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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선소마을.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수시청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여수 선소마을.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수시청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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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지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충민사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다. 타루비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여수에서 20년을 산 친구도, 여수에서 나고 자란 후배도 똑같았다. 친구는 선소마을 앞을 수 없이 지나다니면서도 아직껏 한 번도 들러보지 않았다고 했다.

놀랐다. 한순간에 의기투합이 이뤄졌다. 그들과 함께 이순신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여수의 이순신 유적 탐방은 지난 21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이순신 탄신(4월 28일)을 앞둔 시점이어서 의미가 더 깊었다.

여수는 삼도수군통제사가 머물던 통제영이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온 게 1591년이다. 통제영이 설치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8월부터 1601년 3월까지였다. 여수는 이순신이 전라도 백성들과 함께 왜란을 극복한 현장이다. 거북선을 처음 출정한 곳도 여수였다.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가 없었을 것'이라는 이순신의 글에서 첫 손가락에 꼽힐 곳이다.

이순신과 조선수군들을 새긴 청동상. 이순신을 기리는 첫 사당인 충민사에서 만난다.
 이순신과 조선수군들을 새긴 청동상. 이순신을 기리는 첫 사당인 충민사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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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소마을에 있는 계선주. 당시 배를 매어 뒀던 시설물이다. 여수시청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선소마을에 있는 계선주. 당시 배를 매어 뒀던 시설물이다. 여수시청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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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는 유난히 이순신 유적지가 많다. 많기도 하지만 모두 의미가 깊은 유적들이다. 웅천동 송현마을은 이순신의 어머니가 생활했던 곳이다. 당시 고음천(古音川)이었다. 여기서 이순신의 어머니 변씨와 부인 방씨가 1593년부터 5년 동안 살았다. 이순신은 여기에 자주 들러서 어머니의 안부를 살폈다. 효자 이순신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여수시청 뒤편에 있는 선소마을은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한 곳이다. 당시 지휘소 역할을 했던 세검정(洗劒亭)과 배를 매어 뒀던 계선주가 눈길을 끈다. 군기고, 대장간, 망해루도 복원돼 있다.

여수 시내에는 또 이순신이 수군의 훈련을 독려하고 군령을 내린 고소대가 있다. 여기에 이순신을 기리는 첫 비석인 타루비가 있다. 관이 주도해 처음 세운 대첩비도 여기에 있다. 이순신을 기리는 최초의 사당 충민사도 여수에 있다. 의미가 남다른 유적들이다.

조선 수군의 본거지였던 진남관. 당시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객사다. 1718년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다시 세웠다. 국보로 지정돼 있다.
 조선 수군의 본거지였던 진남관. 당시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객사다. 1718년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다시 세웠다. 국보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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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에 있는 석인상. 이순신이 당시 의인전술의 일환으로 세웠다고 전해진다.
 진남관에 있는 석인상. 이순신이 당시 의인전술의 일환으로 세웠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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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함께 먼저 찾아간 곳은 진남관(鎭南館). 조선 수군의 본거지였다. 둘레 1130m의 전라좌수영성이 여기에 있었다.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진해루(鎭海樓)가 있던 자리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지휘소로 썼던 곳이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탔다.

진남관은 이순신의 뒤를 이어 1599년 제4대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시언이 세웠다. 75칸의 객사였다. 남쪽의 왜구를 진압해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고 '진남관'이다.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두고 향궐망배 의식을 거행했다. 향궐망배(向闕望拜)는 지방의 관리들이 임금을 모시듯 선정을 다짐하는 의례다. 외국 사신과 왕의 명을 받들고 온 대신을 접대하는 장소로도 쓰였다.

화재로 불탄 것을 1718년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다시 세웠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지방의 관아 건물 가운데 가장 크다. 국보 제304호로 지정돼 있다.

진남관에 세워져 있는 이봉상 등 전라좌수사의 선정비군. 통제문에서 망해루로 가는 계단 오른편에는 있다.
 진남관에 세워져 있는 이봉상 등 전라좌수사의 선정비군. 통제문에서 망해루로 가는 계단 오른편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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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로 널리 알려진 이순신의 임진일기. 진남관 내 임란유물전시관에서 만난다.
 ‘난중일기’로 널리 알려진 이순신의 임진일기. 진남관 내 임란유물전시관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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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 앞뜰에 석인상(石人像)이 서 있다. 이순신이 돌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세운 것이다. 적을 속이기 위한 의인전술(擬人戰術)의 일환이었다. 애초 7구가 세워졌으나, 1기만 남아 있다. 석주 화대는 돌기둥에 설치한 횃불 받침이다. 수군의 야간 훈련을 밝혔다. 당시 4개가 있었으나 2개만 남았다.

통제문에서 망해루로 가는 계단 오른편에는 비석군이 있다. 전라좌수사의 선정비 15기가 무리지어 서 있다. 숙종 때 전라좌수사를 지낸 이봉상을 기리는 선정비가 있다. 이봉상은 이순신의 5세손으로 빈민 구제에 힘썼다. 전라좌수사 이량의 방왜축제비도 있다. 이량은 돌산도와 장군도 사이 해협에 수중 제방을 쌓아 왜구의 침입을 막았다.

임란유물전시관에서는 당시의 해전 상황과 전라좌수영성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거북머리 아래에 귀신머리를 새긴 거북선도 그림과 모형으로 만난다. 거북선 안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난중일기'로 널리 알려진 이순신의 임진일기와 서간첩(국보 제76호)도 전시돼 있다.

고소대에 서 있는 비각. 이순신을 기리는 첫 비석인 타루비와 첫 대첩비인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보호하고 있다.
 고소대에 서 있는 비각. 이순신을 기리는 첫 비석인 타루비와 첫 대첩비인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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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대에 세워져 있는 비석들. 맨 오른쪽이 이순신을 기리는 첫 비석인 타루비다. 가운데가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다. 왼편의 비석은 대첩비의 건립 경위 등을 적어놓은 동령소갈비다.
 고소대에 세워져 있는 비석들. 맨 오른쪽이 이순신을 기리는 첫 비석인 타루비다. 가운데가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다. 왼편의 비석은 대첩비의 건립 경위 등을 적어놓은 동령소갈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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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 맞은편 고소동에는 고소대(姑蘇臺)가 있다. 일종의 포루였다. 이순신이 수군의 훈련을 독려하고 군령을 내린 곳이다. 여기서 돌산대교와 여수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비각 안에 3기의 비석이 서 있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統制李公水軍大捷碑)와 타루비(墮淚碑)가 있다. 대첩비의 건립 경위 등을 적어 놓은 동령소갈비(東嶺小喝碑)도 있다.

오른쪽 타루비에는 당시 수군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타루(墮淚)는 비석을 바라보면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1603년 이순신의 막하에 있었던 수군들이 주머니를 털어 세웠다. 높이 97㎝, 폭 58.5㎝로 크지 않지만 의미는 깊다. 이순신을 기리는 첫 비석이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는 1620년에 완공했다. 길이 305㎝, 폭 124㎝로 국내에서 가장 큰 대첩비다. '좌수영대첩비'라고도 한다. 비문을 영의정 이항복이 썼다. 빗돌은 이순신의 부하였던 유형이 황해도에서 가져왔다. 관이 주도해 세운 첫 비석이다. 해남 우수영의 명량대첩비와 함께 1942년 일제에 의해 한양으로 옮겨졌다가 광복 이후 다시 옮겨왔다.

이순신을 기리는 첫 비석 타루비. 1603년 이순신의 막하에 있었던 수군들이 주머니를 털어 세웠다. 높이 97㎝, 폭 58.5㎝로 크지 않다.
 이순신을 기리는 첫 비석 타루비. 1603년 이순신의 막하에 있었던 수군들이 주머니를 털어 세웠다. 높이 97㎝, 폭 58.5㎝로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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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섬과 뭍을 연락하는 통신수단으로 쓴 갖가지 연을 그려놓은 고소동 벽화마을. 골목길의 길이가 1004m라고 천사벽화마을로 이름 붙었다.
 이순신이 섬과 뭍을 연락하는 통신수단으로 쓴 갖가지 연을 그려놓은 고소동 벽화마을. 골목길의 길이가 1004m라고 천사벽화마을로 이름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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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대 뒤편 마을은 1004벽화마을이다. 골목길의 길이가 1004m라서 그리 이름 붙였단다. 2012년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주민자치위원회가 앞장서 조성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담벼락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순신이 섬과 뭍을 연락하는 통신 수단으로 쓴 갖가지 연도 그려져 있다. 통영의 동피랑마을에 버금간다. 그림을 보고 여수바다도 내려다보며 쉬엄쉬엄 걷기에 좋다.

덕충동에 있는 충민사는 이순신을 기리는 최초의 사당이다. 경남 통영의 충렬사보다 62년, 충남 아산의 현충사보다 103년 앞서 세워졌다. 선조의 명을 받은 이항복이 1601년 삼도수군통제사 이시언에 명을 내려 세웠다. 이순신의 부하였던 전라우도수군절도사 김억추, 충청수군절도사 오응태, 갑도만호 송희립, 발포만호 소계남, 가리포첨사 변홍달 등이 참여했다. 선조가 직접 편액을 썼다. 이순신의 영정에서 문무를 겸비한 명장의 기운이 느껴진다.

왼편의 석천사는 1599년에 지어진 절집이다. 자운스님과 옥형스님이 이순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자운스님은 당시 승려 300명으로 의승수군을 결성하고 대장이 됐다. 옥형스님은 군량미 마련에 앞장섰다. 의승당의 기둥에 이순신과 자운·옥형스님, 의승군을 기리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순신을 기리는 첫 사당 충민사. 경남 통영 충렬사보다 62년, 충남 아산의 현충사보다 103년 앞서 세워진 유서 깊은 사당이다. 여수시 덕충동에 자리하고 있다.
 이순신을 기리는 첫 사당 충민사. 경남 통영 충렬사보다 62년, 충남 아산의 현충사보다 103년 앞서 세워진 유서 깊은 사당이다. 여수시 덕충동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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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민사 유물전시관 앞에 왜란 당시 쓰였던 지자총통, 현자총통 등 화포를 전시해 놓았다. 당시의 전투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충민사 유물전시관 앞에 왜란 당시 쓰였던 지자총통, 현자총통 등 화포를 전시해 놓았다. 당시의 전투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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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민사 유물관에선 이순신과 수군의 청동상이 맞아준다. '난중일기'로 통용되는 이순신의 친필 임진일기, 갑오일기 등도 보여준다. 당시 거북선 건조에 대한 기록도 엿보인다. 전장에서 사용됐던 곡나팔과 영패, 귀도, 조선장수의 갑주도 전시돼 있다. 이순신의 10세손이 세운 충민사 유허비도 복원돼 있다.

유물관 앞에는 당시 전장에서 쓰였던 지자총통, 현자총통 등 화포가 전시돼 있다. 왜란 당시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알토란같은 공간이다. 또 흥국사는 의승군의 거점이었다. 의승수군 유물전시관에 이순신의 친필 편액 '공북루'가 보존돼 있다.

왜란 당시 의승군의 거점이었던 여수 흥국사. 이곳 의승수군 유물전시관에 이순신의 친필 편액 ‘공북루’가 보존돼 있다.
 왜란 당시 의승군의 거점이었던 여수 흥국사. 이곳 의승수군 유물전시관에 이순신의 친필 편액 ‘공북루’가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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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이런 특별한 유적 자원을 토대로 한 축제가 준비중 있다.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을 재현하는 진남거북선축제다. 오는 3일 일요일부터 5일 어린이날까지 사흘 동안 여수 이순신광장 일원에서 펼쳐진다.

축제는 충민사에서 이순신을 기리는 고유제로 시작으로 타루비와 대첩비 참관, 통제영 길놀이로 이어진다. 전라좌수영의 육상과 해상 유적지를 돌아보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역사체험극, 소년이순신 선발대회도 준비된다. 거문도뱃노래와 현천 소동패놀이 시연, 용줄다리기도 볼만하다. 여수밤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불꽃놀이도 황홀하다.

황홀경을 선사하는 여수밤바다 풍경. 형형색색의 불을 밝힌 돌산대교와 국동항 풍경이 여수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황홀경을 선사하는 여수밤바다 풍경. 형형색색의 불을 밝힌 돌산대교와 국동항 풍경이 여수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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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순천 나들목에서 여수 방면으로 17번 국도를 타고 여수로 간다. 여수 도심을 관통하는 좌수영로를 타고 버스터미널을 거쳐 서교동 로터리와 중앙동 로터리를 지나 진남관에 이른다.



태그:#타루비, #통제이공수군대첩비, #충민사, #진남관, #선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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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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