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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흥시장 아트스페이스원이 자리한 이태원 해방촌 오거리의 신흥 시장 입구 |
| ⓒ 염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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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은 밤의 도시다. 거리마다 이국적인 식당과 카페가 즐비하고 거리는 세계 각국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인다. 언제 방문해도 화려하고 세련된 곳. 이태원은 내게 그런 장소였다.
그러나 해방촌 오거리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이태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특이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세련된 가게들 사이에 자리잡은 '신흥시장'이 그곳이다. 오랜 시간 묵어 삭아버린 간판과 낙후된 건물 외벽 때문에 선뜻 들어가기 망설여진 것도 잠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전시중'이라는 작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처럼 단단하고 흰 외벽과 각종 시설물이 완벽하게 갖춰진 장소가 아니라 간판도 달려 있지 않은 허름한 건물에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는 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양이었다. 신흥시장을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전시장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건물은 비록 낡긴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특이한 구조 덕분에 정제된 공간과는 다른 매력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이 공간은 현재 미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서울시청의 지원 아래 신흥시장의 버려진 건물을 전시에 적합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아트스페이스원(Art Space One)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미술관처럼 국가나 기업의 후원을 받거나 작품 판매를 주 목적으로 하는 상업화랑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기본적으로 비영리 독립 공간으로 운영되며, 전시를 위한 모든 비용은 작가들의 사비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트스페이스원이 미술관, 갤러리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려는 공격적인 취지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곳은 작가들이 이익 창출과 같은 상업적 이해관계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전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비영리 독립 공간을 추구하는 아트스페이스원
아트스페이스원의 공간적 성격을 보다 넓은 범위에서 정의하자면 1999년에 출현한 대안공간 루프, 대안공간 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대안공간들은 근 15년 동안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미술계에 신선한 흐름을 제공하고 경직된 한국 미술의 문맥을 다채롭게 하는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아트스페이스원은 1세대 대안공간의 맥을 이어가려는 작가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끊임없는 시도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트스페이스원에서 새로 기획한 전시는 4월 25일부터 5월 9일까지 진행되는 정두이, 이영주 작가의 2인전 <두 개의 방>이다. 전시는 2층의 공간 하나와 옥상의 작은 방 한편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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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주 작가의 <풍화작용> 아트 스페이스 원 2층에서 이영주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
| ⓒ 염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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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페이스원 2층의 두 번째 방에서 열리는 <풍화작용>은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신흥시장의 공간, 그리고 타인과 나와의 관계에 관한 이영주 작가의 성찰로부터 나온 작업이다.
작가는 이제는 그 용도가 사라졌지만 한때는 활발한 거래와 소통의 장이었던 신흥시장의 의미, 그리고 신흥시장에서 삶의 일부를 보냈던 사람들의 인연을 생각하며 '한번 스쳐갈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면, 공중화장실의 비누 같은 인연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작업했다.
우리는 매 순간 사이에 많은 이들과 인연을 맺고 수많은 타인과 조우하지만 그 의미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영주 작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을 관람한 뒤 바스켓에 담겨 있는 물로 손을 씻는 경험으로 타인과의 짧은 만남과 이 순간을 특별한 경험으로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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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두이 작가의 작업을 볼 수 있는 옥상의 방 정두이 작가의 <꿈은 그대로 남겨졌다>가 전시되고 있는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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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은 그대로 남겨졌다> 정두이 작가의 작업. 관객은 암실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방에 들어가 작가가 직접 쓴 텍스트를 읽을 수 있으며, 그 과정 자체로 작품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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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이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는 아트스페이스원 옥상의 첫 번째 방에는 작은 의자와 노란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관객은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에 홀로 들어가 작가의 텍스트를 읽게 된다. 작가의 경험이 담긴 텍스트는 순간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되고, 관객은 작가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아트스페이스원, 누군가가 살던 방과 같은 느낌" 정두이, 이영주 작가를 직접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신흥시장 내부의 스페이스원은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과 성격이 다른 대안공간입니다. 스페이스원을 전시 공간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이영주 작가 : "우선 전시장을 찾으러 오는길, 전시장을 둘러싼 공간, 그리고 전시장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버려진 공간을 이용해서 전시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경우가 특히 최근에 한국에서 많이 생기고 있는데, 대규모의 것들도 있지만 스페이스 원은 일단 크기에서 누군가가 살던 방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자주 가던 금호동의 공간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 그 친밀함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 정두이 작가님, 작업 과정 자체가 결과를 위한 과정의 일부가 아니라 작품의 최종적인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관람객의 일시적인 경험과 느낌이 곧 작품의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통해 자신과 관객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정두이 : "경험이 갖고 있는 한계란 재밌는 요소입니다. 한계란 삶 안에서 여지없이 주어집니다. 다른 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 한계는 개인적인 부분일 수 있고, 특정한 규칙이나 문화처럼 사회적으로 정해있는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한계점을 실험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제 작업이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제 작업을 경험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영주 작가님, '풍화작용'은 본래의 기능을 잃은 신흥시장에 관한 서사를 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이영주 : "제가 보여주는 작업이 특별히 사회 비판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이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여기 신흥시장이라는 공간을 여러번 오가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분명하죠. 또 실제로 이곳 시장 사람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곤란도 조금이나마 엿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신흥시장이라는 그 기능성을 잃어버린 공간이 외부 사람들, 그것이 정부일 수도 있고, 전시공간을 방문하는 관객일 수도 있고, 여기서 전시를 하게 된 저 자신일 수도 있는, 이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변형되어가는 모습에 대한 상상이 가미된 관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이 제 작업으로 손을 닦으면서 조금이나마 이 장소에 대해 그리고 미술 작품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에 대해 뭔가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두 개의 방>을 전시 타이틀로 정하신 이유를 간략하게 말씀해주세요.이영주 :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스페이스 원의 공간이 누군가의 방 혹은 집을 연상시키는 점이 타이틀을 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미술계의 문맥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지금, 대안공간의 탄생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한국의 상업 공간들이 관람료, 작품 판매를 주요 수입원으로 삼고 있는 반면 대안공간은 재정적 수입원이 불확실하거나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대안공간은 상업적 이해관계에 비교적 덜 좌우되는 공간이기에 작가가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여 독창적인 젊은 작가들의 전시공간으로 제공되어 왔다.
또한 미술계로 진출하고자 하는 작가 지망생들과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의 수에 비해 공간적 인프라가 빈약하고 미술계 인력 채용 문제가 계속해서 도마에 오르는 한국의 미술시장에서 대안공간에 대한 요구와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시도가 요구되고 있는 미술계의 대안을, 아트 스페이스 원을 비롯한 새로운 대안공간에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아트 스페이스 원 홈페이지 링크
www.artspaceon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