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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앞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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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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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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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도서관에는 책이 많습니다. 작은 도서관에는 책이 적습니다. 그러나 크든 작든 도서관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큰 책방에는 책이 많습니다. 작은 책방에는 책이 적습니다. 그러나, 크든 작든 책방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도서관에 가든 책방에 가든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책을 빌릴 테고, 책방에서는 책을 사들일 테지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책을 많이 찾아서 읽고, 책을 적게 읽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책을 적게 찾아서 읽습니다.

큰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기에 책을 더 많이 찾아서 읽지 않습니다. 책을 더 많이 찾아서 읽으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작은 도서관과 책방으로 나들이를 다니더라도 언제나 재미난 책을 한가득 만나서 그득그득 기쁘게 읽습니다.

경남 진주 봉곡동에 깃든 작은 헌책방 '형설서점'으로 나들이를 다녀옵니다. 이곳은 작은 헌책방입니다. 크기도 작고, 책꽂이도 작습니다.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이 참으로 많으나, 이곳은 그야말로 작은 책방입니다.

작은 책방에는 책을 얼마나 갖출까요? 작은 책방에 갖춘 책 가운데 우리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책은 얼마나 될까요?

책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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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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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무라 간조 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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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책 <內村鑑三/전호윤 옮김-종교강좌>(형우사,1970)를 구경합니다. 우치무라 간조 님 책이 예전에 이만 한 판으로 나온 적이 있군요. 새삼스럽구나 싶어서 찬찬히 넘깁니다. 1970년에 이 책을 장만해서 읽은 분은 이 조그마한 책에서 어떤 숨결을 얻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 이러한 때에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진리를 전파할 일이요, 세례를 베푸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대체로 기도란 우리들의 천진한 마음이 넘쳐 흐른 것을 이름입니다. 즉 우리들의 마음속에 견딜 수 없는 감사의 정이 발로되여 언어로 나타나느 것이 기도일 것입니다 … 이 세상에서 귀중한 것이라면 얼른 생명과 재산이라 말합니다만, 그러나 이것도 영혼처럼 귀한 것은 아닙니다 … 그리스도를 믿는 자란 오늘 세상에서 말하는 기독교회라는 데에 들어가서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아 교인이 되고, 그 후에는 매 일요일마다 교회에 출석하며 목사나 선교사의 명령을 잘 순종하고 일요일에는 일체 일을 중지하고 자녀들은 선교사학교에 보내어 종교교육을 받게 하고, 무슨 일에나 불평 없이 순종 잘 하고 귀현신사의 보호를 바라며 격분을 피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세상과 타협하면서 반대되지 않도록 노력만 하면 그것으로 교회의 선남선녀로 불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이름은 기독교신도지만 실상 신자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  (14, 41, 58, 86쪽)

'천진한 마음'이 넘쳐 흐를 때에 '기도'라고 한다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한자말 '천진(天眞)'은 "거짓없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거짓없는 마음"이 '기도'라는 뜻이요, '기도(祈禱)'라는 한자말은 "비는 일"을 뜻하니, 거짓없는 마음일 때에, 가슴에 꿈을 품고서 바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어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스스로 거짓없는 마음이라면, 꾸밈없거나 깨끗한 마음이라면, 맑거나 착한 마음이라면, 이러한 마음바탕에는 아름다운 꿈이 깃들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진주에 있는 '명신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나온 <김창범-봄의 소리>(창작과비평사,1981)라는 시집을 들여다봅니다. 학교도서관에 있던 시집은 얼마나 많은 학생이 들여다보았을까요. 고등학교 아이들은 이 시집을 들여다볼 겨를이 있었을까요. 대입시험에서 다루지 않는 시인이 쓴 책을 애써 들여다보려고 마음을 기울일 만한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 버들강아지만큼 작아지면 봄이 올까 / 솜털같이 하얗게 떨고 있으면 / 봄이 올까 ..  (아지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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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가야 한다면 대학교를 가면 될 텐데, 왜 입시나 시험이 있어야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학교를 마쳤으면 마쳤을 뿐일 텐데, 왜 사람을 졸업장이나 자격증으로 갈라세워야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봄날을 노래하는 시집을 조용히 읽습니다.

글본 교과서
 글본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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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본 4>(문교부,1969)은 국민학교 4학년 어린이가 보는 교과서입니다. 나도 이 교과서를 보았던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떠오르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글본>은 1973년에 찍은 판입니다. 1973년에 찍었어도 1960년대 이야기를 담았지 싶은데, '버스'가 아닌 '합승'이 나오고, '교통비'가 아닌 '찻삯'이라 나옵니다. 그래, 그렇지요. '찻삯'이지요. 새마을운동 냄새가 곳곳에 감도는데, 교과서 끝자락에 나오는 "표어를 짓고, 포스터를 만들어 보자(60쪽)"에 이런 푯말이 보기글로 나옵니다.

 - 싸우면서 건설하고, 건설하며 싸우자.
 - 혼식으로 살림 돕고, 분식으로 건강 찾자.
 - 알뜰히 아껴 쓰고, 나라 위해 저축하자.
 - 꺼진 불도 다시 보자.
 - 작은 눈 크게 뜨고, 좁은 길 넓게 보자.
 - 많은 책 자랑 말고, 좋은 책 많이 읽자.
 - 오늘의 건설, 내일의 부강.

나는 <글본>이라는 교과서는 안 썼다고 떠오릅니다. 다만, 이 교과서 끝자락에 나오는 '새마을운동 포스터'라든지 '반공 표어'는 거의 다달이 학교에 내야 했다고 떠오릅니다. 아니, 한 주에 한 차례씩 내야 했던가? 아리송하면서 가물가물한데, 포스터와 표어를 내느라 종이를 사느니 물감을 사느니 하면서 참으로 돈을 많이 써야 하던 일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그때 학교에 낸 포스터와 표어는 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난로 불쏘시개가 되었을까요? 그런 것들을 학교에 바치도록 하는 행정은 학생을 어떻게 이끌었을까요? 창조와 창작이 아닌, 틀에 박힌 생각에 따라 아이들을 가두려고 하는 포스터와 표어가 아니었을까요?

<허웅-표준문법>(신구문화사,1966)이라는 교과서를 봅니다. 국어학자인 허웅 님이 쓴 교과서는 매우 쉽습니다. 어쩜 이렇게 쉬운 '한국 말법 이야기' 책이 다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쉬운 '한국 말법 이야기' 교과서로 배울 수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날 학교를 다니는 수많은 아이들도 '한국말을 쉽고 재미나게' 배우지 못하고, '어렵고 따분한 시험공부'로만 억지스레 배우리라 느낍니다.

책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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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법은 흥미 없는 학과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문법책은 대개 딱딱한 규칙의 나열에 그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법은, 우리들이 늘 쓰고 있는 말을 이모 저모로 살펴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므로, 결코 흥미 없는 일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자연 관찰에 못지않게 흥미 진진한 학과이다 … 우리들은 한평생을 통해서 말을 배우게 된다. 그것도 외국어 아닌 우리말을 … 우리는, 우리말을 아직 다 안 것이 아님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아직 우리말도 다 안 것이 아니구나, 우리말에 대해서도 좀더 알아보아야 하겠구나, 이러한 생각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겠음을 느끼게 된다 … 말이나 글은 그저 밋밋한 하나의 기다란 막대기처럼 생긴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처럼 마디가 있고, '그물'처럼 매듭이 있다 ..  (1∼9쪽)

고등학교를 마쳤기에 '한국말(국어)'을 더 안 배워도 되지 않습니다. 대학생이 되었기에 영어만 더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고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는 길이 꽉 막힙니다. 시험공부 교과목이 아니라면 한국말은 따로 안 다룹니다. 대학교에서 교양국어 같은 학과목이 있다지만, 몇 가지 문학과 문예창작을 다룰 뿐,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슬기롭게 바라보도록 이끌지는 않습니다.

1952년 고등 국어 교과서
 1952년 고등 국어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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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된 교과서인 <고등 국어 1-2>(문교부,1952)를 살핍니다. 헌책방이기에 이렇게 해묵은 교과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런 교과서는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1952년이라면 아직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일 텐데, 용케 이런 교과서를 찍었군요. <고등 국어 1-2> 맨 뒤쪽을 보니, "이 교과서의 종이는 미국 사람들이 자유 아시아 위원회를 거쳐 대한민국 학교 어린이들에게 보낸 선물이다. 미국 사람은, 사람의 자유와 나라의 독립을 굳게 믿는다. 이런 굳은 신념을 가졌으므로, 그들은, 한국의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이 책과 또 수백만 책의 교과서를 찍어낼 종이를 대한민국 문교부에 부쳐 준 것이다. 대한민국 문교부 장관 백낙준." 같은 말이 찍힙니다. 자유와 독립을 아이들한테 가르치려고 교과서를 찍었다고 하는데, 막상 한국 사회에서 정치나 문화나 교육이 참으로 자유롭거나 평화롭거나 독립을 꿈꾸도록 이끌었다고는 못 느끼겠습니다.

'동성중학교'에서 '4294.3.24. 장학상'으로 함께 주었다고 하는 <문세영-학습 실무 필수 실용국어사전>(선진문화사,1960)을 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학교에서 으레 '작은 국어사전'을 '우수상 선물'로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문세영 님이 엮었다는 <학습 실무 필수 실용국어사전>에는 '한국말'이 없습니다. 온통 한자말만 실었습니다. '학습'과 '실무'와 '필수'와 '실용'이라는데, 왜 온통 한자말이었을까요? 바로 1950년대 한국 사회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어온 일본 한자말이 가득가득 넘쳤기 때문이겠지요. 일본 한자말을 모르고서야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문학도 못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겠지요.

사진책 <김수남(사진),한림화(글)-제주바다 潛嫂의 四季>(한길사,1987)를 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이웃한테 선물하려고 고릅니다. 시집 <이병훈-달무리의 작인들>청사,1986)을 손에 쥡니다.

책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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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들은 병골이 되었는가 / 숫제 약으로 산다 / 산에서 새 흙을 떠다가 덮어주어도 / 몸져 누어버린 들 / 모포기가 서서 / 온 들 가득히 서서 /시원한 바람을 만들며 / 시원을 바람을 나누어 먹던 / 이슬을 만들며 / 이슬을 나누어 먹던 그것은 / 어느때 일인가 / 농약가루 사이로 뜨는 / 얼마간의 햇빛만으로 / 농사를 짓는다 ..  (논갈이·1)
이병훈 님 시집
 이병훈 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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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시골들을 노래한 시인이 농약을 이야기합니다. 2010년대에 시골들을 노래할 시인이 몇 사람이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에도 농약이 아니고는 노래할 만한 시골들 이야기는 없을 수 있습니다. 백화점이나 큰 마트에 아무리 친환경이나 유기농 곡식이 많이 있어도, 정작 시골마을을 살피면 어디에서나 쉽게 농약을 뿌립니다. 친환경 곡식에는 친환경 농약을 쓰는 한국 사회입니다. 친환경 농약도 개구리와 제비와 참새를 모조리 죽입니다. 친환경 농약을 훑는 논이나 밭에는 풀벌레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친환경이 아닌 농약이 훑고 지나간 논밭에서도 풀벌레뿐 아니라 개미 새끼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해요. 몽땅 죽어요.

<김만옥-오늘 죽지 않고 오늘 살아 있다>청사,1985)라는 책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김소운-토분수필>(민음사,1977)이라는 책도 가만히 살펴봅니다.

김소운 님 수필책
 김소운 님 수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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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봄에 30평 남짓한 슬라브옥상에다 흙을 져다 올려 소꼽장난 같은 미니채원을 만들었다. 워낙 뜰이 좁은데다 그나마 목련이나 라일락이니 매화, 석류, 단풍 같은 것이 한두 그루씩 자리를 잡고 있어 채원 겸 일년초 화단을 옥상에다 만들어 볼 생각을 한 것이다. 콘크리트 바닥에 블럭으로 둘레를 쌓고 흙을 넣어, 이것저것 씨앗을 뿌리고, 묘종을 심고 하면서도 무언가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열도 습기도 없는 그런 콘크리트 바닥에서 과연 씨앗들이 움을 틀 것인가 ..  (79쪽)

시골에서 살며 헌책방마실을 하다 보니, 내 눈에는 자꾸 '시골' 이야기와 '논밭' 이야기와 '텃밭' 이야기가 눈에 뜨이는구나 싶습니다. 내가 오늘 사는 곳에 따라 내 넋이 달라질 테고, 내 넋이 달라지는 결에 맞추어 내 눈길이 달라질 테니까요.

그나저나, 시인이나 수필가나 소설가나 극작가나 방송작가나 신문기자나, 아무튼 글을 쓰는 모든 분들이 저마다 이녁 집에서 텃밭을 가꾼다면, 저마다 어떤 글을 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글을 쓰면서 텃밭을 가꾸는 분이라면, 틀림없이 텃밭일을 글로 다루겠지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풀포기를 보면서 놀랍거나 기쁜 마음을 글로 쓸 테고, 작은 씨앗에서 터져나오는 기운찬 숨결을 반가이 맞이하면서 글로 쓸 테지요.

책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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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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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에 나온 수필책에 나오는 '옥상텃밭' 이야기를 가만히 그립니다. 이 글을 쓴 김소운 님이 아니더라도, 이때에나 요즈음이나 도시에서 골목동네를 이루어 지내는 분들은 으레 옥상텃밭을 손수 가꾸며, 골목텃밭도 야무지게 돌봅니다. 무슨 환경운동이나 협동조합 같은 문화정책이 있기에 이같이 하지 않습니다. 골목사람 스스로 이녁 살림집을 곱게 건사하면서 알뜰살뜰 사랑하기에 이처럼 텃밭이나 꽃밭을 가꾸어요.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마당 한쪽에 감나무나 배나무를 심어요.

진주 봉곡동에 깃든 작은 헌책방 '형설서점'에서 예쁜 책을 잔뜩 만납니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 책방 문을 닫을 때입니다. 진주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책방마실을 해야겠습니다. 자그마한 씨앗 한 톨이 자라서 아름드리 나무가 되듯이, 작은 책방 한 곳은 마을과 도시를 살리는 텃밭이 됩니다. 작은 책 한 권은 작은 사람 가슴에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북돋우면서 작은 별님처럼 반짝반짝 빛나리라 느낍니다.

책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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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형설서점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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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경남 진주 <형설서점> 055-748-4785 경남 진주시 봉곡동 14-2번지



태그:#작은 책방에서 길어올리는 책들, #헌책방, #형설서점, #진주 헌책방,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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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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