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른쪽에 공사 중인 오래된 거대한 원통형 건물을 끼고 걷습니다. 건물 뒷부분인데도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고 싶습니다. 당신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정말 보고 싶은 장면은 아껴두고 싶어서 일부러 외면하는 마음. 길지 않은 거리를, 그 유혹을 힘들게 참으며 앞만 보고 걷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나타난 광장.

중앙 오벨리스크 분수 주변에는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모두 맞은편 거대한 건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전처럼 생긴 8개의 기둥과 삼각형의 박공(牔栱, tympanum). 그리고 그 너머 얼핏 보이는 둥근 지붕, 그렇습니다. '판테온(Pantheon)'입니다.

로마 '판테온'
▲ 판테온 로마 '판테온'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밖에서 바라본 '판테온'의 첫 느낌은 '거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말 단순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단순함'에는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오래 전, 해질 무렵 만났던 '종묘'에서의 느낌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분명 여행자들과 노점상들과 일상을 시작하는 로마인들이 각자의 언어로 판테온 광장을 채우고 있지만 그들의 소리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판테온'의 힘인가 봅니다.

로마, '판테온' 돔
▲ 판테온 내부 로마, '판테온' 돔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거대한 정문을 지나 천천히 '판테온'의 심장으로 들어갑니다. 다시 입이 떡 벌어집니다. 다큐멘터리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 수없이 많이 본, 그래서 너무나도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곳. 하지만 실제의 '판테온'은 그냥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었습니다.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온몸으로 느끼는 거대한 '공간(space, 혹은 우주)'이었습니다.

로마, '판테온' 내부 돔.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수많은 사각형의 우물 모양 '반자'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 판테온의 돔 로마, '판테온' 내부 돔.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수많은 사각형의 우물 모양 '반자'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수많은 사각형 무늬(돔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속이 빈 우물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로 이루어진 거대한 콘크리트 돔, 그 가운데 하늘을 향한 뚫린 유일한 창(오쿨루스, oculus)으로는 하늘의 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것은 분명 태양을 머금은 하늘의 빛입니다. 반대로 정문을 통해 들어온 로마의 공기는 완벽하게 둥근, 판테온 내부를 휘감고 돌아 그 안의 수많은 이들의 호흡과 기도와 명상과 감탄을 한꺼번에 저 거대한 하늘 창을 통해 온 우주로 보냅니다. 이름 그대로 우주의 '모든(pan) 신(theon)'의 집, '판테온' 그 자체입니다.

로마, '판테온' 내부에서 본 정문
▲ 판테온 내부 2 로마, '판테온' 내부에서 본 정문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판테온에 묻히길 간절히 바란 라파엘로, 이해가 간다

'판테온'의 정중앙에 서 봅니다. 2000년 전, 철골도 없이 콘크리트로 저 거대한 돔을 올렸다는 것도(판테온의 돔은 현재까지도 철골이 없는 세계 최대의 돔입니다), 그 건물이 이토록 온전하게 살아 있다는 것도, 그리고 완벽한 사각형과 완벽한 구를 한 공간에 배치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분명 눈앞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왜 서양 건축의 살아있는 원형인지 알 것 같습니다. 기베르티에게 패배한 브루넬레스키가 왜 '판테온'을 찾아왔는지도, 미켈란젤로가 왜 '천사의 디자인'이라고 했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라파엘로가 왜, '판테온'에 묻히길 간절히 원했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로마 '판테온'에 있는 라파엘로의 무덤
▲ 라파엘로의 무덤 로마 '판테온'에 있는 라파엘로의 무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로마, '판테온' 라파엘로의 무덤. 석관에 새겨진 라파엘로의 이름입니다.
▲ 라파엘로의 무덤 로마, '판테온' 라파엘로의 무덤. 석관에 새겨진 라파엘로의 이름입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이제 내 눈앞에 바로 그,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습니다. 마치 사춘기 시절의 소년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그 시절 내가 얼마나 라파엘로를 흠모했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와 달리 미청년의 이미지가 강했던 라파엘로. 그 시절, 나는 그의 '방울새의 성모'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은 작품 중 하나가 '방울새의 성모'일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내 눈앞에 누워 있습니다. 부모님의 무덤도, 연인의 무덤 앞도 아닌데 눈앞이 뿌옇게 흐려집니다. 한참 동안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라파엘로들을 하나씩 떠올려 봅니다. 행복한 슬픔입니다.

이탈리아 로마 '성 이그나치오 디 로욜라 성당' - 예수회의 설립자 로욜라를 기리기 위한 바로크 양식의 성당입니다.
▲ 성 이그나치오 디 로욜라 성당 이탈리아 로마 '성 이그나치오 디 로욜라 성당' - 예수회의 설립자 로욜라를 기리기 위한 바로크 양식의 성당입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라파엘로와 '판테온'을 뒤로 하고 계속 미루어 두었던 '성 이그나치오 디 로욜라 성당(Chiesa di Sant' Ignazio di Loyola)'으로 향합니다. 이제 막 문을 연 성당 안에는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로욜라. 학창 시절 배웠던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16세기 전 유럽을 휩쓸고 있던 종교개혁의 열풍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반종교개혁을 시도한 '예수회'의 창립자가 바로 로욜라입니다.

청빈과 정결, 절대적인 복종을 내세웠던 '예수회'는 선교(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에 등장하는 신부들이 예수회입니다)와 교육에 힘썼고 땅에 떨어진 교회의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의 입장에서 로욜라는 성인으로 추대됩니다. 그로 인하여 가톨릭이 쇄신하고 개혁하여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 그에게 바로크 양식의 이 성당, '성 이그나치오 디 로욜라 성당'이 바쳐진 것입니다.
사실 바로크 양식은 종교개혁의 열풍을 막아 보려는 가톨릭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엄격한 성경 해석으로 성상과 성화를 금지하고 심지어 성상 파괴 운동까지 일어났던 북유럽 프로테스탄트의 물결. 로마 가톨릭은 그에 대응해 18년간 이어진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가톨릭의 내부 개혁과 함께 신의 영광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을 천명하게 되는데 그 결과 나타난 양식이 '바로크'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아두기 위해 화려함으로 치장한 신의 영광. 바로크 양식의 그 화려함은 성당 내부의 장식과 그림으로 완성되는데 '성 이그나치오 디 로욜라 성당'에도 그런 작품이 있습니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고개를 들고 천장을 바라봅니다. 눈을 뗄 수 없이 화려한 천장화, 안드레아 포초가 그린 '성 이그나치오의 승리'입니다.

안드레아 포초 '성 이그나치오의 승리' 로마, 성 이그나치오 디 로욜라 성당. 입체적 느낌의 화려한 바로크 양식 천장화입니다.
▲ 성 이그나치오의 승리 안드레아 포초 '성 이그나치오의 승리' 로마, 성 이그나치오 디 로욜라 성당. 입체적 느낌의 화려한 바로크 양식 천장화입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고개를 한껏 젖히고 카메라의 줌을 있는 대로 당깁니다. 바로크 천장화 특유의 입체와 평면이 교차하는 환상적인 장면이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벽과 이어져 있는 그림은 실제 천장보다 3배 정도 더 높게 보이는 착시 효과로 보는 이의 시선을 끝없이 높은 천상으로 이끕니다. 말 그대로 '신의 영광'을 보는 듯합니다.

안드레아 포초 '성 이그나치오의 승리' 로마 성 이그나치오 디 로욜라 성당.
▲ 성 이그나치오의 승리 (부분) 안드레아 포초 '성 이그나치오의 승리' 로마 성 이그나치오 디 로욜라 성당.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을 찾은 단 하나의 이유

앞서 말했듯이 나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심지어 종교가 가진 일부 해악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교가 없었던 인간의 역사를 상상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인간의 역사에 종교가 없었다면 저처럼 아름다운 예술이 없었을 것이고 그만큼 인간의 역사는 삭막했을 테니 말입니다. 그냥 맨눈으로 그림을 봅니다. 다른 어떤 종교적, 역사적 평가도 필요 없이 그림 그 자체가 역사이고 인간의 문화유산입니다.

로욜라 성당을 나와 부지런히 발길을 옮깁니다. 다음 목적지는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Galleria Doria Pamphil)'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입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구글 맵에서 검색한 위치에는 작은 카페만 있습니다. 입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결국 카페로 들어가서 물어봅니다. 건물 반대편 큰길 쪽으로 가면 입구가 나온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건물 뒤쪽 광장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은, 디지털 기기보다 사람이 더 정확한가 봅니다.

입구에서 매표를 하고 또 사진 촬영이 가능한지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한 '포토 프리 카드'를 구입하라고 합니다. 조금 씁쓸한 기분이었지만 카드를 구입해 목에 걸고 입장합니다. 플래시를 터뜨리면 안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허가 여부와 상관없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 작품의 사진을 찍는 게 썩 올바른 행동이 아닌 건 사실입니다. 자칫 작품에 손상을 줄 수도 있고 타인의 감상에 방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진 촬영 때문에 자신도 제대로 된 작품 감상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집이나 미술책, 심지어 몇 번의 구글링을 통해 사진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촬영된 작품들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명작 앞에서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는 건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더구나 여기는 생전 처음 오게 된 이탈리아. 카메라에 손이 가는 건 나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관람객이 없는 때에 최대한 빨리 사진을 몇 컷 찍고, 그 다음에 감상에 집중하자는 원칙을 정했습니다.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궁전답게 실내가 정말 화려합니다.
▲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의 실내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궁전답게 실내가 정말 화려합니다.
ⓒ 박용은

관련사진보기


'도리아 팜필리 궁전'의 2층에 자리 잡은 미술관은 궁전이란 이름에 걸맞게 장식 하나하나부터 화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 미술관을 찾은 것은 그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한 작품,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센티우스10세의 초상' 때문이었습니다.

(* 2-3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이탈리아, #미술기행, #로마, #판테온, #성이그나치오디로욜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이동조사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