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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신성한 사원에서 잠을 자다니….'

고즈넉한 절간 대웅전에 가부좌를 튼 채로 지긋하게 앞을 응시하고 있는 근엄한 불상에 익숙한 내게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누워있는 거대한 불상은 무슨 이유인지 낯설고 신기했다. 더군다나 신성해야 할 그곳에서 자리를 깔고 평화롭게 누워 자는 사람들이라니….

어쩌면 여행의 즐거움이란 이러한 생경한 모습이 주는 새로움일 텐데, 미얀마 여행 내내 늘 이러한 파격이 놀라웠다.

눈 화장을 한 채 누워 있는 붓다

길이가 무려 68.85m이고 높이는 17m나 되는 미얀마에서 두번째로 큰 거대한 와불상이다.
▲ 차욱타지 와불상1 길이가 무려 68.85m이고 높이는 17m나 되는 미얀마에서 두번째로 큰 거대한 와불상이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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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여행의 마지막날 쉐다곤 파고다(pagoda)와 마하시명상센타를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거대한 불상이 누워있는 차욱타지(Chatuk Htat Gyi) 파고다였다. 이곳에 누워있는 불상은 길이가 무려 68.85m이고 높이는 17m나 되는 거대한 와불로 미얀마에서 두번째로 큰 와불상이라고 한다.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옆으로 누워 있는 거대한 모습과 얼굴에 곱게 눈화장(?)까지 한 화려한 불상의 모습이 낯설었다. 우리나라 불상들을 보면 지긋하게 감은 듯한 눈매와 입가에 머금은 은은한 미소로 인해 왠지 근엄해 보이는데, 짚은 눈썹에 큰 눈망울 그리고 붉게 칠해진 입술이 어여쁜 여인네를 보는 것 같아 신선했다.

또한 신체비율보다 더 크게 만들어진 발바닥에는 여러 가지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불교의 세계관인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를 뜻하는 108법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곱게 화장(?)한 얼굴이 이채롭다
▲ 차욱타지 와불상2 곱게 화장(?)한 얼굴이 이채롭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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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은 속눈썹을 보라
▲ 차욱타지 와불상3 짚은 속눈썹을 보라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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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에는 108법수 문양이 새겨져 있다.
▲ 와불상 발바닥 발바닥에는 108법수 문양이 새겨져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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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을 기다리는 와불

사실 우리나라에도 와불상이 있기는 하다. 전남 화순 운주사에는 길이 20여 미터의 누워 있는 불상이 있다. 투박하게 바위에 새겨진 운주사 와불에 비해 미얀마 차욱타지 파고다의 와불은 훨씬 자연스럽고 웅장함이 사람을 압도했다.

미얀마에서는 차욱타지 와불 말고도 종종 와불들을 볼 수 있었는데, 불교에 문외한인 나는 왜 저렇게 붓다가 누워 있는지 잘 모른다. 다만 운주사 와불에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전설에 빗대어 상상의 나래를 한번 펼쳐 보았을 뿐이다.

고려시대 도선국사는 하룻날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하는 한 동자승이 새벽을 알리는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가버렸단다. 결국 운주사 와불은 일어서지 못한 채 와불로 남게 됐다고 한다.

이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 땅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전해온다. 그렇다면 미얀마 와불들도 일어 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 신성한 사원에 누워 자다니
▲ 와불 뒤의 미얀마 사람들 아니 신성한 사원에 누워 자다니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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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와 함께 사는 미얀마 사람들

와불과 함께 불상 주변에 같이 누워있는 미얀마인들을 보니 미얀마 와불은 우리나라 불상들처럼 숭배의 대상이라기보다 친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불 등 뒤에 누워 있는 미얀마 사람들은 와불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처럼 남들보다 더 잘살아야 하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고, 남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평생을 달려야 하는 삶과 비교돼 여러 생각을 갖게 했다.

미얀마 사람들이 추구하는 불교인 테라바다 불교(Teravada, 상좌부불교)는 스스로 수행정진하며 날마다 덕을 쌓음으로써 자신의 수행단계를 조금이라도 높은 단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사고가 기본이 돼 미얀마 사람들은 매일매일 덕을 쌓기 위해 노력 한다.

남들을 돕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수행의 기본이고 그중 최고의 덕 쌓기는 바로 자신의 이름으로 파고다를 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돈이 없어 자신의 이름으로 파고다를 세우지 못하더라도 파고다[파야(paya) 또는 제디(zedi)라고도 부른다] 건립에 일손이라도 더해 자신의 덕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미얀마 여행 중 파고다를 짓거나 벽에 색칠을 하는 일꾼들은 볼 수 있었는데, 현지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우리처럼 일당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노동력을 보시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처럼 미얀마 사람들에게 파고다는 우리의 사찰이나 성당 같이 기도하고 축원하는 공간뿐만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휴일이면 가족들과 돗자리와 먹을 것을 싸가지고 파고다로 간다. 미얀마 여행 중에 어느 파고다를 가든 파고다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가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파고다는 종교적인 상징물을 넘어 자신이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인 셈이다.

미얀마인들에게 붓다란(만달레에 근교에서 찍은 사진)
▲ 누가 붓다인가? 미얀마인들에게 붓다란(만달레에 근교에서 찍은 사진)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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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다 건립이나 보수에 노동력이라도 보시한다.
▲ 미얀마 사람들의 덕 쌓기 파고다 건립이나 보수에 노동력이라도 보시한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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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새날'은 현재 진행형

수천 년 붓다와 함께 숨어있던 미얀마에도 최근 개방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세계 흐름을 따라가고 있으며 여러 외국 자본과 함께 들어오는 최신 문물의 영향을 받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여행자의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꼭꼭 숨겨두고 싶은 여행지 한 곳을 잃는 것 같아 아쉽지만 큰 흐름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양곤의 마지막 날 차욱타지 와불 등뒤에 서서 누워 있는 붓다의 뒤통수를 보며 뜬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저 붓다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운주사 와불의 전설처럼 급변하는 미얀마의 새날을 준비하며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아는가? 머지 않아 외신을 통해 실제로 거대한 와불이 일어섰다는 기적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될는지….

붓다의 나라 미얀마의 '새날'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얀마의 붓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잇을까?
▲ 와불 등뒤에 서다 미얀마의 붓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잇을까?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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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미얀마어 표기는 현지어 발음 중심으로 했으며 일부는 통상적인 표기법에 따랏습니다. 이 여행기는 불교전문가 시각이 아니라 불교에 문외한인 여행자의 시각으로 썼습니다.



태그:#미얀마, #붓다의 나라, #차욱타지, #땅예친미얀마, #와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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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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