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니시무라 히로코와 니와 후미오 선생의 약력
* 니시무라 히로코 이력
나고야 출신. 와세다 연극학과 졸업.
석박사 수료. 와세다 대학 문학박사.
하와이 대학 및 와세다 대학 강사 역임
1982년부터 소노다학원 여자대학 조교수
1991년부터 교수.
1983년 타이니 앨리스 개설.
NPO ARC 이사장.
일본연극학회 회원.

* 니와 후미오 이력
1934년 아이치켄 이치미야 출신.
전진좌(前進座) 연출부
극단 민예배우 교실 거침.
1963년부터 민예(民芸)에서 연출가로 활동.
1983년 민예 퇴단. 타이니 앨리스 개설.
타이니 앨리스 페스티벌 프로듀서로 활동 중
2015년 후두암 투병 중
경화(硬化)라는 말이 있다. 긍정보다는 부정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 표현은 소통의 단절과 부재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경화는 교류의 창구가 사라질 때 공통으로 나타난다. 그 순간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무엇일까?

유서 깊은 '타이니 앨리스' 소극장의 폐관은, 일본 연극인뿐만 아니라 한국 연극 관계자들한테도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아픔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뒤집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의 뒤안길을 논하기 전에, 진화를 향한 적극적이고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30년 동안 우리나라 연극인들을 사비를 들여 초청해 일본에 한국 연극을 널리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운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과 그의 반려자인 니와 후미오 선생님.

평생을 연극에 헌신했던 지한파이자 친한파인 거장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면서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3월 2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을 만났다. 노령의 희망보균자가 보내는 진솔한 메시지는 국경을 넘을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 얻은 '미친 토끼'

타이니 앨리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일명 '미친 토끼' 간판
▲ 타이니 앨리스 입구의 간판 타이니 앨리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일명 '미친 토끼' 간판
ⓒ 이형석

관련사진보기


- 소극장 이름이 '타이니 앨리스'인데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타이니(tiny)는 아시다시피 '작다'는 뜻입니다. 제가 너무 키가 작아서 (별명이) 타이니입니다.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내용 중에 앨리스가 (현실 세계에서) 뚝 떨어지는데, 그리고 토끼를 만나서 막 따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뚝 떨어지면, 이상한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죠. 저는 말하자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존재입니다. 타이니 앨리스는 저의 별명인 타이니와 제게 영감을 준 동화 속 인물인 앨리스를 합쳐서 작명한 것입니다."

- 말씀을 들어보니 선생님이 10대였던 문학소녀 시절,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이 굉장히 강하셨던 것 같아요.
"보통 사람처럼 열심히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웃음) 저는 늘 어딘가를 꿈꾸는 사람일 겁니다."

-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토끼에 꽂히신 건가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오사카에 있는 소노다 여자대학에서 1982년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때 수업이 끝나면 싼 심야버스나 혹은 신칸센을 타고 타이니 앨리스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그것이 마치 일상생활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오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상한 나리의 앨리스>의 토끼는 소극장 입구의 작은 광고판뿐만 아니라 타이니 앨리스 페스티벌의 모든 인쇄물에 트레이드마크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미친 토끼는, 연극에 대한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의 순도 높은 집념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집념이 목표달성을 위한 미끼, 토끼라는 사물에 투영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무대라는 '실전'의 세계를 거치지 않은 그녀의 페르소나가 이 토끼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3월 29일, 모든 정기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 당시. 축사를 하는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
▲ 타이니 앨리스에 모인 한일 연극인들 3월 29일, 모든 정기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 당시. 축사를 하는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
ⓒ 이형석

관련사진보기


- 지난 30년 동안 사비까지 들여서 우리나라 연극인들을 초청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서양식의 연극은 많이 봤습니다. 견문을 좀 더 넓히기 위해서 시야를 외부로 돌렸는데 그때 싼 항공료로 갈 수 있는 나라가 서울하고 북경이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해 한국 연극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이 한국 연극에 대한 깊은 관심을 끌게 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 대학로를 자주 찾아가곤 했습니다. 어두운 밤에 북을 치고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마 항의를 하는 마당극이었을 겁니다. 그때 이현화라는 작가가 쓴 연극을 봤습니다. 제목은 생각이 안 나는데 역사극이었어요. 서양 연극에만 심취되었던, 즉 지식과 교양으로 제가 보고 접해왔던 연극과 달랐습니다. 그 당시 군사 정권하에서의 한국연극은 그 무렵의 현재를 그렸습니다. '아, 이들의 연극이 지금을 그리고 있구나'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윤택 선생님 연극을 보면서도 재미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타이니 앨리스 극장을 처음 만든 반려자 미와와 함께 봤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달리던 차가 고장 나서 한 여자가 내리는데, 그녀가 내린 곳에서 무당이 신들리고 쓰러지는 내용이었습니다. 설정된 무대가 38도 경계선이었죠. 거기서 넘어진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막 일어나는 나라의 현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정치적 배경, 그런 복합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무엇인가를 염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국 연극만의 재미를 느꼈습니다.

또 부러웠던 점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전통 예능은 노(能, のう. 14세기에 시작된 전통 연극으로 일본 국내에서 전개되는 정치와 사회 변화를 상징하는 고유 양식)처럼 부자가 육성해왔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 마당극은 서민들이 키우고 즐겨왔습니다. 그래서 '아, 이건 참 좋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연극만 모셔왔던 것이지요. 저는 나라와 나라의 관계는 싫어합니다. 도시와 도시를 좋아하고 미지의 재능을 발견하고 만나는 것이 행복합니다. 인위적이지 않지만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우연적인 만남이 좋습니다."

- 초대했던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한국의 연극과 연극인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너무 많아서... (웃음) 굳이 꼽자면, 오태석 선생님 작품 중에 여섯 번째였나? 몸을 이용해서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표현한 게 있습니다. 서민들의 생활, 못사는 사람들을 그렸던 것이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재미있었습니다. 또 제목은 생각 안 나는데, 대학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롱런을 한 작품이 있습니다. 남자가 광대 같은 예능을 계속 보여주면서 손님들한테 뭘 받기도 했던…."

"한국 연극, 사회에 대한 관심이 강하다"

- 혹시 <품바>를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요?
아, 맞아요. <품바>. 그 다음에 여자(배우)가 <품바>를 한다고 해서 보러 갔을 때는 그렇게까지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했던 품바가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품바>는 김시라의 각본과 연출로 1981년 초연한 1인극이다.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자유당 말기까지 전국을 떠돌며 살다가 전남 무안 걸인촌(乞人村)에 정착한 각설이패 대장 천장근의 인생 역정을 각설이타령과 구전민요, 재담, 익살스러운 몸짓과 춤사위로 풀어냈다. 1인 14역을 맡은 각설이의 구수한 입담과 타령, 고수의 신명 나는 장단, 관객을 참여시키는 마당극 형식, 정치풍자 등이 어우러져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 각설이가 나와서 하는 그 연극, <품바>의 무엇이 그렇게 선생님께 와 닿으셨나요?
"광대가 가지고 있는 예능의 본질을 느꼈습니다."

니시무라 선생님은 한국 연극의 기원과 뿌리는 굿이라고 말했다. 그건 한일 연극 교류 코디네이터인 마정희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광대의 의미를 넓게, 우리 연극의 기원과 뿌리인 굿에 대한 포괄적인 용어로 받아들였다.

- 일본에도 우리나라의 각설이와 같은 광대가 있습니까?
"물론 일본에도 다양하게 많습니다. 하지만 <품바>에서 돈을 달라고 하는 그런 식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많죠."

- 선생님이 보시기에 일본 연극과 한국 연극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먼저 한국 연극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 강한 것 같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지금을 보려고 하는…. 제가 그런 작품을 좋아해서인지 의식적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연극인들한테 그런 것을 훔치라고 주문합니다. (웃음) 둘째로 배우의 연기가 일본 배우들보다 굉장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연기 수준, 굳이 꼬집어 말한다면 어떤 의미일까요?
"한국은 연극을 가르치는 대학이 거의 50개에 육박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했기 때문에 제대로 연기훈련이 된 것 같습니다. 반면, 일본은 대학에 연극학과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언더그라운드 시어터'라는 것이 붐을 이루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연기를 정말 못하는 배우들이 나와 재미없는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익살'이 있었습니다. 이는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의 결과였습니다."

만주전선에 대한 관객과의 대화
▲ 관객과의 대화를 주관하는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 만주전선에 대한 관객과의 대화
ⓒ 이형석

관련사진보기


- 일본과 우리나라의 배우와 극작가 그리고 연출가를 비교했을 때, 선생님이 보시는 각각의 특징을 알고 싶습니다.
"신극은 '서양의 연극을 어떻게 잘 무대화하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주전선> 같은 작품은 1943년을 그렸다가 중간에 다시 오늘로 돌아오고, 또 과거로 돌아갑니다. 신극은 이렇게 안 합니다. 새로운 연극을 시도하고, 소설을 풀어나가듯이 설명하는 연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앙그라 연극(언더그라운드 연극)에서 일종의 도전 정신이 좀 없어진 것 같습니다.

(한국) 배우들 것을 훔치라고 종종 일본 배우들한테 말하면서, 동시에 부탁하는 게 있습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이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잘 알라고 주문합니다. 옛날에는 유명한 작품을 유명한 연출가가 연출하고, 배우는 그것을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만 했습니다. 그 이후에 극작과 연출을 같이하는 연극으로 변해왔습니다. <집을 떠나서>를 공연한 극단 '반'의 박장렬씨 라든가 '골목길'의 박근형씨 같은 경우는 극작과 연출을 겸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연극을 일본인들한테 보여주면서, 많이 훔치고 공부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후아이엠>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니시무라 히로코, #타아니 앨리스, #크레이지 레빗, #인터뷰, #연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