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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8시 30분경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건물 카페 앞,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채 청바지에 점퍼 차림의 용역인부 50여 명이 공구함을 잔뜩 들고 서 있다. 카페는 대표 출입문을 제외한 다른 문들이 모두 쇠사슬과 노끈으로 단단히 봉해져 있다.

용역인부 옆에 서 있던 법원 집행관이 카페 사장에게 "'건물명도 가처분신청'에 따라 집행하겠다"며 카페를 비우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용역인부를 동원해 무력으로 카페를 비우겠다는 '압박'이었다.

카페 사장 중 한 명인 송현애씨는 "(용역인부들이) 갑자기 확 들이닥치니 무서웠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문부터 잠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장인 최소연씨가 오전 9시께 소송대리 변호사에게 이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할 즈음, YG엔터테인먼트(아래 YG) 측의 한 관계자가 최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싸이(본명 박재상)는 중국에 있어 상황을 잘 모른다, 내가 책임지고 협의테이블을 마련할 테니 믿고 기다려달라"는 설명이었다. "집행을 연기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 전화를 끊고 20여 분을 기다리자, 집행관과 용역인부들이 현장에서 전부 철수했다.

'월드스타' 싸이가 서울 한남동의 한 건물을 매입하면서 이 건물에 있던 카페 세입자와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싸이 소속사인 YG 측이 긴급히 중재에 나섰고, 카페 측도 상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곳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탄 카페 '테이크아웃 드로잉(아래 카페 드로잉)'이다.

월드스타 싸이(본명 박재상)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 건물을 매매하면서 카페 주인과의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월드스타 싸이(본명 박재상)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 건물을 매매하면서 카페 주인과의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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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이 카페 드로잉에서는 용역인부들이 명도집행을 시도하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카페 측에서는 이들을 막기 위해 대표 출입문을 제외한 다른 문을 모두 쇠사슬과 노끈으로 단단히 봉해놓고 있었다(사진).
 22일 오전 이 카페 드로잉에서는 용역인부들이 명도집행을 시도하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카페 측에서는 이들을 막기 위해 대표 출입문을 제외한 다른 문을 모두 쇠사슬과 노끈으로 단단히 봉해놓고 있었다(사진).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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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건물명도 가처분' 집행 나섰다 YG 측 중재 약속에 연기

카페 드로잉 안에는 이날 명도집행 소식을 듣고 이를 막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지인 20여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곳곳에는 "같이 살자, 한남동 카페 데이크아웃 드로잉은 싸이 건물에서 쫓겨나게 됐어요, 임대차보호법이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쓰인 팻말이 걸려 있다. "STOP 싸이, 같이 사는 사이"란 팻말도 보였다. '인사동 거리' 글씨로 익숙한 미술가 이진경 작가가 방문해 직접 쓴 것이다.

현재 카페 드로잉은 부동산 명도소송(건물을 비워 넘겨줌)을 비롯해 명예훼손 등 10여 개 소송에 얽혀 있다. 앞서 싸이 측은 2012년 2월 건물을 매입한 뒤 세입자들에게 퇴거를 요구하면서 용역인부를 동원했고, 이 과정에서 세 명의 카페 주인 중 한 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발생해 논란을 빚었다. 경찰이 출동해서야 상황은 마무리됐다.

싸이 측 법률대리인인 정경석 변호사(법무법인 중정)는 전날(21일) 카페 주인에게 "(이 건물은) 재건축 예정이며 오는 27일까지 명도집행을 할 예정이니 건물을 비우라"는 요지의 협조문을 보냈다. 사실상 최후통첩인 셈이다. 

앞서 싸이 측은 2012년 2월, 건물을 매입한 뒤 주인들에게 퇴거를 요구하면서 용역인부(주황색 점퍼)를 동원했고, 이 과정에서 카페 주인 한 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발생해 논란을 빚었다. 경찰이 출동해서야 상황은 마무리됐다.
 앞서 싸이 측은 2012년 2월, 건물을 매입한 뒤 주인들에게 퇴거를 요구하면서 용역인부(주황색 점퍼)를 동원했고, 이 과정에서 카페 주인 한 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발생해 논란을 빚었다. 경찰이 출동해서야 상황은 마무리됐다.
ⓒ 카페드로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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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싸이 소속사인 YG 측까지 나서서 중재를 약속하면서 상황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당초 이날 오후 2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및 상생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었던 '테이크아웃드로잉 대책위'(대표 최소연)는 "임대인 측의 전격적인 상생 약속에 따라, 기자회견을 '싸이의 상생 결단 환영 및 상가법 개정 촉구'로 바꿨다"고 밝혔다.

"세입자에게 불리한 현행 법, 허점 많아... 싸이, 함께 삽시다"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법적 분쟁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아래 상가법)은 세입자에게 불리한 조건이라는 지적이 많다. 현재 국회에는 상가법 일부개정안(김진태 의원 외 10인 발의)이 상정돼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 임차인의 대항력(건물주가 바뀌어도 이전 계약이 승계되는 것) 인정 ▲ 권리금 법제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상가법상 5년의 계약갱신 요구 기간이 지나면 임대인(건물주)은 아무 부담 없이 언제든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이는 임차인(세입자)이 영업활동의 결과로 형성한 지명도나 고객 등 경제적 이익을 침해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카페 드로잉 안 곳곳에는 "같이 살자, 한남동 카페 데이크아웃드로잉은 싸이건물에서 쫓겨나게 됐어요, 임대차보호법이 바뀌어야 합니다"라 쓰인 팻말이 있었다. 이날 오전, 명도집행 소식을 듣고 이를 막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지인들도 20여명 정도 있었다.
 카페 드로잉 안 곳곳에는 "같이 살자, 한남동 카페 데이크아웃드로잉은 싸이건물에서 쫓겨나게 됐어요, 임대차보호법이 바뀌어야 합니다"라 쓰인 팻말이 있었다. 이날 오전, 명도집행 소식을 듣고 이를 막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지인들도 20여명 정도 있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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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카페 드로잉은 최소연·송현애·최지안씨 등 뜻 맞는 여성 3명이 모여 2010년 개점했다. 카페에서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쉽게 만나 소통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앞서 서울 동숭동과 성북동에서도 같은 카페를 열었지만, 매번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결국 2010년 6월, "임차인이 원할 시 매년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넣어 계약한 곳이 한남동 건물이다.

이들은 고깃집으로 사용되던 건물 전체를 보수해 전시 공간으로 꾸미고 카페를 열었다. 예술가들을 초청해 고객들과 직접 만날 수 있게 하면서 '문화공간'으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건물주는 두 배 가까이 오른 부동산 시세에 따라 상당한 이익을 남기고 두 번째 건물주에게 건물을 팔아버렸다. 계약은 승계됐지만, 건물주는 "재건축을 하겠다"며 퇴거를 요청했다.

이를 거부하자, 두 번째 건물주는 카페 드로잉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오랜 다툼 끝에 결국 최씨가 받아들인 조정안은 '2013년 12월 31일까지 가게를 비운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조정에 합의한 지 두 달도 안 돼 또 다시 건물주가 바뀌었다. 세 번째로 건물을 매입한 게 바로 싸이였던 것. 카페 측에 따르면 2010년 계약 당시 시세가 약 30억 원이던 해당 건물은 두 번째 계약 시엔 63억 원, 싸이와의 계약 당시에는 78억 원이었다. 현재 시세는 1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카페 측은 새 건물주가 들어온 만큼 두 번째 건물주와 맺은 조정안은 무효가 되고, 다시 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카페 측 법률대리인 민병덕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앞서 원 주인(첫 번째 건물주)이 매년 임차인이 원하면 갱신할 수 있다고 했고, 이에 세입자들이 막대한 돈을 투자해 문화적 명소로 만들어놓은 것"이라며 "임차인들이 계약갱신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가법 개정안 통과돼 600만 임차상인들 눈물 닦아주길"

민 변호사는 또 "현행 법제도에 허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차인들이 이미 조정조서를 작성해버렸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좁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세입자 측이) 이미 문화적 명소로 만들어 놨는데 여기서 무조건 나가라고만 할 건가, (싸이 측이) 상승된 건물 가치와 권리금을 그대로 먹으려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싸이 측은 지금껏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논리로 카페 측에 건물을 비우라고 요구해왔고, 실제 3월 초부터 명도집행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용역과 몸싸움을 하다 다친 카페 공동주인 송현애씨는 '경추 손상으로 인한 일시적 전신마비'로 2주간 병원에 입원까지 해야 했다. 싸이 측 법률대리인 정경석 변호사는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폭행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송씨는 "어제(21일)도 신경외과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카페 '테이크아웃 드로잉'에서 '싸이의 상생 결단 환영 및 상가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22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카페 '테이크아웃 드로잉'에서 '싸이의 상생 결단 환영 및 상가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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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희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아래 맘상모) 사무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싸이 측의 행동에 법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행 상가법이 임차인에게 불리하게 돼 있는 상태에서 600만 자영업자 대부분이 비슷하게 쫓겨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상가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돼 600만 임차상인들의 눈물을 닦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소연씨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공간을 지키고 싶다"며 건물주인 싸이 측에서 재고해줄 것을 호소했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맘상모 회원 30여 명도 "함께 살자"고 외쳤다.

<오마이뉴스>는 YG 측 중재와 명도집행 등에 관해 묻고자 싸이 측 법률대리인에게 수 차례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싸이와 카페주인 간의 명도소송 첫 변론기일은 오는 5월 7일 예정돼 있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싸이 한남동, #싸이 카페, #싸이 한남동 카페, #싸이 YG, #싸이 양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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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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