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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5월 1일 오전 10시 35분]

26일 페이스북 '중앙대학교 어둠의 대나무숲(이하 중대숲)' 페이지에, 중앙대 학사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겨냥한 익명의 제보글이 올라왔다. 중대숲은 중앙대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익명의 제보를 받아, 공유하는 페이지다. 이곳의 1127번째 제보자는 "대학의 기본목적은 기초학문보호가 아닌 취업"이라며, "냉정하게 장애인이건 노인이건 도태되면 죽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해 논란을 낳고 있다.
 26일 페이스북 '중앙대학교 어둠의 대나무숲(이하 중대숲)' 페이지에, 중앙대 학사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겨냥한 익명의 제보글이 올라왔다. 중대숲은 중앙대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익명의 제보를 받아, 공유하는 페이지다. 이곳의 1127번째 제보자는 "대학의 기본목적은 기초학문보호가 아닌 취업"이라며, "냉정하게 장애인이건 노인이건 도태되면 죽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해 논란을 낳고 있다.
ⓒ 중앙대 어둠의 대나무숲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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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목적은 기본학문 보호가 아닌 취업에 도움 받는 데 있습니다."
"냉정하게 장애인이건 노인이건 보호는 필요없죠. 도태되면 죽는 건 당연합니다."

논란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아래 일베)'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젊은 지성들이 모인 대학의 인터넷 공간에서 나온 이야기다.

지난 26일, 페이스북 '중앙대학교 어둠의 대나무숲' 페이지에 한 익명 기고자가 대학 구조조정 반대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그에 따르면, 기초학문은 장애인과 노인처럼 도태돼 사라져야 할 분야다. 기초학문이 도태돼 사라져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논란이 됐지만, 장애인과 노인을 비하하는 말에 많은 이들이 아연실색했다.

최근 중앙대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 막말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업식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들을 향해 "목 쳐주겠다", "사무착오로 입학한 케이스"라는 등의 비하발언을 서슴지 않은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의 이메일이 공개된 직후의 일이다(관련 기사: 박용성의 '중앙대'... 1200억 원에 망가진 '두산대').

이 일로, 박 전 이사장은 사과입장을 발표하고 중앙대 이사장직을 사퇴했다. 그러자 평소 그의 행보에 동조하며 주로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적으로' 표출되던 찬성론자들이 비난의 화살을 구조조정 반대론자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중베' 별명 얻은 커뮤니티, 박용성 떠나자 "인문대생은 쓰레기"

'중앙인 커뮤니티(이하 중앙인)'는 중앙대 학교 홍보실이 내규에 따라 운영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다. 과거 중앙대 청소노동자 파업 당시, 청소노동자를 향한 모욕적인 댓글들이 난무해 '중베(일베 + 중앙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중앙인 커뮤니티(이하 중앙인)'는 중앙대 학교 홍보실이 내규에 따라 운영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다. 과거 중앙대 청소노동자 파업 당시, 청소노동자를 향한 모욕적인 댓글들이 난무해 '중베(일베 + 중앙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중앙인 커뮤니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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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인 커뮤니티(아래 중앙인)'는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직후 생겨난 인터넷 커뮤니티다. 처음에는 두산그룹에서 홍보 업무를 맡다 퇴사한 한 관계자가 홍보실장으로 운영 권한을 행사하다가, 현재는 중앙대 홍보팀장이 책임자로 있다.

학교 커뮤니티지만, 상단 고정 게시물로 대학 본부의 입장이 나오고 이용자 제재에 대한 판단도 전적으로 홍보실 몫이다. 때문에 과거부터 논란이 있었다. 학교와 학생 사이에는 태생적으로 불균형한 권력구조가 있으므로, 학교만을 대변하는 여론을 재생산한다는 지적이었다(관련 기사: 중앙인, 커뮤니티라 하기엔 좀 애매한).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21일 중앙대 이사장과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12년 8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을 당시 모습.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21일 중앙대 이사장과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12년 8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을 당시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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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박 전 이사장의 '막말 이메일' 보도 후에도 '중앙인'에는 '잘했다'는 식의 반응들이 쏟아졌다. 닉네임(이하 생략) '인***'은 "통쾌한 말씀이네요. 속이 시원합니다"라고 맞장구 치는가 하면, '아**'는 "다 필요없고 중앙대만 발전시켜 주십시요! 이사장님!"이라며 응원하기도 했다.

일부 이용자들이 자정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박 전 이사장의 발언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도덕심이 없어서 일본에 먹혔냐"며 "초등학교 때 사고방식이 대학생이 된 지금도 그대로냐"고 도리어 꾸짖는 이도 있었다. 이날 오후 갑작스럽게 박 전 이사장의 사과 입장 발표와 사퇴보도가 이어지자, '중앙인'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타깃은 이들이 평소 적대감을 표출해온 인문대 학생들에게로 향했다. 인문대 학생회는 학생총회에서 중앙대의 '구조조정 반대'를 의결하는 등 꾸준히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왔다.

'무명***'는 "인문대생은 쓰레기통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사회에서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고, 남들에게 피해만 주며, 교수고 학생이고 쓰레기들이 드글대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반복적으로 "입문충", "입문대"라는 모멸적인 용어를 썼다.

'pas***'도 "인문대생들을 팼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신이 박 전 이사장을 비난하고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한 인문대생들을 사정없이 팼다는 설정의 조롱글을 올리기도 했다. 'I***'은 "내가 이제 ㅆㅂ 인문대 X끼들이랑 이번일 잘됐다는 새X기들 사람취급 안 한다"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글이 올라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중앙인은 2013-2014 교내 청소노동자 파업 당시의 막말로 '중베(중앙인+일베)'라는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이들은 청소노동자에게 명예가 있냐고 따지는가 하면, '능력껏 살든지 북한으로 가라'고 하거나, '노동자들이라 머리가 안 좋냐'고 조롱했다. 이같은 행위는 원청인 중앙대와 청소노동자들 사이의 법적 대립은 차치하더라도, 인륜성을 상실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관련 기사: '중베', 두산의 억압 정치가 만든 '기형 커뮤니티').

취업난·대학기업화 속에서 자율성 잃고, 일베화된 대학생들

교육당국의 논리를 철저하게 내면화한 '중베' 유저들에게 학사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들은 '열패자'나 '역적'일 뿐이다. '왜 너희 같은 놈들이 존재해서, 학교의 이익(노골으로는 나의 이익)을 가로막느냐'는 논리다. 그래서 박 전 이사장이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앙인은 '적'들에 대한 비하와 '부디 우리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식의 구슬픈 절규로 채워졌다.

"진짜 재단한테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 찾아가 빌고 싶다" ― 최**
"이사장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싶다" ― 인***
"이러다 두산이 울 학교에서 손떼면 어쩌죠 수원에 A대학 꼴나는 건가요?" ― Ag***
"두산이 중앙대에서 완전히 손을 털어버리면 과연 여러분들에게 득이 있나요?" ― Ch***

한 디시인사이드 중앙대 갤러리 유저는 중앙대 본관(201관)에 "여러분 대학이나 개혁하세요 우리는 개혁으로 초일류가 될꺼니까요!"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게시하고,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이는 지난달 25일, 타대학 학생 대표자들이 중앙대를 방문해 교육부 정책과 중앙대 구조조정 계획안을 비판하고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중앙대 학생들을 응원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이루어진 일이다.
 한 디시인사이드 중앙대 갤러리 유저는 중앙대 본관(201관)에 "여러분 대학이나 개혁하세요 우리는 개혁으로 초일류가 될꺼니까요!"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게시하고,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이는 지난달 25일, 타대학 학생 대표자들이 중앙대를 방문해 교육부 정책과 중앙대 구조조정 계획안을 비판하고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중앙대 학생들을 응원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이루어진 일이다.
ⓒ 디시인사이드 중앙대 갤러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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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찬성 여론은 온라인 상에서만 표출되는 건 아니다. 교내에 현수막이 돌발적으로 게시되는가 하면, 반대 교수·학생들의 명단을 확보해 공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중대생인 A씨는 과거 중앙인에서 왕성히 활동했지만, 최근 맹목적인 흐름에 실망해 더는 접속하지 않는다. 그는 "과거엔 학교에 대해 비판할 점은 하는 공론장의 모습이 조금 남아있었는데, 어느 순간 '두느님(두산)'과 학교는 무조건 옳다는 분위기가 됐다"고 한탄했다. A씨는 "갈등 유발과 모욕 패턴이 일베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며 "마치 전라도를 홍어라 싸잡아 욕하는 일베처럼, 반대 교수와 학생들에 대한 집단모욕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정세현 인문대 학생회장은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극단적 의견 표출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중앙인에 대한 신뢰도 없고 이용 빈도도 적기 때문에" 실제 여론과 일치하는지 회의적이라고 했다.

또 "오프라인에서 단과대 회장들이나 주변인들을 접했을 때,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반대하는 쪽이 많았다. 물론 무관심한 이들도 어느 정도 있지만 적어도 적극 찬성하며 전임 이사장 등을 옹호하는 사람은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문대만 여러 활동들에 참여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인문대 학생회 역시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고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여론몰이 식 게시물로 부정적 인식을 재생산하는 데 분노한다"고 말했다.

결국 무한경쟁 속에서, 젊은 지성들은 공론장을 상실하고 인터넷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웃는 것은 오직 기업, 기업뿐이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중앙대, #중앙대학교, #중앙인, #두산, #박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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