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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21일 중앙대 이사장과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12년 8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을 당시 모습.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21일 중앙대 이사장과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12년 8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을 당시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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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박용성(74) 중앙대 이사장이 중앙대 이사장직과 두산중공업 회장직,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에서 모두 물러났다. 이용구 총장과 보직교수 등 학교 주요 실무자 20여 명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 논란이 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이었다.

그 내용은 인신공격·기업식 대응·여론조장지시 등, 세 박자를 고루 갖춘 무소불위 권력의 끝판이어서 사회에 충격을 안겨줬다. 일각에서는 '땅콩리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초월하는, '슈퍼 갑'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학사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에 대해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쳐줄 것"이라며 인사압력을 예고하고, 반대 학생들을 "사무 착오로 학습능력이 없는 아이가 입학한 케이스"라 비하하는 것은 예사다.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를 '조두(속된 말로 새대가리)'나 화장실 비데에 수차례 빗대는가 하면, 교수들의 구조조정 찬반 투표를 앞둔 시점에서는 투표율을 낮추도록 압력을 가하도록 요구한 것도 드러났다.

또 학내 반발을 차단하고자 "그들(반대 교수들)을 악질 노조로 생각하고 대응해야" 한다며, 대기업식 노무관리를 적용하려고 했다. 학사 구조조정에 우호적 언론사를 통한 여론 조성과 댓글 작업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좌측 신문은 포기하고 나머지 언론에 중앙대 조치가 심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방안이 무엇"인지 물으라며, "언론사에 댓글 올리는 작업도 계속해달라"고도 했다.

지난달 27일, 중앙대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수석의 중앙대 특혜 혐의로 검찰 압수수색이 들어왔다. 박 전 수석은 중앙대 전 총장으로 재임한 바 있다.
 지난달 27일, 중앙대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수석의 중앙대 특혜 혐의로 검찰 압수수색이 들어왔다. 박 전 수석은 중앙대 전 총장으로 재임한 바 있다.
ⓒ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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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내용들은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중앙대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확보한 내부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한편, 교수협의회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이사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중앙대 교수협 "박용성, 조현아 능가하는 재벌 갑질").

중앙대 측은 이메일 내용들을 시인하면서도, 그 지시 성격에 대해서는 내부 관계자들끼리의 개인적 의견 교환일 뿐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총장이 이메일에 항의하기는커녕, "이사장님께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번 본부팀이 부족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 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다"고 하는 등 다소 낯부끄러운 모습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어쨌든 논란이 커지자 박 이사장은 사퇴했고, 중앙대 구성원들은 후속 조치를 고심 중이다. 만약 한국 대학교육의 역사를 기록한다면, 이 사건은 중요한 계기로 평가될 것이다. 왜냐하면 중앙대는 우리 사회에서 기업화된 대학이 어떤 모습인지,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모범사례(?)이기 때문이다.

박 전 이사장은 어떻게 이런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됐을까? 그가 지나온 길을 통해, 대학기업화의 흐름을 짚어보자.

기업, 대학을 접수하고 길들이다

중앙대학교 전경
 중앙대학교 전경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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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대화를 해 보면 두산을 대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교직원도 마찬가지고요. 솔직히 말하면 자본주의 논리가 어디 가나 통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 <월간조선> 2008년 11월 인터뷰 중

2008년 5월, 두산이 1200억 원을 출연해 중앙대를 인수했다.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이 취임했고, 이사회는 '두산맨' 위주로 채워졌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학내 구성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쾌재를 불렀다. 구 재단의 투자가 부족해 '천원재단'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장기간 학교가 재정난에 시달렸고, 성장이 침체되다 못해 역주행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기업 총수가 "이름만 빼고 다 바꾼다(박용성 전 이사장 취임사)"며 강림해, 남다른 교육철학과 개혁의지를 보이니 뭔가 떡고물이라도 떨어뜨려 주리라는 묘한 경외감이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남달라도 너무 남달랐던 것일까? 그가 이식하려던 것은 대학 문화와 이질적인 기업식 요소들이었다.

2008년 가장 먼저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법인 임명제로, 교수와 직원들의 단일 호봉제를 성과급형 연봉제로 바꿨다. 회계 과목도 '필수 교양' 과목으로 커리큘럼에 자리잡았다. 그는 "기업인들에게 '애들 뽑아 놓으니 숫자는 좀 알더라'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월간조선> 2008년 11월호 인터뷰)

2010년 경쟁력을 이유로 18개 단과대를 10개로 줄이고 77개 학과를 46개로 통폐합하면서 "대학 역사상 가장 큰 실험이 될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학생을 "원자재"에 빗대기도 했다. 학과 구조조정은 글로벌 기업 경영컨설팅 업체의 자문을 받아 이루어졌다.

그의 교육철학을 요약하면 학생은 교육서비스 대상일 뿐이며, 교수는 이를 제공하는 직원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 대학은 기업이 써먹을 수 있도록 기업식 경영과 경쟁 사회에 부합하는 효율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생산해야 한다.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학과는 폐업하는 게 당연하다. 학내구성원의 과도한 주인의식과 권리주장은 대학발전에 걸림돌이다. 학교 운영의 일체 의사결정권은 법인과 이사회에 있다(결국 대학의 주인이라는 이야기다). 박 전 이사장은 인사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차차 학교 운영 전반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교육철학대로 또 기업이 원하는 체질대로, '중앙대'를 '두산대'로 변모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끝은 아니다.

기업은 자본으로 대학의 환심 사고, 대학은 일감 몰아주기로 답례

두산건설이 건립 중인 중앙대 경영경제관(310관). 규모 면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며, 비용 면에서는 1100억원에 이른다.
 두산건설이 건립 중인 중앙대 경영경제관(310관). 규모 면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며, 비용 면에서는 1100억원에 이른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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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 계열사들은 중앙대 법인에 꾸준한 기부를 해왔다. 지난 2일 대학교육연구소의 중앙대 예·결산 분석 자료에 따르면, 두산은 2009~2014년 총 1580억 원을 출연해왔다.

그리고 중앙대는 학교 건물 신·증축 공사 대부분을 두산건설과 독점 수의계약했다. 지난 몇 년간 불황으로 많은 건설사들이 구조조정과 퇴출압력을 받고 있는 상태였고, 두산건설도 자금 유동성 문제로 큰 곤란을 겪고 있었다. 그룹 계열사들이 직접 두산건설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여러모로 제약이 많기 때문에, 중앙대는 매력적인 우회로가 아닐 수 없다.

중앙도서관, 약학대학 및 R&D센터, 블루미르홀 기숙사, 중앙대병원 별관 등 대부분의 공사를 두산건설이 진행했다. 지난 2012년 두산건설은 규모 면에서는 국내 최대이며 비용면에서는 1100억 원에 달하는 '경영경제관(310관)' 신축 공사 수주를 공시했다(두산건설 매출액 약 4.6%). 주식 시장이 열리자마자 두산건설 주가는 나흘 만에 4.4%로 상승했고, 2010년에는 흑석3구역 재건축 수주를 위한 홍보에 중앙대와 중앙대병원 사례가 활용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중앙대는 "두산건설이 얻는 이윤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두산건설에서 진행한 공사는 공사비와 공사 수행에 따른 부대비용만 계산해 계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결과적으로 원가 수준으로 건물을 지어주고 있지 않냐는 말로 풀이된다.(관련 기사: 성균관대 건물은 삼성이 짓는 게 당연?)

또한 독점 수의계약 부분에 대해서, 중앙대는 학교 정관을 근거로 입찰 없이 총장 재가에 따라 업체 선정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정관에서 총장이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해놓은 것은 법령을 위반한 정관이므로, 효력이 없다"라고 말했다. 현행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제35조에 따르면, 일반 공사는 2억 원 이상일 경우 경쟁 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하도록 돼 있다.

법적 논란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윤리적 정당성이 괄호 안에 넣어지고 대학의 민주적 운영질서 자체가 양적 발전과 결과중심주의에 가려진 셈이다.

"신은 죽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대학 구조조정 계획안을 놓고 논란을 이어가고 있는 중앙대학교.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교훈 뒤로, '경영경제관'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대학 구조조정 계획안을 놓고 논란을 이어가고 있는 중앙대학교.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교훈 뒤로, '경영경제관'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 홍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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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식 '대학기업화' 신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일률적 평가지표들을 통해 기업 중심 대학을 만든다는 일각의 꾸준한 비판을 불러왔다. 일차적으로 대학의 역할은 단지 시대를 수용하는 취업학원은 아닐 뿐더러, 시대를 비판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박 전 이사장 체제 하의 자본주의·관료주의적 대학 운영체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한 반감을 살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학문과 구성원들의 다양성이 담기지 못하며, 취업 잘 되는 전공 쏠림현상과 기초학문 존속의 안전장치가 사라진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구조조정안에 대해 교수들은 일찌감치 찬반투표 참여자 92.4%가 반대임을 밝혔고, 학생들도 3000여 명이 반대 연서명이나 학생총회에 참여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의에 죽고 참에 사는" 중앙대생들의 캠퍼스 드라마).

여기에 황우여 교육부 장관 발 '산업수요 중심' 대학 구조개편(?) 정책과 더불어 그 최전선이었던 중앙대가 언론의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던 상황이었다. 그러니 막말 이메일에서 그의 본심과 추락한 대학의 위상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세간의 충격을 안겨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즉 박 전 이사장도 신이 아니라 사적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단순히 사적 감정에 휘둘렸다는 사실보다, 이를 비판하는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좀 마음을 열 줄 아는 것도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에 있진 않았을까. 그러나 어쨌든, 이것이 기업화된 대학의 적나라한 모습이며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박 전 이사장의 7년 교육철학의 흐름이다.

현재 중앙대 이사회는 남은 11명의 이사 중 상당수가 여전히 두산그룹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아들인 박용현, 박용만 이사를 비롯해, 조남석 두산엔진 부사장과 이병수 두산기계 사장도 포진돼 있다. 이용구 총장 역시 이사회에서 임명됐으며, 나머지 인사들도 직간접적으로 두산그룹과 친분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사회가 교직원 인사권, 예산 편성, 경영 전반, 새 이사의 선임 권한 등 막강한 전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상, 앞으로도 신의 자리에 또 다른 신이 앉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학 사회에서 중앙대 사례는 역사적 시사점을 가진다. '박용성 사퇴' 사건이 대학구조조정 흐름에 균열을 낼 수 있을지,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태그:#중앙대, #중앙대학교, #박용성, #두산, #대학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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