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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그 해답이 궁금해서 이 책을 골랐다면 절반의 성공이다.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책의 주된 요지는 '선과 악'의 심리에 관한 이야기다. 책은 다양한 심리 실험을 소개하면서 '선과 악'을 '좋음과 나쁨'이라는 단순한 구도로만 접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도덕적 인간'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 구성원이지만 '나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책은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하기보다는 선악에 대한 표상과 연관된 우리의 판단이 행동방식에 미치는 사회심리적 영향을 분석하는 데 치중한다.

자신의 부도덕한 짓에 얼굴을 붉히는 것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간다면 결국은 자신의 도덕성에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성'이라는 두 얼굴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표지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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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도덕적 자질과 실제 행동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사실은 사회심리학 분야의 주된 연구 대상이었다.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관찰한 결과 도출해 낸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대표적이다. 한나 아렌트가 창안한 '악의 평범성'이란 행위가 아무리 흉측할지라도 그 행위 주체는 괴물 같지도 악마 같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이 현상은 사람들이 체제에 맹목적으로 순응한 나머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의식하지도 못한 채 악에 휘말리는 상황을 가리킨다.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도덕적으로 평범한 사람이 '악의 집행자'가 되어버리는 것은 단순히 특이한 역사적 사례가 아니다. 예일대의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심리 실험은 누구나 자신의 도덕성과 무관하게 악의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밀그램 교수의 심리 실험 요지는 이렇다.

20~50세 사이의 평범한 사람들을 교사와 학생으로 나누어 교사는 학생에게 한 쌍의 단어를 기억하게 하고 학생이 오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했다. 전기충격은 15볼트씩 단계적으로 높아져 최대 450볼트까지 이를 수 있었다. 교사 역을 맡은 참가자는 전기충격의 단계에 대한 설명을 미리 들었다. 가벼운 충격, 중간 단계의 충격, 강한 충격, 매우 강한 충격, 심한 충격, 극심한 충격, 위험, 심각한 위험, 그리고 맨 마지막 단계의 버튼은 'XXX'라고만 표시되어 있었다.

실험결과 참가자들은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평균 285볼트까지 전기충격을 가했으며 그 중 65%는 최대 강도에 해당하는 450볼트의 버튼을 눌렀다. 특히 참가자가 양심적일수록 피해자에게 가한 전기충격의 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었다. '밀그램의 실험'은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권위에 복종하기 쉽다는 믿기 힘든 결과를 보여준다. 소위 친절하고 사회에 나무랄 데 없이 편입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밀그램의 모형'과 가까운 상황에서 권위에 쉽게 굴복하는 성향을 보였다.

이 책의 저자인 프랑스 심리학자 로랑 베그는 "도덕성이 전혀 상반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즉 '선'과 '악'이 가끔은 관점의 차이에서 나온 부실한 근거의 '선포'에 지나지 않으며 이기적인 의도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우리의 도덕성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품기보다는 명철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그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도덕성은 더욱 완전해질 것"이라고(310쪽) 했다.

사실 우리가 근본적이라고 생각하는 '규범과 가치의 충돌'만큼 도덕의 문제를 직시하게 만드는 계기는 없다. 그러한 충돌을 계기로 우리는 사회적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복종을 불사하기도 한다. (11쪽)

저자가 보기에 도덕성은 모든 상황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그리고 그 상황을 사람이 어떻게 인지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발현될 수 있다.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뚜렷한 자기인식과 꼼꼼한 대처가 결심을 지키는 데 유용하다. 즉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고 이미 자세한 부분까지 예측해 두었다면 신념에 따라 행동할 확률이 높아진다는(244쪽) 것이다.

인간 도덕성의 근원은 무엇일까

우리는 선악 관념을 별로 믿지 않는데도 허구한날 타인들이 어떤 존재인가, 타인들이 어떤 해위를 하는가를 판단하는 데 골몰한다. 또 우리의 행동, 의견, 심지어 겉모습까지 매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 받는다. 그들이 그런 것들에 부여한 의미는 그들과 우리의 사회적 교류에 영향을 미치기 십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과 악이 마치 산소와 수소처럼 결합해 이루는 '좋은 생각'의 바다와 같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그 바다에 잠겨든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호모 모랄레스(homo moralis), 즉 '도덕적인 인간'이다. 내 아들은 분만실에서 태어난 지 고작 몇 시간 만에 행동거지가 바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기의 체온 등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한 간호사가 차트에 '순하게 행동함'이라는 코멘트를 달았던 것이다. (10쪽)

인간의 도덕적 열망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회에 잘 편입되고 싶은 바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저자는 "타자야 말로 인간 도덕성의 근원이자 목적"(310쪽)이라고 했다.

타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는 인간의 성향, 즉 사회성과 소속감은 여러 차원에서 이롭게 작용한다. 심지어 사회적 결속력은 면역력을 강화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며 수술 후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역학 연구에 따르면 흡연은 사망률을 1.6배 높이지만 사회적 고립은 사망률을 2배나 높인다. 외혈관계 질환자 665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혼자 사는 환자는 사회적 관계를 활발하게 유지하는 환자에 비해 5년 내 재발률이 2배나 높은 것(87쪽)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속감에 대한 욕구 때문에 종종 집단의 입장이 객관적으로 문제될 만한데도 따돌림을 피하기 위해 그 입장에 묻어가곤 한다.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의 실험에 따르면 착각할 여지가 없는 간단한 문제인데도 집단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지 않기 위해 오답을 택한 참가자의 비율이 무려 74%에 달했다. 틀린 줄 알면서도 왜 오답을 택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참가자들은 자신의 답이 집단의 답과 다른 것을 보고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대답했다.

저자는 "집단과의 동일시가 강력할수록 그 집단의 규범은 영향력이 있고 거기서 벗어나는 자들은 용서받기 어렵다"고(98쪽) 설명했다. 또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집단의 영향력을 덜 받는 한편, 권위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그 영향력에 더 많이 휘둘린다고 한다.

도덕성은 변한다. 도덕적 성향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고 사회적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사회적 대립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의 도덕성을 고양시키거나 변하게 하는 요인들을 구체적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가치와 행동사이의 충돌, 이 간격에 존재하는 사회적 컨텍스트를 통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로랑 베그 지음 / 부키 펴냄 / 2014.05 / 1만6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로랑 베그 지음, 이세진 옮김, 부키(2013)


태그:#도덕성, #심리학, #소속감,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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