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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아동인권센터와 서울 성북구 길음동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안해 낸 '옐로카펫'. 아동들이 다치기 쉬운 건널목에 카펫을 깔아둔 것처럼 노란색 페인트 칠을 함으로써 안전지대를 만들었다. 아동은 이곳에서 차분하게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운전자에겐 근처에 아동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 자연스럽게 안전운전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 서울 성북구 길음동 '옐로카펫'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서울 성북구 길음동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안해 낸 '옐로카펫'. 아동들이 다치기 쉬운 건널목에 카펫을 깔아둔 것처럼 노란색 페인트 칠을 함으로써 안전지대를 만들었다. 아동은 이곳에서 차분하게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운전자에겐 근처에 아동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 자연스럽게 안전운전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 국제아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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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8시 30분께, 서울 성북구 길음동 길원초등학교 앞. 학교 정문 인근 왕복 2차선 건널목은 산만하게 뛰어가는 아이들로 분주했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면 많게는 20여 명의 아이들이 와글와글 길을 건넜다. 교통 지도를 담당하는 녹색어머니회의 깃발이 머리 위로 올라가기 무섭게 내달리는 아이도 있었다.

여느 초등학교 등굣길과 다름없는 풍경이었지만 여기엔 딱 하나 다른 것이 있다. 바로 횡단보도 진입부 벽과 인도에 삼각형 모양으로 노란 페인트가 칠해져있다는 점이다. 온통 회색뿐인 콘크리트에 카펫처럼 덧칠된 노란색은 멀리서도 선명했다. 특히 아이들이 이곳을 통과할 때면 길 건너편에서도 아이의 움직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주민 1676명, '아동이 안전한 건널목' 함께 고민하다 

이것은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이 지역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안한 끝에 만든 '옐로카펫'이다. 아이들의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건널목에 일종의 안전지대를 만든 셈이다. 옐로카펫은 '직진 본능'에 따라 건널목에서 툭 튀어나가는 경향이 있는 아이들을 이 영역으로 유인해 차분하게 보행신호를 기다리게 한다. 동시에 운전자에게는 앞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안전 운전을 유도한다. 자연스럽게 교통사고 위험을 낮아지는 것이다.

또한 밤에는 상단에 설치된 태양광 램프가 움직임을 센서로 감지해 불을 비춘다. 키가 작아 운전자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아동이 저녁 시간에 혼자 횡단보도를 건널 때 유용하다.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서울 성북구 길음동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안해 낸 '옐로카펫'. 22일 방문한 길음동 길원초등학교 앞 아동들이 옐로카펫 위를 지나고 있다.
▲ 길원초등학교 앞 옐로카펫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서울 성북구 길음동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안해 낸 '옐로카펫'. 22일 방문한 길음동 길원초등학교 앞 아동들이 옐로카펫 위를 지나고 있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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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초등학교는 위치 때문에 옐로카펫의 필요성이 더욱 컸다. 이 학교는 왕복 2차선 도로가 'ㄱ'자 형태로 꺾여 지는 곳에 진입로가 있어 아동이 다가오는 차량을 잘 볼 수 없다. 아이들이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불쑥 차도로 뛰어나갈 가능성이 커보였다. 또한 비탈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라 차량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휙 지나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횡단보도에 도로반사경이 설치돼 있지만, 사고를 예방하는 용도로는 충분치 않아 보였다.

이날 등굣길에 만난 아이들도 옐로카펫의 취지에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매일 이 길을 건너 학교에 간다는 6학년 안예원·이지수(모두 여)양은 "(등하굣길 교통지도를 담당하는)학교보안관이 없으면 파란불에도 그냥 차가 지나칠 때가 많다"라며 "위험한 길이었는데 안전해져서 좋다"라고 입을 모았다. 몸집만한 가방을 매고 등교하던 3학년 이현준 학생도 "교통사고를 막으려 설치했다고 들었는데 좋은 거 같다"라고 답했다.

아이들보다 옐로카펫을 더욱 반기는 건 역시 학부모였다. 남색 정장을 입고 출근길에 1학년 딸을 등교시키던 한 중년 남성에게 옐로카펫을 설명하자 매우 반기는 얼굴로 "정말 좋은 취지"라고 말했다. 이날 건널목에서 교통지도를 하던 녹색어머니회 천은경(41)씨 또한 "학교 정문이 비탈길 꼭대기에 있어서 올라오는 차들이 정지 신호에도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육교를 설치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옐로카펫이 생겨 걱정을 조금 덜었다"라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도 감탄... "현장의 작은 변화가 생활을 바꾼다"

옐로카펫을 기획한 이제복 팀장은 22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아동 안전은 아동의 생명권과 맞닿아 있는 인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 국제아동인권센터 이제복 팀장 옐로카펫을 기획한 이제복 팀장은 22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아동 안전은 아동의 생명권과 맞닿아 있는 인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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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카펫은 비영리단체인 국제아동인권센터의 '아동이 안전한 마을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지난 1월부터 약 세달 동안 이 지역 청소년자원봉사단인 '길음밴드'와 함께 직접 마을 답사를 다니며 아동에게 횡단보도가 가장 위험하다는 답을 얻었고, 고민 끝에 '옐로카펫'이라는 아이디어를 탄생시켰다. 그뒤 주민 1676명에게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로 가장 위험한 건널목을 물어 길원초등학교를 포함한 총 3곳에 옐로카펫을 설치했다.

국제아동인권센터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는 아이들의 안전이 '인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매해 안전사고로 숨진 어린이 중 가장 많은 수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4세 미만 어린이 안전사고 사망자 중 42%가 교통사로로 숨졌다. 2012년에도 40%로 1위였다. 때문에 교통사고로부터 어린이를 지키는 것은 아이들의 생존권과 관계된 일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4월 초에 첫 선을 보인 옐로카펫은 SNS로 알려진지 나흘 만에 소개 영상 조회수가 30만을 돌파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국제아동인권센터 페이스북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 전국의 시민 1700여 명이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다. 특히 박원순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에 옐로카펫 영상을 공유하며 "현장의 작은 변화가 경험을 바꾸고, 경험이 바뀌면 생활이 바뀐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현재 국제아동인권센터에는 마을에 옐로카펫을 설치하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지는 중이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제아동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이제복 후원팀장은 "정상적인 업무를 볼 수 없을 만큼 여러 곳에서 문의가 온다"라며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은 국민들의 마음이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복제식'으로 옐로카펫이 전국에 퍼져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 프로젝트는 주민이 직접 필요성을 느끼고 참여하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결과물만 보고 옐로카펫을 카피하다 보면 자칫 원래 취지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며 "마을 주민 스스로가 아동이 안전한 마을을 만든다는 프로젝트의 원칙을 지키면서 옐로카펫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옐로카펫, #박원순, #국제아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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