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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경기 반대 시위에 모인 사람들
 투우경기 반대 시위에 모인 사람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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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그녀에게>에 나오던 여자 투우사,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였던 투우 경기장. 작가 헤밍웨이가 열광했다는 바로 그 '투우경기'는 스페인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하나의 상징이다.

4월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투우경기 시즌이 시작됐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현지인뿐 아니라 다른 지역 투우 마니아와 관광객들도 투우경기장을 많이 찾고 있다. 그렇다면, 스페인 사람은 누구나 투우경기를 좋아할까? 그렇지 않다. 투우경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지난 18일 오후 5시, 스페인 세비야의 한 광장에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관광객 기념품으로 파는 티셔츠에 그려진 투우그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투우(소)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각자 준비한 피켓을 들고 나온 이들은 바로 투우경기 반대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사람이었다. 이날 집회는 스페인 '동물보호 정당(Partido animalista)'이 주최했고 동물보호시민단체, 투우반대단체 등 여러 단체와 개인들이 참여했다.

시위 현장에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나온 라우라(30·여)씨는 "투우장은 경기장이 아닌 고문장이다"라며 "투우를 가장 부끄러운 스페인 전통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투우경기는 전통이 아니라 동물학대일 뿐이다"라며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보존 가치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잔인하다"라고 덧붙였다.

두 달간 세비야에 머물 예정이라는 스위스 여성 안느(55·여)씨는 스위스의 '동물권리협회'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는 우연히 SNS를 통해 집회소식을 듣고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스위스 관광객들도 "투우를 많이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처음에는 투우경기가 무엇인지 모르고 단지 호기심으로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점점 커지는 스페인 내 '투우 반대' 목소리

'투우경기 폐지', '부끄러운 일' 등 나름의 구호를 들고 투우반대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
 '투우경기 폐지', '부끄러운 일' 등 나름의 구호를 들고 투우반대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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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경기장에 입장하는 관람객들
 투우경기장에 입장하는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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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페인 투우경기에 대한 찬반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마드리드나 안달루시아에선 아직 투우경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지만, 카탈루냐 자치주는 2012년부터 동물학대라는 이유로 투우경기를 금지했다. 카나리아제도에서도 금지된 상태다. 매년 투우경기 시즌이 되면 경기가 열리는 각 지역에선 반대 시위도 이어진다.

세비야에선 지난 4월 첫 주에 투우경기 시즌 시작에 앞선 행사로 2회에 걸쳐 지역 초등학생 800여 명을 대상으로 투우경기 시범교육을 진행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6, 7세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투우경기, 즉 동물을 죽이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라는 의견과 '전통교육의 하나'라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섰다.

이날 시위대는 본래 투우장까지 행진할 계획이었지만 경찰의 저지로 가는 길목마다 멈춰야 했다. 투우장으로 가는 길이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고 마침 투우경기가 시작되는 시간이라, 투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시위대를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문득 그 시간 투우경기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궁금하여 시위 장소와 200m쯤 떨어진 경기장에 가 보았다.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경기장은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다. 바로 200m 밖에서 반대 시위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투우장을 찾았고, 투우경기를 중계하기 위한 방송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세비야 인근 지방에서 취재를 왔다는 마누엘(47·남)씨는 "스페인엔 여전히 투우경기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다"라며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흥미를 잃고 투우경기를 보러 가지 않게 되기 전엔 투우경기가 사라지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우 경기가 열리는 지역서 죽는 투우 수, 상상초월

관광객용으로 마련된 포토존에서 한 관광객이 투우사 복장에 얼굴을 대고 사진을 찍고 있다.
 관광객용으로 마련된 포토존에서 한 관광객이 투우사 복장에 얼굴을 대고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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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 경기를 보기 마드리드에서 왔다는 카를로스 가족에게 투우경기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들은 "스페인은 투우경기이다"라며 "투우경기를 반대하는 것은 스페인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위대를 달갑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던 안토니오(31·남)씨는 "투우경기가 없어지면 투우 종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라며 "투우를 기르는 데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투우경기를 명목으로 국가가 지원하지 않으면 개인이 투우를 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한 여성이 "결국 죽이기 위해 종을 유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라며 반박하여 잠깐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가장 부끄러운 전통과 가장 스페인다운 전통이라는 의견 사이에 동물학대라는 주장과 동물 종을 보존하자는 목소리가 엉켜 있다. 투우경기 찬반 논란은 아무래도 쉽게 답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투우경기는 한 번 경기가 열리면 30분 단위로 6경기가 열리고, 6마리의 투우가 죽는다. 시즌 당 20경기가 넘는 투우경기가 열리니, 한 지역 투우경기 시즌에 적어도 100마리가 넘는 투우가 죽는다고 보면 된다. 투우의 죽음을 예술이나 전통과 결부하는 이들에게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이유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스페인, #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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