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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작은 정주영'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인맥을 상징하는 두 개의 조직이 있다. 하나는 25년 역사의 '서산장학재단'이고, 다른 하나는 15년 역사의 '충청포럼'이다.

다른 듯 보이지만 서산장학재단과 충청포럼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충청도라는 지역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전국에 지부를 두고 있고, 해외장학사업, 전·현직 외국 총리 초청강연 등을 통해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점 등이 그렇다.

재단과 포럼은 모두 성 전 회장의 '정치적 야심'과 관련돼 있다. 특히 지난 15년간 포럼에 참여했거나 초청된 인사들의 면면은 포럼이 '대권의 전초기지'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국 10개 지부, 수천 명의 회원... 검찰-감사원-법원까지 확장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2010년 11월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 초청 충청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2010년 11월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 초청 충청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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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은 지난 2000년 11월 22일 롯데호텔에서 창립식을 열었다. 포럼은 충청 출신 정계와 재계, 관계, 언론계, 학계 인사들의 학술·친목모임으로 출발했다. 현재 서울·경기·부산·충청 등 전국 10개 지부가 활동하고 있다. 다만 회원수를 둘러싸고는 1000여 명, 3500여 명, 6000여 명 등으로 엇갈린다.

성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4월 <대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충청포럼을 설립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인데 충청도 사람은 재향인, 출향인 포함해 100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충청도 사람들은 개인 기량은 뛰어난 데 결속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변화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포럼을 만들게 된 것이다."

성 전 회장은 지난 2009년 6월 열린 22차 포럼에서도 "이제 충청포럼은 명실상부한 충청인의 구심체로서 급변하는 글로벌시대에 발맞춰 하나된 충청권의 존재와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안목과 비전을 제시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충청포럼 운영위원은 충청권 출신 정계, 관계, 재계, 문화예술계, 언론계 등의 주요 인사 100여 명으로 구성됐다. 특히 운영위원 절반이 언론계 출신으로 알려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 오연천 전 서울대 총장, 박병석 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고흥길·권선택 전 의원 등이 운영위원이나 회원으로 참여했다.  

충청포럼은 1년에 서너 차례 정기포럼을 열어왔다. 대부분 외부인사 초청강연으로 이루어지는 정기포럼은 최근까지 약 30차례 정도 열렸다. 주제도 대선조직에서나 다룰 법한 한국경제, 정보화, 국제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외교, 리더십 등 다양했다.

정기포럼이 한 번 열릴 때마다 500~70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지난 2005년 2월 22일자 <중도일보>가 전한 참석자 명단은 포럼이 정계와 재계, 학계를 넘어서 검찰과 감사원, 법원까지 확장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날 행사에는 유근창 충청향우회 총재를 비롯해 조부영 전 국회 부의장, 열린우리당 권선택·서재관·김낙순 의원, 한나라당 홍문표·고흥길·김영숙 의원, 자민련 류근찬·김낙성 의원, 송인준 헌법재판소장, 안상수 인천시장,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정종책 충청대학장, 이명수 건양대 부총장, 백낙주 고려대 교수, 임좌순 한서대 교수, 서영제 대전고검장, 조승식 대검 부장, 김수장 전 서울지검장, 정낙균 감사원 차장, 임철순 한국일보 편집국장, 서형래 한국관광공사 감사, 이용국 시원휄트공업 회장, 전영채 해피아이 회장, 김상조 삼천당제약사 사장 등 각계 출향인사 500여 명이 참석했다."

주한 미국·중국 대사 각각 세 차례 초청강연

주로 주한 미국·일본·중국 대사, 현직 장관, 전·현직 외국 대통령이나 총리, 국내외 대학 총장 등 '급'이 상당히 높은 인사들이 정기포럼 초청강연에 이름을 올렸다. 그 가운데 주한 미국 대사와 중국 대사가 각각 세 차례 초청됐다.

토마스 허바드 대사(2003년 3월)와 버시바우 대사(2007년 2월),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2010년 8월)는 한미관계나 한미동맹을 주제로, 리빈 대사(2004년 12월)와 청융화 대사(2009년 6월), 장신씬 대사는 한중관계나 중국 발전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 대사도 지난 2003년 8월 포럼에 한 차례 참석했다.

전·현직 외국 대통령이나 총리를 초청한 경우도 눈에 띈다. 충청포럼 창립 1주년인 지난 2001년 11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한국외국어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포럼에 참석해 '테러 이후 국제질서와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 2008년 10월과 2010년 11월에는 각각 존 하워드 전 호주 총리와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를 초청했다.

그밖에도 제프리 존스 주한 상공회의소 회장(2001년 6월), 양승택 정보통신부장관(2001년 10월)과 유명환(2009년 11월)·김성환(2012년 2월) 외교통상부장관, 이기준 서울대 총장(2002년 2월)과 시라이 가쓰히코 와세다대 총장(2008년 1월), 딕 아드보카트 축구 국가대표 감독(2006년 4월),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2008년 7월),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2004년 9월),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2001년 2월) 등 각계 각층의 주요 인사들이 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에 나섰다.

성 전 회장은 자신이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 특보단장에 임명되기 직전인 지난 2003년 12월 김종필 총재를,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5년 12월에는 이재정(현 경기교육감)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각각 초청했다. 이후 이재정 수석부의장은 지난 2009년 6월과 2011년 5월 열린 포럼에 각각 성공회대 교수와 국민참여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성 전 회장은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과 행담도 개발 비리 검찰 수사, 공천 탈락과 비례대표 낙선, 경남기업 워크아웃 결정 등의 악재에도 충청포럼을 이어갔다. 그런 가운데 참여정부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특별사면됐고, 이명박 당선자 대통령직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과학비즈니스벨트TF 자문위원에 위촉됐다. 그토록 원했던 국회의원에도 당선됐고, 선진통일당 원내대표에도 선출됐다.

장관 시절 초청강연... UN 사무총장 땐 축하 메시지

충청포럼과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충북 음성 출신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충남 공주 출신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다. 이들은 모두 차기 대권주자에 이름을 올렸던 인사들이다.

성 전 회장이 자신의 후임 충청포럼 회장으로 생각했던 반 총장은 참여정부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인 지난 2005년 2월 포럼에 참석해 '부시 행정부 2기 출범과 한미관계'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으로 지난 2009년 8월 10일 저녁 롯데호텔에서 성 전 회장, 정진석 의원 등을 별도로 만났다.  

반 총장이 다음날(8월 11일) 충청권 명사들의 모임인 '백소회' 총무를 맡고 있는 임덕규 월간 <디플러머시> 회장과도 만나 눈길을 끌었다. 백소회에는 정운찬 전 총리도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조직과 잇달아 접촉하자 이를 반 총장의 대권 행보로 보는 기류도 생겨났다. 하지만 충청포럼 쪽에서는 "정치적 성격을 띤 자리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지난 2011년 3월 흥미로운 장면이 목격됐다. 서산중앙감리교회에서 열린 모친 고 윤도순 권사 15주기 추모예배에 락시타 나트나야케 주한 스리랑카 대사가 참석해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의 추도문을 대독한 것이다. 이에 화답하는 성 전 회장의 감사 인사말에도 반 총장이 언급돼 있다.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이 자국의 유엔총장 후보 예정자를 설득해 우리 반기문 사무총장이 단일후보로 나서는 데 키맨 역할을 했다."

충청포럼을 매개로 이어진 성 전 회장과 반 총장의 관계는 더 이어졌다. 반 총장은 지난 2011년 7월 서산농어민체육센터에서 열린 서상장학재단 설립 20주년 기념행사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20년을 이어온 장학사업과 성 회장을 격려하는 내용이었다.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사업 등을 통해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성완종 이사장에 감사하다. 글로벌 인재양성을 통해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빛나는 장학재단으로 성장해 달라."

게다가 반 총장의 친동생인 반기상씨는 지난 2012년 4월 총선에 출마한 성 전 회장의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3월 17일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형님께서 특별히 전화해서 찾았는데 오늘 분위기를 보니 무언가를 해낼 것 같다"라며 "성 후보와는 가족, 친구 같은 관계로 (성 전 회장은) 큰 머슴감이다"라고 치켜세웠다. 반씨는 경남기업 상임고문을 지냈다.  

반기문 대망론, 성완종과 이완구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3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제보에 의하면 성완종 전 회장이 이완구 총리 인준을 위해 노력했다"며 "이 총리 인사청문회 당시 성 회장을 중심으로 한 충청포럼이 이 총리의 낙마를 염려해 수천장의 플래카드를 걸었다"고 주장했다.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3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제보에 의하면 성완종 전 회장이 이완구 총리 인준을 위해 노력했다"며 "이 총리 인사청문회 당시 성 회장을 중심으로 한 충청포럼이 이 총리의 낙마를 염려해 수천장의 플래카드를 걸었다"고 주장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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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전 회장이 '반기문 대망론'을 염두에 두고 충청포럼을 운영해왔다는 시각이 많다. 반기문 대망론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부터 정치권에 나돌았다. 친이계에서 '박근혜 대항마'로 그의 영입을 추진했고, 야당에서도 지난 2012년 대선 직전 영입을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반 총장은 "사무총장으로서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대선출마설을 부인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한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이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1위를 기록하면서 반기문 대망론이 다시 떠올랐다. 게다가 성 전 회장이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과 박지원 의원 등에게 '반기문 야당 대선후보 출마'를 타진한 사실까지 확인됐다. 성 전 회장 등이 권 고문에게 "반 총장이 새정치연합의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지면서 이러한 성 전 회장의 행보가 다시 거론됐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반기문 대망론'을 키우는 성 전 회장을 겨냥해 기획사정을 진행했다는 주장이 나돈 것이다. 차기 대권을 놓고 성 전 회장과 이 총리가 갈등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21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성 전 회장과 가까운 진경스님은 "성완종 회장 말로는 이완구 총리가 '반기문 말고 나를 대통령으로 밀어 달라'고 하길래 성완종 회장이 '반기문과 당신은 비교가 안 되지 않느냐. 반기문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데 당신도 명성을 쌓아올려라'라고 답했다고 하더라"라고 주장했다. 성 전 회장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남긴 바 있다. 그는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반기문을 의식해 (이완구 총리가) 계속 그렇게 나왔다. 반기문과 가까운 건 사실이고…."

하지만 이 총리는 지난 16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반 총장의 대권과 저를 결부해 고인을 사정수사했다는 건 심한 오해다"라고 반발했다. 반 총장도 "성 전 회장은 충청포럼 등 공식 석상에서 본 적이 있고 알고 있지만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정치에 관심도 없고 바빠서 그럴 여력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정운찬, 훌륭한 지도자감... 경제-국제감각 탁월"

성 전 회장은 반 총장 외에도 정운찬 전 총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충청포럼 창립 회원인 정 전 총리는 서울대 총장이던 지난 2004년 4월 충청포럼에 참석해 '내가 본 한국경제와 대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은 원래 국회의원에 당선된 충청권 출신 인사 43명의 축하연이 계획돼 있었지만, 당선자들의 일정이 맞지 않아 정 전 총리 초청강연으로 대체됐다.

정 전 총리는 국무총리 시절인 지난 2010년 1월 충청포럼 운영위원들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세종시 원안이 수정된 데 이해를 구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를 초청한 포럼 행사에도 참석했고, 지난 2012년 3월 성 전 회장의 선거사무실 개소식 때에는 축하 메시지도 전달했다. '성완종 다이어리'에 따르면, 2012년 7월 10일에도 성 전 회장과 정 전 총리가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정 전 총리가 대권후보로 거론되던 지난 2007년 1월 성 전 회장은 "이 나라의 훌륭한 지도자감이고, 특히 충청인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매우 큰 인물이다"라며 "경제는 물론 국제적 감각이 탁월하다"라고 호평한 바 있다(<대전일보> 2007년 1월 8일자). 결국 당시에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지난 2012년 대선 때까지도 그의 대선출마설이 나돌았다.

성 전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충청포럼은 정치단체가 아니다"라고 말했고, 충청포럼의 한 관계자도 "영호남에 비해 정치적으로 약한 충청 인물을 키워서 충청 발전을 도모하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충청포럼이 성 전 회장의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한 사조직이었음을 방증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충청포럼, #성완종, #반기문, #정운찬, #이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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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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