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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24일 오후 11시 18분]

[장면 1] 지난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봉은사역 출구 앞. 기자가 다가가 무슨 서명이냐고 묻자, 반가운 표정의 서명운동원은 "아, 글쎄. 한전 부지 개발에 따른 이익금이 정작 강남구에는 한 푼도 안 쓰이고 몽땅 잠실운동장으로 간다는 거예요"라며 "이걸 바로잡기 위한 것이니 서명 좀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강남구 산하단체 소속이라던 그는 이번 주 안으로 25만 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니 다른 가족의 서명도 같이 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명운동은 거리뿐만 아니라 구청, 동사무소, 어린이집,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등 강남구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장면 2] "오늘 평소 다니는 국선도 도장에 가니 무슨 서명을 받더라고요. 할머니들은 내용을 보지도 않고 서명하던데, 나는 꺼림칙해서 '내용을 알고 나서 하겠다'고 하고 그냥 왔어요."

자신을 강남에 사는 주민이라고 밝힌 임아무개(57)는 한전 부지 개발 이익금을 강남구에만 써야 한다는 서명 움직임에 불쾌감을 나타냈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전화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강남구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지역이기주의 아니냐"며 "나도 강남 주민이지만 이런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려 2조 원? 어떻게 나왔나

강남구 거리 곳곳에 한전 부지 공공기여금을 강남구에 우선 사용할 것을 요구하는 펼침막이 걸려있다.
 강남구 거리 곳곳에 한전 부지 공공기여금을 강남구에 우선 사용할 것을 요구하는 펼침막이 걸려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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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가 시끌시끌하다. 거리 곳곳에 붉은 글씨의 플래카드가 나붙고, 구청, 지하철 역사 출입구 등에는 서명대가 설치되어 운동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서명을 받기 위해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열심히 설득하고 나섰다. 강남구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해 9월 현대차그룹은 10조5000억 원이라는 거액으로 한전 부지를 낙찰 받아 큰 화제를 낳았다. 그러나 현대차 그룹이 이곳에 당초 계획 대로 115층 규모의 사옥을 짓기 위해서는 토지용도를 기존의 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해야 한다. 원래 용도 대로라면 용적률을 최대 250%밖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서울시가 용도변경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현대차 그룹은 용도변경이라는 '특혜'를 받는 대가로 부지 감정가의 40%가량을 공공기여금 명목으로 서울시에 내야 한다. 작년 감정가로 산정한 공공기여금은 1조3천여억 원이지만, 앞으로 있을 서울시-현대차 협상이 종료되는 시점으로 재감정하면 무려 2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때문에 2조 원이나 되는 거액을 누가 써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강남구] "잠실에만 사용할까 우려... 강남구에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강남구민들이 지난 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현대차그룹이 매입한 한국전력 부지 개발과 관련 지구단위계획구역 확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강남구민들이 지난 8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현대차그룹이 매입한 한국전력 부지 개발과 관련 지구단위계획구역 확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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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지난 8일 강남구 삼성동과 대치동 일대 '종합무역센터 주변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을 송파구 관할 잠실운동장까지 확대하는 계획(안)을 가결했다. 이로써 당초 코엑스 일대였던 지구단위계획구역이 탄천 일대와 잠실종합운동장까지 확대됐다. 국토법 시행령에 따르면 공공기여금은 지구단위계획구역이 소속된 자치구까지 쓸 수 있게 돼 있어 송파구까지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서울시는 "국제교류복합지구를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는 입장이다.

강남구의 반발은 여기서 비롯된다. 한전 부지가 강남구에 있는 만큼 공공기여금은 당연히 강남구에 우선적으로 쓰여야 하는데 서울시가 시 소유인 잠실운동장에만 쓰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최주학 강남구 도시계획과장은 "대형 건물이 들어섬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교통-주차문제, 환경문제 등의 피해 보상과 대책을 위해 강남구에 우선적으로 쓰이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런 다음에 남은 돈의 사용처를 논의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명운동을 주도적으로 벌이고 있는 강남구 범구민비상대책위원회도 시민들을 상대로 배포한 호소문에서 "서울시는 우리 구민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공공기여금을 통째로 가져가 잠실운동장 부지를 재조성하는데 쓰려 한다"며 "공공기여금은 초고층건물로 발생되는 교통대란 및 환경피해를 최우선적으로 해소시키는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이어 "(공공기여금은) 봉은사 공원부지 전체, 봉은중학교 주변 제1종 전용주거지역, 삼릉공원동측구역을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확장하여 한전 부지와 연계한 계획적 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밤고개로 확장, 아셈로 지하주차장 조성 등 강남구 관내의 취약한 기반시설 보완을 위해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지난 22일 한전 부지 현장에서 2000여 명이 모인 지구단위 확장 반대집회를 열기도 했다.

[서울시] "잠실에만 쓴다고 한 적 없다... 종합계획에 맞게 사용할 것"

서울시는 이달초 강남구 삼성동, 대치동 일대 ‘종합무역센터주변지구’ 제1종지구단위계획’을 잠실종합운동장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이달초 강남구 삼성동, 대치동 일대 ‘종합무역센터주변지구’ 제1종지구단위계획’을 잠실종합운동장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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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서울시의 입장은 다르다. 한전 부지 개발은 서울시가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를 포함해 추진하고 있는 국제교류복합지구 종합계획의 일환이므로 다른 구(송파구)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용학 서울시 동남권공공개발추진반장은 "한전 부지에서 나오는 공공기여금을 잠실운동장에만 쓰겠다고 한 적이 없다"며 "관련 법령상 공공기여금은 지구 단위에 속하는 자치구에 쓰게 돼 있는 만큼 한전 부지 개발로 인해 피해를 보는 강남구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데에도 당연히 쓰일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김 반장은 "아직 현대차와 협상이 시작되지도 않은 만큼 공공기여금이 얼마나 들어올지 여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용도를 가지고 싸우는 게 너무 답답하다"며 "얼마든지 대화로 해결할 용의가 있는 만큼 강남구는 어느 부분에 공공기여금을 사용할 것인지 여부를 알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에서도 서울시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감시팀 부장은 "한전 부지가 개발되면 지가상승으로 강남구가 얻을 이익이 이미 막대하다"며 "공공기여금마저 강남구가 모두 쓰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강남구가 반발한 데에는 관련 논의에서 자신들이 배제됐다는 소외감도 한몫 했다. 최주학 강남구 도시계획과장은 "서울시가 지난 3월 사전협상운영지침을 바꿔서 도시계획 사전협상 협상단에 구청 간부가 참여할 수 있는 조항을 삭제해버렸다"며 시가 강남구청을 협상에서 배제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협상 당사자들의 지위가 명확하지 않아 손을 본 것인데, 공교롭게도 한전 부지 협상과 시기가 겹친 것뿐"이라고 말했다.

"강남·송파 외 다른 자치구에서도 쓰게 하자"

한편,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공기여금을 해당 자치구외 다른 자치구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현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아래 국토법) 시행령 제24조(지구단위계획의 수립)의 2항 13~14호에는 기업 등에서 제공하는 공공기여의 경우 지구단위계획 구역을 관할하는 시·군·구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한전 부지 관련 공공기여금은 지구단위개발구역이 강남구와 송파구에 걸쳐있는 만큼 강남구와 송파구에만 쓸 수 있는 것이다.

김기대 서울시의원(성동3)은 이에 대해 "강남구는 최근 제2롯데에 이어 현대차 사옥도 들어오게 됐는데, 공공기여금까지 독식한다는 건 지나친 특혜 아닌가"라고 묻고 "서울시가 전체적으로 균형 발전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24일 자신과 새정치민주연합, 새누리당 의원 38명 명의로 '서울특별시의회 지역균형발전 지원 특별위원회 구성안'을 공동발의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공공기여금, #한전 부지, #강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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