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의란 유니콘이에요. 책에나 동화에는 많이 나오죠. 하지만 나는 본 적이 없어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국어사전이 '정의'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진리'는 무엇이며, '올바른 도리'는 무슨 의미일까. 이 또한 쉽게 정의하기 어렵다. 각양각색으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혹자에게 정의란 환상이다. 한 취업준비생은 "정의란 유니콘"이라고 말했다. 정의가 책과 동화에만 가득할 뿐이지 현실에선 볼 수 없다는 의미이다.

어떤 사람은 정의를 간절히 원한다. 누군가는 정의가 거추장스럽다고 한다. 세상에 정의란 없다고 비관하는 사람도 있다. 정의(正義)의 정의(定義)가 저마다 다른 세상이다. 연극 <정의란 무엇인가>는 혼란스러우면서도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정의의 의미를 묻는다.

우리의 이야기로 만든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유니콘이에요. 책이나 동화에는 많이 나오죠. 하지만 전 본 적이 없어요..." 극단 C바이러스의 연극 <정의란 무엇인가> 2015.05.12~17 노을 소극장. 현대극페스티벌 참가작.
 "정의란 유니콘이에요. 책이나 동화에는 많이 나오죠. 하지만 전 본 적이 없어요..." 극단 C바이러스의 연극 <정의란 무엇인가> 2015.05.12~17 노을 소극장. 현대극페스티벌 참가작.
ⓒ 극단 C바이러스

관련사진보기


<정의란 무엇인가>는 집단창작극이다. 한 명의 작가가 쓴 작품이 아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배우와 스태프가 각자 경험한 정의를 이야기로 풀어냈다. 일반적인 연극의 서사 구조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정의에 관한 아홉 가지 에피소드의 몽타주들이 펼쳐진다.

제목을 언뜻 보면 왠지 거창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느낌이다. '정의'를 갈구하는 목소리가 가득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정의란 무엇인가>의 이야기는 소소하고 일상적이다. 극중 이야기는 모두 실화다. 배우와 스태프가 직접 보고 겪은 이야기다. 정의라는 거대한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극이 만들어졌다. 에피소드들은 가정, 직장, 군대, 백화점 등 일상이 배경이다.

극의 연출인 이현정씨는 26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처음엔 정의와 가볍게 놀아보고 싶었다"라며 창작 배경을 설명했다. 이씨는 "정의라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하나의 구조 속에 갇혀있을 수 없었다"며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정의는 개개인의 경험적인 고백이었고, 결국 모든 배우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야기꾼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작품은 특정 장르의 틀에 갇히지 않았다. 연극적 대사와 연출은 물론 도발적인 랩과 노래, 마임과 움직임으로 발랄한 무대를 꾸민다. 극중엔 시민들도 함께 등장한다. 63인의 시민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자신만의 답을 풀어낸 영상을 연극과 함께 버무린다. 기사 첫머리에 언급한 "정의란 유니콘"이라는 말은 C바이러스가 만난 시민 중 한 사람에게서 나온 대답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의의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다. 주변의 흔한 이야기를 통해 질문을 던질 뿐이다. 아홉 개의 에피소드와 여러 형식이 어우러져 있어 자칫 복잡할 수 있는 구성을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 정리해준다. "정의란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C바이러스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정의란 없다. 대한민국의 정의는 거의 죽었다고 본다. 1년이 지나도 유가족이 길바닥에 나앉아 있는 것은 그만큼 국민이 정의롭게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나만의 일이 아닌 모두의 일이다. 모두가 나서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정의로운 바이러스를 내뿜는 극단 "우는 자와 함께 울겠다"

<정의란 무엇인가> 촛불시위 장면. 에피소드 중 배우들이 촛불을 켜고 한미 FTA반대,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 세월호 진상규명 등 각자의 요구를 부르짖는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모두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잊혀지는 이슈와 사람들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촛불시위 장면. 에피소드 중 배우들이 촛불을 켜고 한미 FTA반대,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 세월호 진상규명 등 각자의 요구를 부르짖는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모두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잊혀지는 이슈와 사람들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 극단 C바이러스

관련사진보기


"<정의란 무엇인가>는 세월호 이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준비한 공연이다."

C바이러스가 이번 작품을 준비한 이유다. 정의를 묻는 극단의 이력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작년 10월에는 연극 <민중의 적: 2014>를 올렸다. 헨릭 입센의 원작을 밀양 송전탑 이야기로 각색한 작품이다(관련 기사: 밀양 할매 울린 '돌직구' 연극... "가슴에 박힌다").

<민중의 적: 2014>의 작가이자 연출이었던 이문원(50)씨는 C바이러스의 대표다. 이 대표는 세월호 참사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세월호 이후로는 잘못된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서 이 대표는 "이것이 연극인으로서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에서 정의를 주제로 꼽은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며 "정의의 터가 무너진 시대에 살면서 연극인으로서 이 문제를 관객과 자신에게 묻고 싶었다"고 밝혔다.

배우 김정석(36)씨는 C바이러스의 작품에 연이어 참여했다. 김씨는 26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세월호 참사의 충격을 벗어나지 못했던 작년 5월 <민중의 적: 2014>에 합류했다"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엇 하나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가 다시 모인 이유"라고 말했다. 장선(26)씨 또한 <민중의 적: 2014>에 이어 이번 작품에 참여한 배우다. 장씨는 26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그 시대에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며 "두 작품이 하는 이야기가 필요한 시대라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문원 대표와 이현정 연출은 동료이자 부부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극단 이름의 의미 또한 약자를 향한다. 'C바이러스'에서 'C'는 'Compassion'(연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의미한다. 약자의 이야기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약한 자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 극단의 미션"이라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극단 하나쯤 있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문원 대표는 올 하반기에 <민중의 적: 2015>으로 약자의 이야기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 대표와 극단의 꾸준한 움직임은 예술의 힘을 확신했기에 가능했다. 이 대표는 이번 공연의 기획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그리고 그 변화는 영혼으로부터 일어나는 작은 파문,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들은 영혼의 작은 파문에 어떻게 답했을까? 이현정 연출은 '연출의 글' 말미에 이에 대한 자신의 답을 이렇게 적었다.

"정의란 잊지 않는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한 연극 <정의란 무엇인가>는 오는 5월 12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 노을 소극장 무대에 올려진다. 하나의 질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이번 작품은 현대극페스티벌 참가작이기도 하다. '미에로 화이바'와 <오마이뉴스>가 후원한다. 공연 문의는 극단 C바이러스(010-6643-8680)와 인터파크에서 할 수 있다.


태그:#정의란 무엇인가, #극단C바이러스, #노을소극장, #현대극 페스티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