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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에 4·7살 어린이가 있는 가족이 다녀갔습니다.  

체크아웃을 하고 머문 방에, 어린이 독후감 노트가 남겨진 것을 봤습니다. 급히 챙겨서 그 가족이 막 출발하려는 주차장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달려가는 중에 얼핏 표지를 보니 '이주리'라는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주리는 내 딸인데…." 

둘째딸의 오래된 독후감 노트
 둘째딸의 오래된 독후감 노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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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노트를 펴보니,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한 가족의 독후감이 아니라 제 둘째딸의 아주 오래된 독후감 노트였습니다.

모티프원의 서재는 우리 가족의 서재를 방문하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개방했습니다. 방문객들은 간혹 우리 부부의 연애시절 편지가 꽂힌 책을 발견하기도 하고, 오래전에 모티프원을 방문했다가 어떤 분이 일부러 두고 간 일기장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 가족은 서가 어디에서 둘째딸의 독후감 노트를 발견하고, 동화책 대신 독후감을 읽어주었던 모양입니다. 덕분에 저도 오늘 딸의 오래된 독후감 노트를 읽었습니다.

딸의 초등학교 독후감 노트에는 저도 모르는 신기한 동물들의 생태들이 담겨있었습니다.
 딸의 초등학교 독후감 노트에는 저도 모르는 신기한 동물들의 생태들이 담겨있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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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딸의 오래된 독후감
● 청파초등학교 5학년 5반 11번 이름 이주리
● 읽은책 : <원숭이 의사가 왕진을 가요>
● 지은이 : 장립준
● 그   림 : 김종도
● 날   짜 : 2월 2일
 
여러 가지 동물들의 습성 

이 책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동물의 특징이나 습성을 이야기로 잘 꾸며 놓은 것 같다. 그리고 난 이 책을 읽고 여러 동물들의 목욕법을 잘 알았다.  

까마귀는 개미가 기생충을 없애주는 방법으로 개미 목욕을 하고, 비버는 마른 풀에 몸을 비벼 몸에 붙어있는 오물과 벌레를 떼어낸다. 그리고 코끼리는 물로도 목욕을 하지만 모래로도 목욕을 하고 물소는 진흙으로 근질근질한 몸을 시원하게 한다. 또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것은 나무늘보는 너무 게을러서 몸에 이끼가 생긴다니 정말 얼마나 게으른지 상상이 간다. 

또 동물들은 자기들만의 치료법을 가지고 있다. 물소는 상처가 나면 늪에서 물장구를 쳐서 상처를 낫게 하고 곰이 식중독에 거렸으면 남의 오줌을 구해마시고 병을 낫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거북이가 아플 때는 박하를 먹으면 금방 병이 낫는다. 정말 신기하다. 동물들도 자기 방식대로 아픈 곳을 치료 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나도 동물들의 습성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 더욱 동물들의 습성을 알아보고 싶다.

#2

동화책의 독후감을 쓰던 아이는 어느덧 제 역할을 하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육아에 지친 부모들은 아이의 어린 시절이 영원할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순식간입니다.
 동화책의 독후감을 쓰던 아이는 어느덧 제 역할을 하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육아에 지친 부모들은 아이의 어린 시절이 영원할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순식간입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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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후감의 주인공인 주리로부터, 그제 짧은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받았습니다. 

"콩고에서 고릴라 가족 상봉~ 지난 주말에 고릴라가 사는 국립공원에 다녀왔어요." ​

주리는 지금 콩고민주공화국(아래 콩고)에서 UNDP의 유엔청년봉사단(UN Youth Volunteer)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카후지비에가국립공원로 고릴라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
 카후지비에가국립공원로 고릴라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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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비룽가 국립공원(Virunga National Park)은 1925년에 설립된 아프리카의 첫 국립공원으로 산악고릴라(mountain gorilla)의 서식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지요. 콩고의 북동부지역의 이 공원과 르완다의 볼캉국립공원(Volcans '화산'이라는 뜻의 불어 Volcanoes National Park) 그리고 우간다의 음가힝가 고릴라국립공원(Mgahinga Gorilla National Park)이 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마운틴 고릴라 뿐만 아니라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지정한 국제적인 위기종, 희귀동물 등이 살고 있는 이 공원은 콩고 내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곳입니다.

마침내 어렵게 상봉한 고릴라 가족. 이들은 사람과의 접촉에 익숙해진 가족입니다. 이 가족들은 등에 은백색 털을 가진 어른 수컷인 실버백(Silver back)에 의해 통솔됩니다.
 마침내 어렵게 상봉한 고릴라 가족. 이들은 사람과의 접촉에 익숙해진 가족입니다. 이 가족들은 등에 은백색 털을 가진 어른 수컷인 실버백(Silver back)에 의해 통솔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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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가 다녀온 곳은 르완다 국경 인근의 키부호 남서쪽, 아프리카의 스위스로 불리는 부카부(Bukavu)의 산악·산림지대인 카후지비에가국립공원(Kahuzi-Biega National Park)입니다. 1960년부터 야생동물보호구로 고시되었고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이곳에는 동로랜드고릴라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12가족이 살고 있대요. 그중 두 가족의 각각은 27명의 가족구성원이 있답니다. 지금은 두 가족만 사람과 접촉하고 있고 다른 한 가족이 사람과 익숙해지는 과정을 밟고 있답니다. 6개월 뒤면 세 번째 가족도 볼 수 있다는 군요."

카후지비에가국립공원의 고릴라 트레킹에서는 고릴라보호기금으로 사용될 외국인 200달러, 내국인(콩고인) 20불의 입장료를 지불합니다.
 카후지비에가국립공원의 고릴라 트레킹에서는 고릴라보호기금으로 사용될 외국인 200달러, 내국인(콩고인) 20불의 입장료를 지불합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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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동물들의 습성을 알아보고 싶다'는 결심으로 독후감을 마무리했던 초등학생의 딸은 어느덧 성인이 되어 UN의 일원으로 이 콩고내전의 뒷수습을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엉뚱한 아이 온이의 성장 과정을 그린 동화를 읽고 그 책의 주인공 '온이'에게 편지형식으로 쓴 아래의 또 다른 독후감이 제 퇴로조차 막습니다.

세월은 지나고 보면 순식간입니다. 멀리 있는 딸의 오래된 독후감 노트를 읽으면서 더 사랑하지 못했던 일들만 생각납니다.

둘째딸의 오래된 독후감
● 읽은책 : <찌그덕 삐끄덕 우리집 사랑>
● 지은이 : 권태현
● 날   짜 : 7월 8일 

이해 못하는 부모님

온이야 나도 네 마음을 이해하겠어. 부모님은 별것 아닌 일에도 화를 내시고 혼을 내시지. 또 나도 동생이 있는데 엄마는 내 동생만 잘해주지….

하지만 너희 온이 가족이 다시 행복을 되찾아서 다행이다.

지금처럼 행복하고 어머니나 아버지께서 널 잘 이해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슬퍼하거나 그러지 말고 엄마가 날 위해 저러시는구나~ 라고 생각해.

그리고 다음부터는 아빠한테도 놀이공원 가자고 떼써지마!

계속 행복해! 온이야!

7월 9일
주리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유엔청년봉사단, #DR콩고, #고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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