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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유가족들의 평온한 삶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들의 삶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때로는, 남은 사람의 꿈도 바뀝니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누나는 이제 법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박수현군 누나 박정현씨의 이야기입니다. 여기,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사랑하는 수현이에게.

잘 지내고 있어? 벌써 1년이 지났네. 너랑 떨어져있는 시간이. 아직도 4월 16일에 머물러 있어 그런지 실감이 나질 않아.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행복하게 떠났던 네가, 네 친구들이, 그리고 선생님과 많은 분들이 영원히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는데..

세상은 변한 게 없어. 사고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그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곁을 떠나가고. 너를, 너희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참 잘 살고 있다. 마치 자기 잘못이 뭐냐는 듯이...사고가 났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고 제자리걸음이네...

하지만 우리 가족들의 삶은 참 달라졌어. 누나도 그래. 너를 잃고 나서 누난 살고 싶은 모습이 바뀌었고 꿈이 달라졌어. 기억하지? 누나가 뭐가 되고 싶어했는지. 너랑 진짜 많이 상의했었잖아. 꿈에 대해서. 언론인. 진짜 오래 전부터 꿔오던 꿈이었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인가?

누나의 꿈, 1년 전 사라졌지만

아버지의 마음일까. 지난 18일 고 박수현 군 가족 블로그에 "험악한 세월에도 꽃은 핀다. 수현아 네가 살던 뒷동산은 올 봄에도 꽃은 피었다. 그 꽃을 네게 보낸다"는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 "남들에게는 그냥 또 한 번의 봄이겠지만 자식 잃고 진실을 위해 싸우시는 부모님들에게는 정말 잔인한 봄입니다"란 댓글이 달렸다
 아버지의 마음일까. 지난 18일 고 박수현 군 가족 블로그에 "험악한 세월에도 꽃은 핀다. 수현아 네가 살던 뒷동산은 올 봄에도 꽃은 피었다. 그 꽃을 네게 보낸다"는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 "남들에게는 그냥 또 한 번의 봄이겠지만 자식 잃고 진실을 위해 싸우시는 부모님들에게는 정말 잔인한 봄입니다"란 댓글이 달렸다
ⓒ blog.naver.com/suhyeon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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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루고 싶었던 꿈은 작년 4월 16일, 사라져 버렸어. 너를 기다리며 누나는 보지 말았으면 했던 것을 보았고, 내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았어. 내가 생각했던 언론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언론이란, 사람들에게 사실을 전하고 그걸 통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워왔고.

하지만 내가 실제로 접한 언론이란 것은 그렇지 못했어. 미성숙하기 그지없었고, 언론인의 꿈을 꿔오던 나에게 언론의 모습은 꿈에 대한 절망으로 다가왔어.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이나 언론학을 전공하고 싶어했던 나는 입시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전공을 바꿨어. 법학으로.

예전에는 내가 법학을 전공할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 초등학생 때부터 언론 쪽에서 일하고 싶어했고 대학도 그 전공 쪽으로 가고 싶었으니까.

근데 사고를 겪고 지금까지 참 많은 것들을 봐 오면서 느낀 건데, 법이란 건 참 중요한 거더라. 법들을 바꿨고 사고가 났고. 법을 잘 모르던 우리들은 계속해서 당할 수밖에 없었어.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조금만 말을 그럴듯하게 하면 쉽게 믿어 버리니까. 그리고 네가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알기 위한 과정에서 법이 필요한 여러 상황을 겪었고 법이란 게 참 중요한 거구나 다시 느꼈지.

그래서 나는 법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어. 꼭 법조인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법을 조금이라도 접해 보고 공부해 보면 몰라서 멍청하게 당하는 일은 없을 거란 생각에. 그래서 나는 법학과에 진학했어.

나만 잘 살면 그게 끝이라 생각했는데

어머니의 마음. 고 박수현 군이 초등학생일 때 어머니가 남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한 글
 어머니의 마음. 고 박수현 군이 초등학생일 때 어머니가 남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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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삶의 목표도 달라졌다 했지? 사고가 나기 전의 나는 참 이기적이었어.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해서 좋은 직장을 얻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고 가정을 꾸려 남부럽지 않게 사는 거. 누구나 이상향으로 삼고 모두가 꿈꿔보는 삶을 또한 꿈꿔왔어.

나는 나만 잘 살면 그게 끝이라 생각했어. 그래서 사회에 일어나는 문제에도 무관심했어. 내 일이 아니니깐. 언젠가는 나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일인데 어리석게도 난 그걸 알지 못했어.

그러다가 이런 일이 생기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 그 전까지는 뉴스에서 보도되는 인명사고를 봐도 저 사람들 안 됐다, 슬퍼하는 모습을 마구 찍어대는 기자들을 보며 '저게 뭐냐.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니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 그 자리에 내가 있더라. 안타깝다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던 그 자리에.

이렇게 내가 피해자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어. 나한테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해서 절대 무관심해서는 안 됐음을. 그 무관심이 결국 나를 피해자로 만들었다는 걸. 그래서 누나는 이제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아직 많이 부족하고 모르는 것도 많지만 이것저것 찾아보고 다른 사람 말도 많이 들어보고 노력하는 중이야.

참 부끄러운 누나였지만, 다시 만날 때는...수현아

고 박수현 군의 누나 사랑은 애틋했다. 누나가 집에 늦게 들어올 때는 자주 마중 나갔다고 한다
 고 박수현 군의 누나 사랑은 애틋했다. 누나가 집에 늦게 들어올 때는 자주 마중 나갔다고 한다
ⓒ blog.naver.com/suhyeon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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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솔직히 지금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거 하나는 정확해. 내가 겪은 아픔을 또 다른 누군가가 겪지 않게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예전에 너한테 했던 말 있지? 어두운 세상을 밝게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내가 뭐가 되던 내 자리에서 너한테 한 약속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될게.

내가 너한테 했던 또 다른 말. 부끄러운 누나가 되지 않겠다고 했던 거. 생각해보면 난 참 부끄러운 누나였어. 그리고 난 아직도 한없이 부끄러운 누나야. 하지만 시간이 흘러 널 다시 만날 때에는, 네가 친구들에게 이 누나가 내 누나라고 자랑할 수 있을만한 누나가 되어있을게.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잘 지켜봐 줘.
사랑해, 수현아.

사랑하는 누나가.

[관련기사] '우리 수현이의 짧은 생, 슬픈 아비가 전합니다'
[블로그] 고 박수현이 체험했던 세상


태그:#세월호, #박수현, #단원고, #벚꽃,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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