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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농성일을 알리고 기록하는 날짜판.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한 김경봉.
 농성일을 알리고 기록하는 날짜판.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한 김경봉.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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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이면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되어 투쟁한 날짜가 3000일을 맞이하게 된다(이 일기는 4월 17일에 썼다). 음악과 예술을 통하여 우리 상황을 알리는 데 힘을 썼지만 콜텍 사장과는 대화도 한 번 못하였다. 우리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정리해고 한 기업들과 긴 시간 투쟁하는 사업장은 많아졌지만 나라에서는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의 외침을 외면한다.

3000일 동안 싸움하면서 우리들의 생활은 회사 생활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특히 천막 농성을 하면서) 물과 불에 대한 고마움을 알았고, 사람이 밥 해 먹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았다. '사람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과 불이 없으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3000일이면 어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중학교를 졸업하는 시간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활의 지혜가 생기듯, 긴 농성에서도 지혜를 얻는다. 우리 천막(콜트·콜텍 천막 농성장, 인천시 갈산동에 위치)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다른 천막 농성장과 비교해서 "호텔"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런 이야기는 <법 앞에서>란 연극에서 설명하기도 했다.

우리의 천막농성장은 싱크대와 물은 없지만 주방을 만들어 최소한 사람이 먹을 것을 직접 만들 수 있게 해놓았다. 또 하루 일정이 끝나면 개인적으로 휴식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놓았다. 겨울이면 냉기를 피할 수 있는 난로도 설치해 놓았다. 난로에 열효율을 올리기 위해 덮개를 만들어서 천막 안을 따뜻하게 했다. 이런 천막 공간은 주로 경봉이형이 만들었다. 경봉이형 개인 공간은 '콜트·콜텍 불바다'란 공연 무대에서 쓴 앞판을 재활용하여 만든 것으로 예술가치가 빛나고 있다. 그래서 경봉이형 별명이 '봉가이버'라고 불리기도 한다.

천막은 전기 시설과 수도시설이 없기에 멀리 가서 물을 길러오고, 가스통에 의지해서 음식을 만들고, 화목난로로 난방을 하고 있다. 콜트·콜텍은 음식을 직접 해먹기 때문에 연대가 더 끈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년 12월 4일 천막 보수 공사를 하던 모습
 작년 12월 4일 천막 보수 공사를 하던 모습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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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우리 같은 서민들 사이에는 밥 한 끼 나누는 고마움이 많이 남아 있다. 돈으로 밥을 사달라고 하면 안 사주기도 하지만 있는 밥에 밥 한 끼 달라고 하면 당연히 주는 게 사람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밥이 밥통에 없으면 라면이라도 끓여주는 게 사람의 정이다. 그러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 욕심 때문에 사람들의 먹고사는 권리까지 박탈을 한다.

콜트·콜텍 천막 농성장은 봄이 되면 천막 옆 화단에 텃밭 가꾸기를 하여 야채를 우리가 재배하여 식생활에도 신경 써왔다. 아침에 일어나 채소들과 과일들이 살아 있으면 재배하는 사람만의 느낌은 색다르고 아침 공기와 함께 상쾌해진다.

고추, 상추, 토마토, 오이 등을 천막 옆에 재배하니 지나가는 주민들도 "좁은 공간이지만 여러 가지 한다"고 칭찬도 많이 한다. 작년 가을에는 방울토마토와 오이가 탐스럽게 자라서 주변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토마토 좀 따먹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서 따드셔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주민들은 우리 상황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나쁜 사장이 있는 줄 몰랐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어 한국의 노동현실을 설명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천막 농성장의 불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전남 고흥에서 명인님이 자연산 홍합을 보냈는데 물이 없어서 옆에서 식당 하는 유희 선배님이 다듬고 씻어 요리해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주 일정이 많아 홍합을 먹을 수 없었고 다른 투쟁 사업장으로 홍합 요리가 갔는데, 연대 동지들이 SNS에 그 사진을 올려 명인님께 미안했던 적이 있었다.

겨울에는 동물들도 먹고살기가 힘이 들어 우리들의 음식을 도둑맞은 적도 있다. 범인은 쥐였다. 쥐가 지원 들어온 고구마를 다 파먹어서 사람이 먹기엔 어려웠는데, 고양이가 와서 쥐들을 정리하였다. 동물들도 사람이 사는 데와 똑같이 살아간다. 이렇게 오래 투쟁하다 보면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많다.

콜텍은 노래와 예술의 만남이 있어서 다른 투쟁 사업장보다는 덜 외롭게 투쟁한 것 같다. 그런데도 천막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이 그리울 때가 많다. 지금도 음식하기 힘들고, 음식을 지키기도 어렵지만 저녁 때만이라도 우리가 먹는 끼니를 더 많은 주민과 나누었으면 좋겠다.

2015년 4월 17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이인근 지회장이 자기 방에 정을 들이지 못하는 까닭

경봉방 밖에서 본 모습
 경봉방 밖에서 본 모습
ⓒ 김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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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춘 조합원이 '지혜'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콜트·콜텍 농성자들의 천막은 소우주이다. 계절의 변화가 있고, 시간의 누적이 새겨진다. 2013년 2월 1일 콜트 공장에서 농성자들이 쫓겨난 후 여러 사람들의 품앗이로 사람이 먹고 잘 수 있는 천막이 만들어졌다. 그리고도 2년이 훌쩍 지나 어느덧 삭아가고 어느덧 사라지는 것들이 생긴다.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비가 들어오고, 자외선이 자극한다. 그렇기에 천막을 거처답게 유지하는 데는 많은 공이 든다.  

큰 비가 지나가고 나면 찢어지고 삭아버린 천막의 비닐 덮개를 교체해야 한다. 텃밭은 한두 번씩 흙을 통으로 갈아엎고 적절하게 거름을 줘야 한다. 겨울용 땔감은 미리미리 구해야 하고 도끼질도 틈틈이 해야 한다. 방심하면 쥐들이 들어와 쌀포대를 파고들고 후원 들어온 음식들을 동내고 달아나니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 

천막 농성장에는 새롭게 늘어가는 것들이 있다. 처음 천막을 칠 땐 하나였다. 그러다 바로 옆으로 천막 하나를 더 세워 숙소와 단체생활 공간을 분리했다. 두 동의 큰 천막 양쪽으로 창고들이 붙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경봉 조합원이 자신의 방을 공사하기 시작했다. 작년 초 어느 단체가 땔감으로 쓰라고 농성장으로 보내준 목재 더미 안에는 버려진 침대가 있었다. 매트리스를 떼어내고 남은 바닥은 보니 김경봉 조합원의 머릿속에는 완성된 자신의 방이 떠올랐다.

"나의 방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굴뚝같았어. 그러다 버려진 침대를 보고 이거다 싶어 내 방의 기본 공간을 침대 받침으로 만들어갔지. 공연장 무대로 쓴 합판을 세우고 올려 벽과 선반도 만들었어."

천막 2동의 임재춘 조합원 방(바깥쪽)과 안쪽 김경봉 조합원의 방
 천막 2동의 임재춘 조합원 방(바깥쪽)과 안쪽 김경봉 조합원의 방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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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방을 만든 것이 그동안 '봉가이버'의 제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고 꼽는다. 방이 작으니 모기장도 사방으로 알뜰하게 칠 수 있어 비로소 각종 여름 벌레들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봐도 그 방은 정말 알뜰살뜰하여 다른 농성자들의 부러움 좀 샀겠다 싶다.

김경봉 조합원이 제 방을 만들자 자연스럽게 임재춘 조합원과 이인근 지회장의 방도 분리됐다. 그 사이 농성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줄어 평일 농성장에는 콜텍의 세 사람이 주로 머문다. 최초 만들어진 천막은 이인근 지회장의 독방이 됐고, 단체방으로 쓰이는 천막은 밤이면 임재춘 조합원의 방이 됐다. 이인근 지회장은 천막 안에 다시 텐트를 쳐 좀 더 개인공간답게 만들고 보온 효과도 높였다.

모든 일정을 마친 늦은 밤이면 농성자들은 각자의 공간에 누워 다음 날을 맞이한다. 낮에 일어난 불편한 일들을 떠올릴 것이고, 이 싸움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시름할 것이고,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도 그 시름과 그리움을 들키지 않아도 되니, 각자의 방은 농성 9년차의 개개인에게 좀 더 일찍 제공됐어야 할 필수공간이다. 긴 싸움일수록 개개인의 취향과 욕망은 세심하게 보살펴져야 한다. 

아무리 머리를 요리조리 굴려도 해답이 안 나오는 필수품도 있다. 김경봉 조합원은 농성자들의 오랜 숙원사업인 샤워시설 갖추는 데는 아직까지 해답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물이 없는 곳에서 물을 길어다 샤워를 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므로 샤워장만큼은 그렇게 포기됐다.

농성장의 주방
 농성장의 주방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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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아픈 임재춘 주방장
 허리 아픈 임재춘 주방장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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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춘 조합원은 주방장이니 만큼 부엌 시설에 대한 불편함을 가장 많이 느낀다. 그 중에서도 가스를 사용하는 조리대가 너무 낮아 여러 개의 음식을 동시에 조리할 때는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 나의 수다로 그 얘길 전해들은 김경봉 조합원은 이렇게 따끔하게 말했다.

"필요하면 만들어 쓰고 바꿔 쓰고 해야지. 왜 말을 안 하고 끙끙대냐! 그럼 답이 나오냐!"

임재춘 조합원은 이 싸움이 언제까지 갈지 몰라 그런 식의 새로운 투자(?)에 썩 용기가 나지 않는 것 같다. 반면에 언제까지 이 싸움이 갈지 모르니 뭐든 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게 김경봉 조합원의 일관된 의견이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그런 대립은 임재춘 조합원이 먼저 침묵함으로써 몹시 조용하게 마무리된다.

김경봉 조합원의 섬세한 계산으로 만들어진 농성날짜 판은 오늘도 또 한 장 넘어간다. 천막의 텐트 안에서도 웃풍을 견디지 못하여 새벽이면 혼자 천막을 어슬렁거리는 이인근 지회장은 자기 방에 정을 들이지 못한다. 애초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므로,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이므로…. 그렇다고 떠나갈 곳도 없으니 그의 불면증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천막 안의 텐트, 이인근 지회장 방
 천막 안의 텐트, 이인근 지회장 방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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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콜트콜텍, #부당해고, #위장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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