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의 추신수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가 지난 2014년 7월 2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MLB)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 1회에 공을 친 뒤 날아가는 공을 보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 ⓒ 연합뉴스


'추추트레인' 추신수(33, 텍사스 레인저스)의 계속된 부진이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추신수는 지난 26일(한국시간)까지 미국 텍사스에서 2014-2015시즌 1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104(48타수 5안타), 1홈런 5타점 11볼넷, 출루율 .271 장타율 .188에 그치며 극도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타율과 장타율은 100위권 밖으로 훌쩍 밀려나며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들 중에서도 최하위권에 가까운 수치다.

추신수가 2014시즌을 앞두고 텍사스가 7년 1억 3000만달러의 대박 계약을 체결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러한 시나리오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추신수는 신시내티 시절이던 2013년 타율 .285, 출루율 .423 21홈런 20도루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리드오프이자 출루 머신으로 군림했다.

잔부상 시달리는 추신수, '먹튀' 소리 들어도...

텍사스가 추신수에게 제시한 계약은 메이저리그 역대 FA 외야수를 통틀어서도 6위였고, 아시아 선수로서는 단연 1위에 올랐을 만큼 대형 계약이었다. 그만큼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텍사스가 추신수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제 겨우 2번째 시즌 초반을 맞이한 현재 추신수는 '먹튀'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먹고 튄다'는 의미의 먹튀는 흔히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몸값을 하지 못하고 부진할 때 쓰이는 용어다. 선수들에게는 가장 굴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추신수의 활약은 이런 평가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추신수는 텍사스 이적 첫해 타율 0.242, 출루율 0.340의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첫해는 왼쪽 팔꿈치와 발목 부상으로 고전했고 팀 사정상 완벽하지 못한 컨디션에도 출장을 강행해야 했다는 점에는 변명의 여지가 있었다.

당시 텍사스의 팀 상황 자체도 워낙 총체적 난국이었던 탓에 추신수의 부진만을 탓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구단도 추신수의 몸상태를 고려해 시즌 막판에는 전력에서 제외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추신수는 지난 비시즌 동안 귀국을 미루고 외부 활동까지 자제하면서 올 시즌 부활을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러나 정작 올해도 초반부터 부상 악령이 추신수의 발목을 잡는 듯한 모습이다. 추신수는 이미 3월 중순 왼쪽 팔 통증으로 잠시 훈련을 쉬기도 했고 시즌 개막 후에는 등에 통증을 호소하며 경기에 결장하는 등 잔부상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경기 출전이 어렵거나 오래 쉬어야 하는 정도의 부상은 아니지만, 한창 페이스를 끌어올려야 할 시즌 초반 타격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볍게 넘어갈 상황이 아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추신수가 텍사스와 FA 장기계약을 맺을 당시부터 가장 우려했던 시나리오다. 전문가들은 추신수가 텍사스에서도 꾸준히 3할 타율과 20-20을 기록할 수 있으리라고 전망했다. 다만 여기에는 '건강한 추신수라면...'이라는 전제가 따라붙었다. 추신수도 어느덧 30대를 향해가는 베테랑인 데다 과거에도 크고 작은 잔부상 경력이 많았다는 것을 염두에 둔 지적이었다.

계약 당시 미국 현지 언론에서는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야수와 거액의 장기계약은 위험하다'는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건강이 최대의 변수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틀리지 않은 셈이다.

추신수의 부진, 일시적이지 않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현재 추신수의 부진이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은 추신수의 기량이 전성기에서 사실상 내려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1982년생인 추신수는 만 32세, 우리 나이로는 34세로 운동 능력이 정점에서 서서히 내려올 시점이다. 여기에 부상 경력이 있는 선수라면 수술과 재활을 완벽하게 마쳤다고 해도 전성기 수준의 파워와 순발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파워 넘치는 강속구 투수와 거포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 몇 안 되는 동양인 타자로서 체감하는 신체능력의 저하는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여기에 계속된 부상으로 인한 타격 밸런스의 붕괴와 자신감의 하락은 선수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추신수의 기량 하락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패스트볼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패스트볼을 가장 잘 공략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난해를 기점으로 추신수는 더 이상 빠른 공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추신수가 올 시즌 때려낸 안타 중 패스트볼을 공략해 만들어낸 안타는 찾기 힘들다. 부상으로 인한 배트 스피드의 저하와 몸쪽 공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 장기였던 선구안마저 흔들리게 만들었다.

굳이 빠른 공만이 아니라도 타구가 배트 중심에 맞지 못하고 땅볼이 되는 비율이 높아졌다. 직선타로 뻗어나가는 타구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안타가 될 확률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나마 최근 경기에서 볼넷을 골라내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선구안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희망을 주지만 부족한 타율과 자신감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역시 방망이가 살아나야 한다.

추신수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안팎에서 비판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추신수가 텍사스로 이적할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비교가 바로 원조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의 데자뷔였다. 공교롭게도 박찬호 역시 2001년 FA 자격을 얻어 텍사스에 입단한 이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과 슬럼프에 허덕이며 하향세를 겪었다. 박찬호도 당시 성적 부진과 더불어 여론의 거센 비난에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겪은 바 있다.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13년이 흐른 지금 추신수가 처한 상황도 당시의 박찬호와 닮은 부분이 많다.

박찬호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추신수를 격려하는 글을 남겨 화제를 모았다. 박찬호는 "힘든 상황이라도 이 순간을 즐겨라"라고 조언하며 "지금의 시간이 힘들어도 이 순간이 오래 전 마이너리그 시절에는 끊임없이 간절히 꿈꾸었던 시간이었다는 걸 잊지 마라"고 격려했다. 박찬호의 말처럼 좋은 순간이 있으면 나쁜 순간도 야구 인생의 일부분이다. 추신수가 지금의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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