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헬머니>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정순'(김수미)은 몰래 처가살이하는 첫째 아들 집에 식모로 들어가는가 하면 '욕대회'에 출전하며 우승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간다.

▲ 영화 <헬머니>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정순'(김수미)은 몰래 처가살이하는 첫째 아들 집에 식모로 들어가는가 하면 '욕대회'에 출전하며 우승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간다. ⓒ NEW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은 '욕'을 하시나요? 잘 하시나요? 물론 저도 욕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리 심한 욕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욕'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욕'을 하는 걸까요?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참 다양한 '욕 문화'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사용하는 욕은 잘 모르지만 어릴 적 본 반공영화를 통해 접한 기억이 있습니다. 낯설지만 듣기 싫진 않더군요. 남한에서는 대표적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욕으로 구분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헬머니>를 통해 보는 대한민국의 '욕'​

경상도는 성조가 강하게 들어가 목소리가 크고 거칠며 듣는 이로 하여금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반대로 전라도의 욕은 말을 길게 늘이며 흐리다가 어느 부분에서 귀가 번뜩이는 단어가 요동을 칩니다. 보통 우리는 전라도 욕을 '차지다'라고 표현을 하죠. 한동안 TV에서는 경상도 사람들의 사투리가 대세를 이루다가 언제부터인가는 전라도와 충청도 사투리가 주를 이루더라고요. 욕도 마찬가지구요.

영화 <헬머니>의 주인공인 '이정순'(김수미)은 충청도 서천 사람입니다. 같은 충청도지만 논산이나 대전, 공주 쪽보다 당진, 서천, 서산 등의 사투리는 성조가 있으며 말이 상당히 느립니다. 그리고 끝말을 올리다가 길게 끌고가는 것은 정겹기만 합니다.

저도 충청도 금산 사람이지만 안면도나 태안 등 해안가를 가면 우리와 같은 듯 다른 사투리에 웃음을 짓고 합니다. 대전이나 금산 사투리보다 더 시골스런 맛이 나기 때문입니다. 사투리는 지역의 특색을 고스란히 드러낸 언어습관이며 사람들의 습성을 포함하고 있죠. 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색이 그대로 드러난 욕은 동물이나 사람의 신체 부위 등을 비유로 하여 기막힌 단어의 조합을 만들어냅니다. 욕은 지금도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영화 <헬머니>는 이런 '욕'을 주제로 하여 '김수미'라는 대한민국 대표 '욕쟁이 할머니'를 출연시키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영화 제목조차 지옥이라는 뜻의 '헬(HELL)'과 할머니의 '머니'를 합성어로 사용할까요? 영화를 보면 '머니'는 할머니의 '머니'일 수도 있지만 돈을 지칭하는 '머니(Money)'로도 풀이할 수 있습니다.

욕! 거슬리지만 그렇다고...

영화 <헬머니> 욕을 너무 잘해 지옥(HELL)에서 온 할머니라 불리우는 김수미. 그의 욕지거리는 많은 사람들을 해방시켜준다.

▲ 영화 <헬머니> 욕을 너무 잘해 지옥(HELL)에서 온 할머니라 불리우는 김수미. 그의 욕지거리는 많은 사람들을 해방시켜준다. ⓒ NEW

욕이라는 건 분명 좋은 언어습관은 아닙니다. 고운 말 바른 말 사용을 권장하는 우리말에서 가려내야 할 단어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마치 사용자의 상황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꼭 '나쁘다'라고 선을 긋기 어려운 것 말입니다. 물론 습관적으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좋은 습관은 아니겠죠. ​

곱고 바른 우리말이 있음에도 굳이 비속어와 욕설을 섞어 사용하는 것은 어른들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기성세대들의 언어습관을 배워가기 때문입니다.

국어사전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범위는 비속어(속어), 비어, 욕설​ 등이 있겠습니다.

▲ 비속어(卑俗語) : 통속적으로 쓰는 저속한 말
▲ 비어(卑語/鄙語) : 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 대상을 낮추거나 낮잡는 뜻으로 이르는 말.
▲ 욕설(辱說) :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또는 남을 저주하는 말.

이 중에는 일부 패거리들이 사용하는 '은어'도 속한다고 봅니다. 대체적으로 평균적인 국민들이 사용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비속어(속어), 비어, 욕설, 은어 등은 우리 국어의 건전한 사용과 자라나는 아이들의 언어습관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고유 언어를 발굴, 사용을 장려하는 현재의 정책과도 반대되는 입장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비속어나 욕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어느 시대에나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위협하는 단어, 그리고 웃고 즐기기 위해 그런 말들이 사용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때론 욕이지만 듣기 좋을 때가 있습니다.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그들만 사용하는 비정상적인 언어이지만 공동체의 결속을 앞당기고 끈끈한 애정을 확인하는 도구도 되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다리뼈가 부스러져 철심을 밖고 집에서 누워 계셨습니다. 집안 살림은 제 몫이었고요. 여름방학, 저는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수련회에 참석해야 했는데 밥도 빨래도 못하는 형과 동생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2박 3일의 수련회 가는 날 아침, 솥단지에 밥과 김치찌개를 넘치도록 만들어 놓고 학교로 갔습니다. 음식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수련회 내내 아버지 걱정에 안절부절 못 했습니다. 음식은 잘 드시는지, 함부로 움직이다가 다치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드디어 수련회가 끝나고 집으로 달려가 대문을 열었습니다. 욕쟁이 우리 큰고모가 계셨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큰고모가 살림을 해주고 계셨던 거죠. 저는 그제야 긴장된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큰고모가 저에게 비빔국수를 해주셨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한마디 했죠.

"고모! 나는 큰고모가 손으로 주물럭대서 비벼주는 비빔국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지랄 말고 어서 처먹기나 해."

흐흐~ 전 그때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감사한 욕을 들었습니다. 큰고모는 욕을 하면서 항상 빙그레 웃고 계시거든요. 큰고모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그 걸쭉한 욕 한 번 더 듣고 싶네요.

화병은 욕으로 풀어야?

한국인들이 ​많이 시달리는 질병 중에 외국어로 번역하기가 힘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화병'입니다. 화병이란 가족관계나 혹은 직장, 학교 등에서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않을 때 이를 표출하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병입니다. 피곤하고 가슴이 답답하거나 불안 초조하고 짜증이 많이 나는가 하면 조울증이 동반되며 심할 경우 육체적 질병을 일으킬뿐더러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영화 <헬머니>를 보면 폭력에 가까운 욕설이 난무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도덕적 잣대는 내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일정 부분 억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습성은 내 행동을 위축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바로 '화병'이죠.

여기에서 내가 그동안 내뱉지 못 했던 저질스러운 단어들이 막힘없이 터져나옵니다. 어쩌면 이 욕지거리는 내가 그토록 내지르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습니다. 내 욕을 듣고 당황해하는 나의 직장 상사나 시어머니, 나를 괴롭히는 동료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굉장한 희열을 느낍니다. 표현하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상태는 어딘가 솟아오를 분출구를 찾고 있기 마련입니다. 욕이란 우리에게 이런 해방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대한민국의 '화병'에 특효약은 '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헬머니> '욕배틀'에서 우승한 '이정순'(김수미)는 자신의 욕을 듣고 치료받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지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 영화 <헬머니> '욕배틀'에서 우승한 '이정순'(김수미)는 자신의 욕을 듣고 치료받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지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 NEW


​영화 말미에 보면 '이정순'(김수미)이 이런 말을 합니다.

"다들 욕하지 말고 고운 말만 하고 살아. 어차피 짧은 인생, 맘대로 퍼붓고 퐁퐁 잘 싸고 살아!"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욕하지 말고 고운 말만 하고 살라면서 뒷부분에서는 맘대로 퍼붓고 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짧지 않은 인생,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해야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 삶이 너무 팍팍해 가끔은 거칠고 민망한 욕지거리를 해야 분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욕'을 통해 치료받습니다. ▲ 돈은 많지만 심각한 병에 걸려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 ▲ 남편에게 늘 맞고 무시당하며 사는 생선 장수 ▲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며 어머니를 인정하지 않는 이정순의 아들 ▲ 남몰래 짝사랑하는 여성 PD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동료 ▲ 엄마는 늘 형만 챙긴다며 불평만 하는 둘째(김정태) ▲ 사랑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못마땅해 하는 엄마 사이에서 갈등하는 딸(이태란) ▲ 학업에 치인 고3 학생 등 자아 속에 갇힌 '나'를 당당히 외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중 어디에 속할까요?

영화의 줄거리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욕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욕지거리를 권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최고의 경쟁력과 스피드를 원하는 현대 사회에서 어딘가 탈​출구가 필요합니다. 잠시 쉬었다 가더라도 절망에 힘겨워하는 이들이 시원하게 내뱉을 거친 욕설이 있다는 건 '정신적 배설'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합니다.

헬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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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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