이른바 '꼰대 정신'의 상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에는 무슨 핑계를 대려고 그러실까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는 주류 광고에 기용할 수 있는 모델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두고 있다. 가령 미국맥주협회에 따르면 광고에 나오는 모델은 '법적 구매 연령 이상이고, 최소한 25세 이상이어야 하며 합리적으로 25세 이상으로 보여야만' 한다. 영국 내 주류업체들이 모여 만든 포트만 그룹도 '음주를 하는 사람들이 25세 이하이거나 25세 이하로 보여서는 안 되고, 젊은 모델들이 광고에 나올 수는 있지만 명백히 음주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국내에서 논란이 된 이번 법안과 별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서로 간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미국과 영국의 연령 제한 규정은 국가에서 법으로 제한한 것이 아니라, 주류업계에서 자발적으로 마련한 사항이다. 물론 국내 기업의 부족한 '사회적 책임'을 지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마치 '법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것만 같은 국회의 발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은, 보호하고자 하는 이익이 법 이외의 다른 수단으로 불가능한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적용해야만 한다. '과잉금지의 원칙'이 이를 그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번 법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주류업계에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 및 관리하는 권고의 차원을 넘어, 문제가 있다면서 곧바로 법적 제재의 차원으로 들어가 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이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관문을 통과한 법안의 운명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에서 결정된다. 애초에 법적으로도, 또 일반적으로도 논리적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법안이다. 진작 폐기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혹여나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그리고 법안을 적용해 '만 24세 이하'가 주류 광고에서 전면 퇴출되고 나서도 만약 음주율이 감소하지 않는다면, 그 때는 과연 어떻게 해명할지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태그:#아이유, #술 광고, #국회,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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