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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잎과 함께 12시간 훈증으로 쪄낸 대통찜란. '공군대령' 출신 귀농인 정흥호 씨가 개발한 담양특산 간식이다.
 댓잎과 함께 12시간 훈증으로 쪄낸 대통찜란. '공군대령' 출신 귀농인 정흥호 씨가 개발한 담양특산 간식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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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해서 닭을 기르는데요. 방사한 닭이죠. 이 닭이 유정란을 낳는데, 판매가 고민이더라고요. 정말 좋은 달걀인데, 알리는 방법이 마땅치 않았어요. 어떻게 차별화시킬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대통찜란입니다."

대통찜란을 선보인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정흥호(56)씨의 말이다. 지난 19일 그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농원과 가공공장을 오가며 이뤄졌다.

정씨가 개발한 대통찜란은 유정란을 댓잎과 함께 대통에 넣고 쪄낸 것이다. 담양의 상징인 대나무를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담양스타일'이다. 대의 성분이 건강에 좋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대통찜란은 대통밥을 만드는 방식과 흡사하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대통밥보다 정성이 훨씬 더 들어간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대통밥이 30∼40분이면 끝나는데 반해 대통찜란은 12시간 이상 걸린다. 그것도 훈증으로 쪄낸다. 대통과 댓잎의 좋은 성분이 계란에 고스란히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댓잎과 함께 쪄낸 대통찜란. 댓잎의 흔적이 겉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댓잎과 함께 쪄낸 대통찜란. 댓잎의 흔적이 겉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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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을 벗겨낸 대통찜란. 댓잎 성분이 스며들어 흰자위가 연한 댓잎 빛깔로 변해 있다.
 껍질을 벗겨낸 대통찜란. 댓잎 성분이 스며들어 흰자위가 연한 댓잎 빛깔로 변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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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모두들 별미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특허를 냈다. 한국식품정보원의 안전검사도 받았다. 수분도 오래도록 유지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길에 서광이 비쳤다. 하지만 홍보와 판로가 문제였다.

정씨는 시쳇말로 막고 품었다. 틈나는 대로 찜통을 짊어지고 다니며 대통찜란을 홍보했다. 맛을 본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날마다 돌아다닐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인판매를 생각해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담양 소쇄원 주차장에 무인판매대를 설치했다. 소쇄원에서 가까운 한국가사문학관에도 놔뒀다. 구매 고객이 스스로 거슬러 갈 수 있도록 잔돈도 한쪽에 비치하고 대통으로 눌러 놓았다.

대통찜란의 가격은 3000원. 따끈따끈한 대통에는 댓잎과 함께 쪄낸 계란 3개가 들어있다. 대통의 입구는 한지로 덮었다. 이 찜란의 흰자위가 댓잎 색깔이다. 노른자는 연한 갈색이다. 연한 댓잎의 향이 계란에 오롯이 스며있다. 식감도 부드럽다. 팍팍하지 않다. 계란 특유의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정흥호 씨가 설치해 둔 대통찜란 무인판매대. 담양 소쇄원 주차장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정흥호 씨가 설치해 둔 대통찜란 무인판매대. 담양 소쇄원 주차장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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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판매대에 내놓은 대통찜란. 대통 안에 댓잎과 함께 쪄낸 유정란 3개가 들어있다.
 무인판매대에 내놓은 대통찜란. 대통 안에 댓잎과 함께 쪄낸 유정란 3개가 들어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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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판매대와 마주친 사람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무인판매에 의아해하고, 대통찜란의 맛에 놀랐다. 담양에서만 내놓을 수 있는, 담양스타일의 찜란이라고 입을 모았다. 단순 홍보를 넘어 수입도 쏠쏠했다. 정씨의 마음도 뿌듯했다.

1년 가량 무인판매를 시험한 정씨는 무인판매대를 8곳으로 늘렸다. 달걀 자동세척기와 가마솥, 저장고를 갖춘 가공시설도 설치했다. 지금은 친환경매장과 관내 하나로마트에도 납품하고 있다. 앞으로도 판매망을 다양한 방법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자동세척기에서 세척 과정을 거쳐 나오는 유정란. 대통찜란의 재료가 될 달걀이다.
 자동세척기에서 세척 과정을 거쳐 나오는 유정란. 대통찜란의 재료가 될 달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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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호 씨가 12시간 이상 훈증으로 쪄낸 찜란을 포장하고 있다. 친환경 매장으로 내놓을 것들이다.
 정흥호 씨가 12시간 이상 훈증으로 쪄낸 찜란을 포장하고 있다. 친환경 매장으로 내놓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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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전 정씨는 직업군인으로 살았다. 공군2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공군소위로 임관한 뒤 28년 동안 공군으로 복무했다. 지난 2008년 9월 공군본부 총무과장(공군대령)으로 전역했다. 이후 2년 동안 귀농을 준비했다.

그동안 살던 충청남도 계룡에서 텃밭을 가꾸고 닭을 키웠다. 관련 자료와 인터넷을 뒤지며 매달렸다. 발효사료 만드는 법도 익혔다. 앞서가는 양계농장도 여러 군데 찾아다녔다. 선진기술을 눈으로 보고 얘기를 들으며 하나씩 익혔다.

정씨는 2010년 10월 고향 담양으로 내려왔다. 야산에 울타리를 치고 병아리 1000여 마리를 풀어 놓았다. 주변엔 곰취, 당귀, 작약 등 산나물씨를 뿌렸다. 닭의 먹이로 쓰기 위해서였다. 사료비 부담을 줄이고 닭의 면역력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닭에 먹일 천연사료도 직접 만들었다.

귀농인 정흥호 씨의 농원. 야산과 대밭에 풀어놓은 닭이 그물망을 넘나들고 있다. '자연벗농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닭이 자연과 어우러져 살고 있다.
 귀농인 정흥호 씨의 농원. 야산과 대밭에 풀어놓은 닭이 그물망을 넘나들고 있다. '자연벗농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닭이 자연과 어우러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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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호 씨가 야산과 대숲에 풀어놓은 닭. 경계를 가리지 않고 자유스럽게 나다니고 있다.
 정흥호 씨가 야산과 대숲에 풀어놓은 닭. 경계를 가리지 않고 자유스럽게 나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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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고달프죠. 이것저것 챙기려니까요. 그래도 닭한테 좋으니까 해야죠. 내가 조금만 고생하면 안전한 닭, 건강한 닭으로 키울 수 있는데요. 그 정도도 못하겠습니까. 그럴 생각 없었으면 아예 내려오지도 않았죠."

정씨는 현재 전남 담양군 남면 인암리 야산과 대숲에 닭 100여 수를 놓아 기르고 있다. 울타리로 그물망을 쳐놓았지만 닭들이 무시로 넘나든다. 나무 위에도 올라 앉아있다. 날개를 가진 재래닭이라는 걸 실감한다.

"체험농장으로 운영해 보려고요. 야산을 누비는 닭이 낳은 알을 수집하고. 추억의 계란밥도 만들어보고. 가마솥에 불을 지펴 대통약밥도 만들어 먹고. 대피리나 물총, 대나무시계 같은 대나무소품도 만들고요. 토종 논우렁과 미꾸라지 잡기, 산나물 채취도 체험하고. 가까운 소쇄원이나 식영정 탐방은 덤으로 하고요."

정씨의 올해 계획이다. 닭을 기르고 대통찜란을 가공·판매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체험학습까지 하는 농업의 6차산업화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공군대령' 출신 정씨가 농업으로 다시 날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귀농인 정흥호 씨가 자신의 농원에서 노니는 재래닭 한 마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귀농인 정흥호 씨가 자신의 농원에서 노니는 재래닭 한 마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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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통찜란, #정흥호, #귀농, #찜란, #자연벗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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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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