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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4일 저녁 무렵, 동네 채소가게에 잠시 들렀습니다. 작은 봉지에 채소들을 조금씩 담아 파는 이 가게에 오후 너다섯 시께 가면 싱싱한 채소들을 1000~2000원에 두세 봉지씩 살 수 있습니다. 사온다기보다 얻어온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것 같은 이 가게의 단점이라면 조금 늦게 가면 사고 싶은 채소가 다 팔려 구경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24일에는 한 봉지에 1000원 하는 민들레나물을 세 봉지에 1000원에 샀습니다. "아따, 인심 썼다, 남아 있는 세 봉지 천 원!"이라고 외치는 아줌마 목소리를 제일 먼저 듣는 행운을 거머쥐었기 때문이지요.

"세 봉지에 천 원이에요?"

그저 천 원에 무려 세 봉지라는 말만 듣고 혹해서 사긴 했지만, 문제는 민들레 나물을 한 번도 요리해본 적이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손수 담그신 매실액을 주시며 나물을 무칠때 고추장과 이것(매실 액기스)만 넣으면 새콤달콤 맛이 나니 해보라던 시어머님의 말씀이 생각 나 자신감을 갖고 민들레나물을 샀습니다. 집에 와서 하나하나 다듬고 있는데 큰 아이가 다가와 묻습니다.

"어, 이거 민들레 나물이네."
"응, 너 민들레도 나물로 먹는다는 거 알아? 그냥 민들레 홀씨 부는 거만 알지?"

그러자 아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합니다.

"엄마, 나 민들레 나물 캐봤거든요. 1학년 때 돌봄선생님(아이를 돌봐주시던 이모님)이랑 있을때, 아파트 뒤쪽에서 캐봤어. 그날 민들레 캔다고 공부도 안하고 얼마나 좋았는데. 비도 조금 내려서 정말 시원했고."

돌봄선생님이랑 비오는 날 나물을 캤다고?

'오, 그래? 돌봄선생님이 비오는 날 널 데리고 나물을 캐러 다니셨어?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니? 감기라도 걸렸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생각하며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그땐 왜 말을 안 했니?"

"그때 말했으면 엄마가 화냈을 지도 모르잖아. 감기 걸리는 데 뭐하는 거냐고. 나 사실은 돌봄선생님이랑 놀이터에서만 논 게 아니라 민들레 나물도 뜯고, 대추도 따고, 도토리도 땄는 걸. 대추 따는 데 돌봄선생님이 신발로 뻥 차올려서 저쪽으로 넘어갔었어. 얼마나 웃겼는데. 아 그때가 정말 좋았는데."

아이는 나물뜯기 외에도 돌봄선생님과의 추억을 주르륵 읊어댑니다. 계절에 맞춰 이것저것 참 많이도 했더군요. 엄마는 그저 종이접기를 잘하시는 돌봄선생님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아이가 말한 것 말고도 저 몰래 달콤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신이 나서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제야 '아이 돌봐주시는 분이 엄마 몰래 아이를 데리고 본인 일만 보셨나 보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한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할머니 다음으로 좋다는 돌봄선생님

시댁에 맡겼던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서 연고도 없는 대전이란 도시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막막하기만 할 때, 돌봄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큰아이는 다섯 살, 작은 아이는 세 살 되던 해였지요.

호칭도 '이모님'이라 할지 '아주머니'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그분은 그냥 돌봐주는 사람이고 아이들이 '선생님'으로 부르면 더 좋을것 같으니까 '돌봄선생님'이라고 부르라며 시원시원하게 말했습니다. 워낙 깔끔한 성격이신 데다 먼지 알레르기가 있어 아이들에게도 이것저것 잔소리를 하셔서 처음에는 이분께 맡겨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한 달 두 달 지나니 정이 들었습니다. 돌봄선생님은 4년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신 분, 아니 키워주신 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을 돌봐주시면서 엄마인 저보다도 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비오는 날 나가 뛰어다니시질 않나, 또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 받아쓰기 연습시키신다고 본인도 똑같이 아이가 부르는 받아쓰기 시험을 매주 치르기도 했습니다. 돌봄선생님 덕분에 전 주말 부부를 하면서도 야근 많은 회사에서 버티고 아이들을 키우고, 또 대학원까지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돌봄 선생님 얘기가 나온 김에 이야기를 하나 더 하지요. 24일 저녁, 아이가 한창 재미를 붙였던 아이클래이로 만들기 동영상을 찍어준다며 휴대전화를 들고 몇십 분간 촬영까지 해주셨던 돌봄선생님의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티격태격 아이와 말을 주고 받으면서 웃는 소리, 그리고 가끔씩 오가시면서 카메라에 찍힌 모습이 영락없는 할머니와 손녀의 모습이었습니다. 돌봄선생님은 젊은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딱딱한 교육 말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배울 수 있는 생생한 교육을 자연스럽게 많이 행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있는 지금도 자주 돌봄선생님을 그리워하곤 합니다.

일하면서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던 그때는 엄마가 돌봐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불안감이 너무도 컸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쩔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아이가 엄마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 있어서 엄마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알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25일 아침, 도서관 가는 길. 아이가 길가에 핀 노란 민들레꽃을 보며 외칩니다.

노란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 민들레 노란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 dong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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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꽃이 피어서는 안 되겠다. 민들레 나물은 꽃이 피기 전 야들야들하고 싱싱한 것이어야 하거든!"

돌봄선생님의 '민들레 나물 뜯기' 기준이었나 봅니다. 그 기준엔 나물이 될 수 없는 민들레이긴 하지만 아이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한 저 민들레, 제겐 그 어느 봄의 민들레보다도 예뻐 보입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민들레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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