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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교육이 혼란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공교육 혁신 정책도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6·4 지방선거 당시 고승덕 전 후보에게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것이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죄로 인정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에게 당선 무효형인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관련 기사 : 조희연, 1심 '벌금 500만원'... 대법 확정시 교육감직 상실).

앞서 1심 유죄 판결 이후 힘을 잃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처럼, 조희연 교육감도 정책 추진력을 상당 부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조희연 교육감이 당선된 후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 등을 둘러싸고 진보·보수 진영의 갈등이 불거졌다. 이후 조 교육감이 개혁 속도를 조절하면서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번 판결 결과를 두고 보수·진보 진영의 갈등이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판결 직후, 진보·보수 진영은 각각 "정치적 재판 결과", "교육감 직선제 폐지" 주장을 내세우며 각을 세웠다.

정치적 판결일까, 아니면...

조희연 교육감은 자사고 지정 취소, 누리 과정 어린이집 예산 부담, 해직 교사 특별 채용 등을 두고 교육부와 갈등을 빚었다. 지난해 12월 3일 공직선거법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 검찰이 조희연 교육감을 기소한 것을 두고 정치적인 기소라는 비판이 나왔다.

6·4 지방선거에서 조희연 교육감과 고승덕 전 후보는 서로에게 의혹을 제기하는 등 공방을 벌였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두 사람에게 경고 조치했다. 이후 검찰은 경찰의 무혐의 판단에도 조희연 교육감을 기소했지만, 고승덕 전 후보에 대해서는 기소를 하지 않았다.

조희연 교육감은 선고 직후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재판 과정에서 바로잡히길 소망했지만, 결과가 실망스럽게 나왔다"면서 "곧바로 항소해서 2심에서 저의 무죄를 입증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조희연 교육감 쪽이 배심원들을 설득하지 못한 점도 유죄가 나온 배경으로 보인다. 조희연 교육감 쪽은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후보 검증 차원으로 필요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제시된 소명 자료 등에 의하여 의혹이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허위 사실 공표죄로 벌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의 의혹 제기는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가 트위터에 올린 의혹 제기 글에서 비롯됐다. 조 교육감 쪽은 당시 캠프가 최 기자의 트위터 글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하거나 소명 자료 확보 노력을 배심원들에게 보여주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로 조희연 캠프가 최경영 기자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한 것은 기자회견 5분 전의 일이었다.

재판부는 "고승덕 전 후보의 자서전이 신빙성 없는 책이었다 해도 그 책에서 영주권을 취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엿보이는데, 확인 절차를 거쳤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이 고승덕 후보와 완전히 화해하지 못한 점도 유죄에 영향을 미쳤다. 지방선거 직후, 조희연 교육감과 고승덕·문용린 전 후보는 "서울 교육 발전을 위해 협력하겠다"면서 취재진 앞에서 함께 웃으며 손을 잡았다. 하지만 고 전 후보는 증인으로 나선 지난 22일 재판부에 "화해한 게 전혀 아니다"라면서 "(조 교육감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제게 고통을 주고 있다, 법대로 엄정하게 판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선고 전 최후 진술에서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고 (전) 후보님과 마음 터놓고 오해를 풀고 싶다"고 밝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안 그래도 속도 조절했는데... 공교육 혁신 좌초 우려

지난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상대 후보인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보유의혹을 제기한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3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 1심 선고공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상대 후보인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보유의혹을 제기한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3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 1심 선고공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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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학부모와 학생들이다. 지방선거 당시 전국의 많은 학부모는 공교육 혁신을 공약으로 내건 진보 교육감에게 표를 던졌고, 진보 교육감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타격을 입은 조희연 교육감이 앞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제대로 추진해 자신을 뽑아준 학부모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혁신학교 확대 정책은 조 교육감의 대표적 공약이었다. 지난해 그는 혁신학교 55곳을 추가 지정해, 올해 혁신학교 100곳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당시 47개 학교만 신청서를 냈고, 44개 학교만 혁신학교로 추가 지정되면서 조 교육감의 구상은 어그러졌다. 당시 보수적인 관료나 학교장들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 교육감은 지난 3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서울시교육감의 진보 정책에 대한 보수의 저항은 다른 곳보다 크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 의제를 빠른 속도로만 추진하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관련 기사 :"내 점수는 55점... 보수의 도전 관리 못했다").

앞으로 보수적인 교육계의 저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반고를 살리고 특권 학교를 축소하려는 공교육 개혁 작업이 힘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특수목적고·특성화중 운영 성과 평가 결과 기준 점수에 미달한 영훈국제중학교·서울외국어고등학교 지정 취소 여부가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은 "구태의연한 학교장 등 보수적인 교육계 인사들이 진보 성향의 곽노현 전 교육감 때부터 혁신 교육을 사사건건 발목 잡고 훼방했다"면서 "앞으로 진보 교육을 흔들려는 보수 세력의 책동이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조 교육감의 조직 장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저의 1심 유죄 판결에도 서울 교육의 핵심 정책은 굳건할 것"이라면서 "1심 유죄 판결이 2심과 3심에서의 유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가 추진했던 서울 교육의 다양한 혁신 정책들을 열심히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보수-진보 갈등 고조... 보수 진영 "교육감 직선제 폐지" 주장

향후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은 교육계에서 진보·보수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이다. 보수 진영은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보수 진영은 6·4 지방선거에서 17개 시도 중 13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하자,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바 있다. 보수 성향의 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에 교육감 직선제 위헌 청구 소송을 냈다.

2008년 7월 서울시교육감 선거 직선제 도입 이후, 4명의 교육감 중에서 조희연 교육감을 비롯한 3명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첫 직선제 교육감이었던 공정택 전 교육감은 임기 1년 3개월 만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교육감직에서 쫓겨났고, 그 이후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곽노현 전 교육감은 취임 1년 2개월 만에 공직선거법상 후보매수죄로 구속됐다. 1년 뒤 대법원 확정 판결로 직을 잃었다. 2012년 12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문용린 전 교육감의 임기는 1년 6개월에 불과했다.

교총은 판결 직후 "조희연 교육감 개인의 판결을 넘어 교육감 직선제 제도 자체에 대한 유죄 판결"이라면서 "교육의 정치적·중립성 보장의 헌법 가치를 외면하고 고도의 정치 행위인 선거 제도를 통해 교육 수장을 선출하는 교육감 직선제의 근본적 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밝혔다.

진보 진영은 판결 결과를 두고 정치적 판결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과 서울교육 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 김옥성 대표는 "의혹을 해명하라는 내용은 유권자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보장돼야 한다, 선거 운동을 제한하는 이번 판결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이라면서 "조희연 교육감의 무죄 판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위기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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