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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늘 양보한 덕이
 늘 양보한 덕이
ⓒ 김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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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후 덕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학교에는 담임 선생님 두 분(1반 담임 선생님, 특수반 담임 선생님)이 계셨고, 일반 학급 아이들과 특수반의 5명이 덕이와 함께 했다. 특수반은 저학년 1, 2, 3학년의 개나리반과 고학년 4, 5, 6학년의 목련반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특수반 선생님은 '덕이가 잘 적응하고 있으며, 동생들을 잘 돌봐 준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 다행스럽고 고맙게 느껴졌다. 적응 잘하는 덕이가 고마웠고, 덕이의 특수반 생활하는 모습을 잘 관찰하시고 말씀해주시는 특수반 선생님께도 감사했다.

또한 "시간 되실 때 오셔서 덕이가 특수반 수업하는 모습이나 학교 생활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안심이 됐다. 수업하는 모습을 자신있게 공개할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하시다면 틀림없이 덕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실 것 같았다.

덕이의 학교 생활이 궁금하던 차에 "토요일은 쉬니까 그날 덕이의 학교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하시라"고 하셨다. 토요일은 등교부터 하교까지 특수반에서만 지낸다고 했다. 활동하기 좋은 날씨에는 개나리반과 목련반이, 그리고 참석할 수 있는 부모님과 함께 견학이나 놀이 시설을 다니기도 한다고 하셨다. 좋은 일이다.

우리 덕이는 사람들에게 눈에 띄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하얀 피부에 '너무 잘생겼다'며 관심을 보이고, 다른 하나는 남을 잘 도와 주는 착한 행위 때문에 드러난다. 내가 방문한 토요일은 마침 운동장에서 바닥에 각자 원하는 사람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개나리반에 들어간 지 겨우 2주밖에 안 됐으나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개나리 반에는 1학년 1명, 2학년 1명, 3학년 3명으로 모두 5명이 있었다. 그 중에서 덕이의 키가 제일 컸다. 그래서일까 1, 2학년 아이들은 물론 같은 학년 개나리반 3학년 여자아이도 덕이에게 "오빠"하면서 따른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서로의 그림을 보고 웃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저렇게 웃는 덕이를 처음 보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진작 전학할 걸... 내 욕심에 덕이를 '그동안 괴롭게 했나' 싶어 괜히 미안해졌다. 3교시가 끝난 후 집으로 오면서 덕이에게 물어봤다.

고모: 덕아, 아까 동생들과 친구들이랑 운동장에서 사람 그림 그릴 때 행복해 보이던데 덕이는 지금 개나리반 선생님과 동생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런 거니?
덕 : 응, 좋아.

덕이의 대답은 간단했지만, 표정이 밝았다. 그런 모습에 나는 조용히 마음으로 바랐다.

'학교 생활 전체가 편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덕이가 마음 편히 말하고, 행동하고, 어울릴 수 있는 비상구 역할을 개나리반에서 해줄 수만 있다면 학교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점심 식사는 개나리반 아이들과 선생님께서 직접 만들어 먹는다고 하니 이 또한 믿고 맡길 만한 감사할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전 학교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이 점심 시간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덕이를 가장 괴롭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간이 바로 그 때였다. 자기가 싫어하는 반찬을 덕이 식판에 올리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덕이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가져가서 먹고... 쉬는 시간이 길수록 덕이는 괴롭힘을 당했다. 이제는 가장 괴로웠던 점심 시간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 만으로도 일단 만족스러웠다.

아마 특수반 선생님께서 그런 점을 잘 고려하셔서 아이들이 덜 괴롭힘을 당하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즐거움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계획하신 것 같다. 사실 귀찮게 여길 수 있는 일이었으나, 개나리반 선생님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다.

생각해보니 덕이가 개나리반 아이들을 잘 챙겨주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나도 모르게 어릴 적 오빠와 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동생들을 유난히 잘 챙겨준 오빠의 아들인 덕이. 이 아이는 오빠를 종종 생각나게 해준다. 특히 사촌 동생들을 챙겨줄 때 더욱 그러하다.

제 용돈으로 베푸는 아이... 오빠도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덕이에게 용돈으로 천 원씩을 줬는데 주말에 찾아온 사촌 동생이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하면 자기 용돈으로 사주곤 했다. 점점 자라면서도 자기 용돈 모아 동생들 선물해주고... 오늘날 직장 생활하면서 받은 월급의 자기 매달 용돈을 모아 동생들 졸업할 때나 무슨 때가 되면 선물을 해준다. 놀라운 일이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는 걸까.

덕이가 가지고 있던 천원으로 동생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고모 : 덕아, 덕이 용돈은 덕이 너가 먹고 싶은것이나 갖고 싶은 것을 사는 거야.
덕 : 동생이 좋아해(동생이란 사촌 동생들을 말한다).
고모: 덕아, 다른 동생들은 다들 엄마, 아빠가 계셔서 동생들 필요한 것 사줘.
덕 : 내가 사줄거야.
고모 : 왜? 덕이도 아이스크림 좋아하잖아, 고모가 볼 때 덕이가 나보다도 아이스크림 하나를 훨씬 빨리 먹던데... 그만큼 좋아하는 것 아니니?
덕 : 동생 줄 거야.

내가 설득하려고 해도 동생을 주겠단다. 나는 속으로 '그러렴, 너가 동생들 주는 것이 그리도 행복하고 뿌듯하다면 줘야겠지, 그렇게 하렴'했다.

내게는 오빠 둘이 있었는데, 큰 오빠가 덕이 아빠다. 큰 오빠는 늘 둘째 오빠에게 자기 운동화나 용돈을 양보했다. 본인을 위해서는 쓰지 않으면서 동생이나 부모님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다 썼다. 지금 덕이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줘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렇게 하고 있으니... 사실 그래서 더 정이 가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렇게 착한 심성이니 틀림없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유익함을 충분히 전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바로 그것이다.


태그:#학교와 전학, #담임선생님과 친구, #괴로움과 즐거움, #기쁨과 어울림, #가능성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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