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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13년. 서로의 관점에서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다르게 들리지만 다르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입니다. 그 남자 이야기는 남편 지용민 시민기자가, 그 여자 이야기는 아내 박보경 시민기자가 썼습니다. - 기자 말

[그 남자 이야기] 아파트 1층에 입주하고 제일 먼저 한 놀이는 '점프 점프'

언제부터인지 우리집은 동네 아이들의 사랑방이 됐다. 아이들이 활동적이 된다.
▲ 1층이라서 가능한 그림 언제부터인지 우리집은 동네 아이들의 사랑방이 됐다. 아이들이 활동적이 된다.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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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1층에 산 지 3년째다. 그 전에는 아파트 12층에 살았다. 비가 올 때, 눈이 내릴 때, 해질 무렵 등 전망은 참 좋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뛰지 못했다. 거실과 아이들 방에 깔아 놓은 놀이매트(라 쓰여 있지만 실제로는 소음방지 매트)는 맘씨 좋은 아래층 거주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처음 1층에 입주해서 가장 먼저 한 놀이는 소파에서 점프하기였다. 신기했다. 술래잡기는 기본이고, 거실에서 뛰어 노는 데 거칠 것이 없었다. 한밤중에 뛰어 다닐 수 있다는 기분 좋은 느낌, 우리 아래층에는 거주자가 없질 않은가.

물론 위층은 존재한다. 아파트 저층부는 확률상 아이를 키우는 집들이 선호한다. 우리 윗집도 비슷한 또래의 여자 아이를 키우는 모양이다.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들리는 소리와 쿵쾅거리는 뜀박질 소리로 추정 가능하다. 분명 층간소음은 존재하나, '우리 아이들이 더 뛰고 있다'는 생각에 여유롭게 들리는 소음이다.

공동현관문을 나가면 바로 아파트 놀이터가 있다. 아이들끼리 놀이터에 나가서 놀고 있으면 아내가 주방 쪽 창문을 열고 "애들아~"하고 부른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각되나 여기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임을 고려한다면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네 엄마~"하고 아이들이 호응한다. 1층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 방 앞에 떨어진 '임신테스트기'... 이유가 있었다

세상사는 양지와 음지가 공존한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엄마 목소리를 듣고 호응할 정도로 1층집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가깝다. 낮 시간대에는 오가며 흘깃 쳐다보는 사람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나, 밝은 조명으로 인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저녁 때에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블라인드로 창문을 가려야 집안 내 생활이 보호받을 수 있다.

아파트 고층에 거주할 때에는 속옷만 입고 다녀도 볼 사람도 없었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1층에 거주하게 되니 기본적인 옷은 입어야 한다. 한밤 중 엘리베이터 앞에서 취객이 소리치는 것도 거슬릴 때가 있으나 늘 그런 것이 아닌 만큼 애교로 넘어가련다.

1층에 살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도 해보았다. 두 아이가 자는 방을 청소하던 때였다. 집에서 가장 작은 방이다. 창문을 열고 이불을 털고 있었는데 창문 밖 화단에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보행자들은 화단 밖으로 다니며 예쁘게 핀 꽃들만 보지만 이불을 털면서 안쪽을 자세히 보게 된 것이다.

"누가 여기다 담배꽁초를 이렇게 버리지? 관리사무소에 안내방송을 해달라고 얘기해야겠어."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모두 28층, 위로는 27개의 또 다른 방이 있는 것이다. 집에서 가장 작은 방임을 고려할 때, 윗층 어딘가에 거주하는 누군가가, 가정에서 가장 작은 방에 거주하는 미성년자 등 창문으로 던진 담배 꽁초가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관리사무소에서 한번 청소한 게 그 정도야. 그리고 담배꽁초는 양반이야. 얼마 전에는 임신테스트기도 떨어져 있었어."

아내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었나 보다. 아파트 1층 화단 안쪽에 임신테스트기? 누군가 결과를 확인하고 밑으로 내던졌다는 말인데,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내게는 조금 충격적인 말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런 걸 집어 던지지? 엘리베이터 안에다가 사진 찍어서 버리지 말라고 붙여놓을까?"

"떳떳하게 버릴 수 없는 누군가겠지. 담배꽁초도 실내에 처리하지 못하고, 테스트기 같은 것도 쓰레기봉투에 버리지 못하는… 사람 아니겠어?" 

아내는 언제부터 탐정 수준의 추리력을 보유하게 됐는지 그게 더 놀라워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점이 많다는 아파트 1층. 아이들에게 "뛰지마"라는 소리를 치고 싶지 않은 아빠 입장에서는 1층에 사는 장점이 더욱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런 생각이 대폭 후퇴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1년 반 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그 여자'가 할 말이 많다고 한다. 

[그 여자 이야기] 크리스마스 이브 "싼타 대신 도둑이 들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아이들이 태권도에 다녀오는 1시간을 이용해 지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줄 일이 있었다. 시간 여유가 없다 보니 지인과 지하철역에 있는 커피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두 정거장을 가야 하는 거리기에 아이들을 보내고 부랴부랴 전철역으로 향했다.

지인과 만나 커피를 냉수 마시는 기분으로 마시고는 선물을 전하고, 또 지인이 아이들과 먹으라며 전해준 손바닥만 한 케이크를 손에 들고 또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신나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숫자판을 누르면 나던 삑삑 소리가 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열쇠수리공에게 전화를 걸었다.

열쇠수리공이 나름의 장비를 이용해 문을 열어보려고 했으나 우리 문은 굳건했다. 어느덧 밖은 깜깜해져 가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오래 걸리자 내심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때는 한겨울. 아이들은 떨고 있고, 가족과 함께 따뜻한 시간을 나눠야 할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별 일 아닌 것'이라던 수리공이 한참을 일하다 내게 물었다. "혹시 아이들이 장난치다가 안에서 건전지를 뺀 적이 있나요?" 어딘지 모르게 아저씨는 조심스레 물었고, 나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수리공이 포기 선언을 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자신이 가져온 장비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고친 게 없으니 돈은 안 받겠다'고 말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수리공의 조심스런 질문, 역시나… 여기는 1층입니다!

수리공도 포기한 상황, 믿을 곳은 아파트 관리사무소뿐이었다. 오후 6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관리사무소에는 모두 퇴근하고 당직 여직원만 남아 있었다. 여직원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가며 낑낑거렸다. 우여곡절 끝에 문이 열렸다.

열쇠 수리공의 말이 맞았다. 잠금장치의 건전지가 신발 사이에 널브러져 있었다. 오랜 긴장과 초조함 끝에 문이 열리고 집안에 들어오자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찬 바람이 쌩하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살펴보니 아이들 방 창문이 열려 있었다.

그 때까지도 '내가 문을 열어놓고 나갔나?'하고 생각했다. 안방에 들어선 순간 그 동안 이상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의 답이 나왔다. 안방 장롱의 문이 열려있었고, 그 안에 있던 가방들이 밖으로 내팽겨쳐져 있었다. 집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할아버지 대신 도둑이 방문한 것이다.

경찰이 올 때까지 만지면 안 될 것 같아 손을 대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그동안은 담담했는데 경찰들이 오고 사람들이 들락거리자 갑자기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집에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지나고 보니 수리공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집 안에서 건전지를 빼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던 게 도둑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던 것이다.

경찰이 이것저것 조사를 했다. 보석이나 현금이 없는 우리 집에서 도둑이 가져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기껏해야 노트북이 2대와 손바닥만한 디지털 카메라가 그나마 가져갈 만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소형 가전제품은 장물처리를 해야 해서 요즘은 가져가지 않는다고 했다. 웃음이 나왔다. 큰 맘먹고, 마음을 졸이며 집을 뒤진 도둑이 얼마나 실망했을까?

경찰은 창문으로 도둑이 들어왔고, 들어오자마자 현관문에서 건전지를 뺏을 거라고 한다. 발자국이나 지문은 남기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소득은 없었을 것이다.

한바탕 소동을 거친 후 남편이 "높은 층으로 이사할까?" 하고 물어보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문단속이야 좀 더 철저하게 하면 될 일인데 아이들에게 '뛰어 놀 수 있는 행복'을 뺏고 싶지가 않았다. 매번 '뛰지 마라' 하는 나도 스트레스, 넘치는 에너지를 제재 당해야 하는 아이들도 스트레스 일 것이다.

창 밖에 떨어진 수북한 담배꽁초, 아이스크림 봉지, 황당한 임신테스트기, 거기에 산타할아버지를 대신한 도둑까지. 일층이기에 보고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지만 그런데도 나는 1층이 좋다. 조심하면 누릴 수 있는 아이들의 자유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태그:#아파트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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