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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쿠데타'라는 말, 아마 독자들도 한두 번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치하는 우리나라에서, 그의 아버지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를 아직도 '쿠데타'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역사적으로 이미 혁명이 아니고 쿠데타라고 규명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렇게 어정쩡하게 쿠데타와 혁명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하긴 쿠데타와 혁명을 명확하게 구별 짓고, 무 자르듯 가른다 해도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 아이러니는 쿠데타나 내란음모 등의 단어와 친해야만 '거물급 정치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그게 사실이다. 박정희가 그렇고, 김대중이 그렇고, 심지어는 이명박까지 그렇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내란음모와 아주 친했다.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힘깨나 쓰던 정치 거물들 대부분이 내란음모에 가담하거나 주동자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내란범쯤 돼야 대통령?

<역사와 책임>(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 2015.04 / 272쪽 / 1만2000원)
 <역사와 책임>(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 2015.04 / 272쪽 / 1만2000원)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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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해서 멈추고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럼 이석기는? 아마 나중에 대통령 예비 순위 1위가 아닐까. 독자들 중에는 무슨 흰소리를 하고 있느냐 반박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다. 다음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이다.

"대한민국은 내란 공화국이다. 너무나 많은 내란이 있었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내란에 휘말린 인물들이 한국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내란의 수괴나 주요 임무 종사자라든가 내란범으로 법정에 서거나 최소한 고발당한 경력이 없으면 거물 정치인이 될 수 없다." - <역사와 책임> 108쪽 중에서

이 말이 사실일까. 그동안 대통령을 지낸 이들을 살펴보자. 모두 11명이 대통령을 지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내란의 수괴였다. 김대중과 이명박은 내란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여기서 이명박은 의외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박정희가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독재를 행할 때 김중태·현승일·김도현 등이 서울대 서클을 중심으로 "민족적 민주주의를 장사지내자"며 들고 일어났다. 이때 고려대에서도 '구국투쟁위원회'가 결성되어 "썩고 무능한 박정희 정권 타도"를 외쳤는데 당시 집행부 중 한 명이 이명박이었다. 이때 이명박은 내란혐의로 5년형을 구형받고 1964년 12월 22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최규하도 마찬가지다. 그가 신군부에 협력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협력했다면 내란에 참여한 셈이고, 아니면 내란방조죄에 해당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역시 학생과 시민들에 의해 내란죄로 고발당한 전력이 있다.

김영삼은 10.26 직전 국회에서 제명당할 때 국가기강 파괴와 내란선동 혐의가 그 제명 사유였다. 노무현은 국민행동본부(서정갑 본부장)에 의해 내란·외환죄로 고발당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피고발인 조사를 받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박정희와 박근혜, 내란으로 대를 잇다?

이쯤 되면 이력서에 '내란'이란 단어를 집어넣지 못하고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는 자격이 없다고 할 정도가 아닌가. 박정희는 이 내란공화국에서 유일하게 '내란 전과 3범'을 기록한 인물이다. 그래서 18년 동안 장기집권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에 따르면, 박정희는 내란과 관련하여 가장 별을 많이 단 인물이고, 동시에 가장 많이 별을 달아준 인물이다. 소위 '반혁명'이라 하여 무수한 내란음모사건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67년 6월 8일, 최악의 선거부정이 자행되었을 때 동백림사건이라는 최대 간첩사건이 발생했다. 중앙정보부는 윤이상, 이응로, 천상병 등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1월 26일에, 당시 정부가 단순 대북접촉을 과장·확대했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앞서 1964년에는 인민혁명당 사건이 터졌다. 1965년 8월에는 한일 국교정상화가 막바지에 이를 때, 이를 반대하는 식자층을 위수령을 발동하면서까지 반공법과 내란선동죄로 다스렸다. 1965년에는 김두한 의원이 내란음모혐의를 받았고, 1971년에는 서울대생 장기표, 조영래, 김근태 등이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이외에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사건, 도시산업선교회 손학규 사건, 박형규·권호경 사건, 민청학련사건 등등 박정희는 고비마다 간첩사건이나 내란음모사건을 만들어 위기를 헤쳐 나갔다.

1997년 12월, 내란음모사건의 주범 김대중의 사형선고가 내려진 17년째 되는 날, 김대중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리고 또 17년 후, 2014년 6월 30일, 당시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사건 항소심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다. 저자의 말대로,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의 논조로 말하면, "내란의 수괴들을 30년 넘도록 대통령으로 모시는 동안, 그들과 그들의 정보기관은 수많은 내란 사건과 내란 사범을 끊임없이 만들어 왔"다. 타이밍이 절묘한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박근혜 정권이 장장 18년을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말기적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야말로 "내란이 아닌 걸 내란으로 몰고 가는 수법은 진짜 내란범들이 쓰는 수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진짜 내란사건은 5.16 군사반란과 1972년 유신친위쿠데타 그리고 5.17 군사반란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럼 이석기 내란 사건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이 대거 동원되어 선거부정이 자행되었고, 부정선거의 덕을 크게 본 현직 대통령(박근혜)은 이 부정을 덮음으로써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정당성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헌법의 기능과 권능이 파괴되는 순간이다. 내란이다!" - <역사와 책임> 135~136쪽 중에서

'앵무새' 죽이기... 이정희·이석기 죽이기?

무수한 내란사건을 만들며 통치하던 아버지 박정희 시대로의 회귀? 박근혜 대통령은 아니라고 하겠지만(당연히 아버지 박정희도 아니라고 했다), 전후 사정으로 볼 때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무엇인가 '절묘함'이 있다. <동아방송>의 '앵무새 죽이기'(1964년 6.3사태 때 '앵무새'라는 프로그램이 내란을 선동했다며 방송부장 등 6명을 구속한 사건, 결국 방송국은 문을 닫았다)나, 박근혜의 '이정희 죽이기'는 참 많이 닮아있다.

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통령 후보는 일본군에 충성 혈서를 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언급하며 그의 딸 박근혜를 떨어뜨리려고 출마했다고 했었다. 이때 이미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결정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이 이리 설득력 있게 들리는 건 또 무슨 이유일까. 저자는 박정희와 박근혜를 '내란'이라는 소재로 같은 맥락으로 다룬다.

이외에도 책은 세월호 참사를 짚으며 역사에 대한 책임을 말한다. 간첩사건과 조작의 현대사, 제헌헌법의 진보적 민주주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오뚝이 흑역사, 전시작전권의 환수 보류에 대한 견해, 지금의 야당의 정체성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바로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면서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일갈한다. 역사, 특히 현대한국사의 질곡 속에 묻은 아픔과 책임에 대해 논한 한홍구 교수의 달변, 한 번 들어봄직하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역사와 책임>(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 2015.04 / 272쪽 / 1만2000원)

※책 뒤안길-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역사와 책임 - 한홍구 역사논설

한홍구 지음, 한겨레출판(2015)


태그:#역사와 책임, #한홍구, #서평, #쿠데타, #내란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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