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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655 미터, 고선지 장군의 길을 넘다
▲ 당신에게 실크로드 21 - 파미르 고원 해발 4655 미터, 고선지 장군의 길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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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길을 잃은 날

".....?"

어두침침한 집안에 기우는 해가 비스듬히 들어온다. 할머니는 옹이 진 손마디로 연신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문제는 아까부터 뭔가를 계속 물어보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눈만 깜박거리고 있자 그녀는 다시 천천히 물었다.

단어들은 내게 어떤 실마리도 던져주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졌다. 눈치를 살피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봤다. 할머니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한다. 잘못 찍었구나 싶어서 이번엔 다시 고개를 크게 끄덕여봤다. 그러자 이번엔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더니 어딘가로 향한다. '또각또각' 곧 부엌에서 도마질 소리가 들렸다. '아아...' 한숨이 나왔다. '배고프냐는 질문이었구나' 그나저나 배부른데 또 밥을 먹어야하나 싶다.

랑가르에서 만난 파미르 사람들
▲ 파미르 할머니와 손녀 랑가르에서 만난 파미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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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키스탄, 랑가르(Langar). 파미르고원의 와칸밸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오전에 일행들과 산을 타다가 일행을 놓쳤다. 어차피 나무 하나 없는 돌산이어서 길을 헤맬 염려는 없었다. 일단 산에서 내려와 숙소라고 생각되는 방향을 향해 걷던 중이었다.

숲이 없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아래로 내려가면 일단 마을.
▲ 랑가르 동네 돌산 숲이 없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아래로 내려가면 일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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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져서 식당이나 가게를 찾아봤으나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현지인들에게 식당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러더니 날 어디로 데려간다. 이끌려 간 곳은 식당이 아니라 한 학교였다. 학교 교장선생님은 날 교실에 앉히더니 양념이 되어 있는 밥과 렌즈콩(lentil)을 줬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밥을 먹었다. 꺼끌꺼끌한 느낌이어서 먹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식사를 해결하고 다시 숙소를 찾아 나섰다.

이번엔 영어를 할 줄 아는 중학생 소녀를 만났다. 자기 집에 초대하고 싶단다. 그렇게 그녀 집에 갔더니 또 한 상이 차려나왔다. 차와 과자, 요구르트, 우유에 적신 밥, 그리고 달걀프라이였다. 이 척박한 파미르 고원에서 달걀프라이라니... 황송했다. 포크로 살짝 찔러만보고 차마 먹지는 못했다.

좀 여유가 있는 집에서 차려내온 음식들.
▲ 파미르의 진수성찬 좀 여유가 있는 집에서 차려내온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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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시장도 차를 타고 3~4시간은 가야한다. 주식은 쌀과 렌즈콩, 그리고 감자다. 마을에 단 두 개 구멍가게가 있고 쌀부터 과자, 옷가지, 신발 등을 팔고 있었다. 맥주가 두 병 남아있기에 얼른 사버렸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 돈을 벌러갔고 마을엔 여자와 아이들만 남아있었다.

사실 이런 곳에서 무언가를 얻어먹는 것조차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파미르 사람들은 낯선 이가 지나가면 일단 대접부터 하고 싶어했다. 이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대문을 나오는 할머니를 향해 웃어보이자 그녀는 대뜸 내 손목부터 잡았다.

그렇게 이끌려간 할머니의 집. 전형적인 파미르 전통가옥이다. 그녀는 나를 위해 텔레비전을 틀어주고 차를 내어줬다. 나도 최선을 다해 방문객의 역할에 충실했다. 집안을 둘러보며 할머니가 만든 자수 벽걸이에 감탄하고, 스마트폰의 한국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할머니 손녀 기저귀도 함께 갈았다. 그리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그만 일어나려는데 이번엔 밥을 준비하러 가신 거다.

잠시 후 할머니는 큰 접시에 밥 그리고 양념된 감자를 담아왔다. 감자 위엔 작게 썰린 쪽파와 러시아 샐러드에 주로 쓰이는 허브인 딜이 얹혀있었다. 접시 하나를 두고 할머니와 마주 먹는데 할머니가 내 숟가락에 감자를 얹어준다. 본인도 한 숟가락 드셨다. 그리곤 그 숟가락으로 밥상 아래 고양이한테 밥을 먹인다. 고양이가 찹찹 소리를 내며 밥을 먹었다. 그러더니 고양이가 먹던 그 숟가락으로 다시 내 숟가락에 감자를 얹어주었다.

두 사람 먹는데 접시는 하나. 숟가락은 세 개.
▲ 할머니의 저녁식사 두 사람 먹는데 접시는 하나. 숟가락은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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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가 먹을 때까지 날 보고 있었다. 어찌하리. 그냥 먹는 수밖에. 나도 고양이처럼 찹찹 소리를 내며 감자를 먹었다. 감자는 적당히 양념이 되어있고 입안에서 분처럼 녹았다. 내가 먹는 것을 보고 그녀는 만족한 듯 소리 내어 웃었다. 어쩐지 느긋한 기분이 되었다.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넘다

파미르 고원. 차는 해발 4655미터를 지났다. 아크바이탈 고개다.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이곳, 평균 7000m의 만년설 봉우리들이 깨진 수정처럼 솟아 있었다. 고산증을 염려했지만 조금 머리가 아픈 것 외엔 별 문제가 없었다. 단지 걸을 때 조금 다리가 꺾여서 천천히 걷게 되었다. 꿈속에서처럼 말랑말랑한 땅을 밟는 느낌이었다.

한때 고선지 장군이 넘었던 길이다. 서기 747년, 고선지 장군은 보병 1만 명과 기병을 이끌고 서역정벌에 나섰다. 그리곤 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힌두쿠시 산맥의 토번을 격파했다.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북부의 소발률을 비롯한 서역 72개국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 승리는 당나라의 영향을 서아시아 일대까지 퍼지게 하였다. 영국의 고고학자 오럴 스타인은 "고선지의 원정은 한니발과 나폴레옹의 업적을 뛰어넘는 것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해발 4655 아크바이탈 고개가 가장 높다. 길은 예상외로 평탄한 수준이었다.
▲ 파미르 하이웨이 해발 4655 아크바이탈 고개가 가장 높다. 길은 예상외로 평탄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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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키르기스스탄 오쉬를 출발한 차는 국경과 검문소를 넘어 오후 8시, 타지키스탄 무르갑(Murgab)에 도착했다.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지만, 중간에 키르기스스탄 국경마을인 사리타쉬(Sarytash) 에서 데모가 있어서 차가 넘어갈 수 없었다. 구금되어 있는 지역의원을 석방해달라는 데모라고 했다. 데모를 하는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천진하게 웃으며 우리들에게 먹을 걸 나눠줬다. 데모대를 지나 국경에서 만난 타지키스탄 군인들은 인도 사람들처럼 눈이 반들반들 빛나고 얼굴이 검었다. 아리안의 후예들이다.

해발 3650m의 무르갑에서 1박한 후, 다시 길을 떠났다. 몇 시간을 달려도 그늘을 피할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곳에도 사람들은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강한 햇살과 바람을 피하기 위해 스카프로 온 얼굴을 가린 채로. 잠시 들른 마을에서 마을 소년이 우물물을 길어주었다. 두레박이 내려가며 얼음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물을 마시고 다시 풍경을 바라보자 눈이 쩡하고 아프다. 화성에 간다면 이런 느낌일까. 다시 황량한 길을 달렸다. 저 멀리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칸밸리다.

수목한계선을 훨씬 넘은 이런 곳에도 사람들은 마을을 짓고 살고 있다
▲ 파미르 고원의 마을 수목한계선을 훨씬 넘은 이런 곳에도 사람들은 마을을 짓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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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외선과 강한 바람에 항상 온몸을 가리고 다녀야 한다
▲ 파미르 고원 사람들 자외선과 강한 바람에 항상 온몸을 가리고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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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사진이 걸려있는 그 남자는?

파미르고원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마르코 폴로양의 머리뼈다. 집 안이나 대문, 마을 성스러운 장소에는 어김없이 마르코 폴로양의 머리뼈와 뿔이 장식되어 있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정화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뿔만큼 흔히 볼 수 있는 게 있었다. 한 남자의 사진이었다.

조로아스터를 믿던 시절부터 이어내려온 전통. 정화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 마르코폴로 양의 머리 뼈 조로아스터를 믿던 시절부터 이어내려온 전통. 정화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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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의 어느 집을 방문하든 간에, 한 부유한 남자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타지키스탄 대통령이냐고 물어봤더니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물어보니 시아 이슬람의 분파인 이스마일파의 49대 이맘(영적지도자) 아가 칸(Aga Khan)이다. 그중 한 명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우린 '타지키(타지키스탄 사람을 뜻하는 말)'가 아니야. 우린 '파미리(파미르 사람을 뜻하는 말)'라고. 대통령은 '타지키' 대통령이고" 보드카에 취한 채 하는 말이었지만, '파미리'를 말하는 발음만큼은 정확했다.

시아 이슬람 이스마일파의 이맘 아가 칸. 파미르의 어느 집을 방문해도 아가 칸의 사진이 걸려있다.
▲ 아가칸의 사진 시아 이슬람 이스마일파의 이맘 아가 칸. 파미르의 어느 집을 방문해도 아가 칸의 사진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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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 고원은 고르노-바다흐션 자치주(GBAO)에 속해있다. 타지키스탄 영토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타지키스탄과는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종교도 타지키스탄 사람들은 수니 이슬람을 믿지만 파미르 사람들은 시아 이슬람을 믿는다. 심지어 시간도 다르다. 파미르 고원은 키르기스스탄 시간을 따르다보니, 타지키스탄 시간과는 1시간 차이난다

구소련이 무너진 후, 타지키스탄 내 구 공산당세력과 파미르 지역을 중심으로 한 UTO반군과의 내전이 있었다. 당시도 대통령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대통령인 라흐몬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도움으로 내전을 제압했으나, 지금도 이 지역에 대해선 완벽한 통치권을 가지진 못했다. 

스스로를 '파미리'라 창힌다. 낯선 이에게 경계가 없고 늘 친절하다.
▲ 파미르 고원 사람들 스스로를 '파미리'라 창힌다. 낯선 이에게 경계가 없고 늘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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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아가 칸이 이 지역의 정신적인 지도자다. 그는 이곳 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북부의 절대적인 신망을 얻고 있다. 내전 당시 고립되었던 파미르 사람들에게 헬기로 식량을 공급했던 이도 아가 칸이다. 그는 아가 칸 재단을 설립해 이스마일파 사람들에게 교육, 금용, 보건 등 체계적 지원을 하고 있다.

파미르 지역이 다른 타지키스탄 지역보다 영어나 독일어를 하는 사람이 많은 건 그 이유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랑가르에서 영어를 하는 여학생을 여럿 만났다. 물어보니 이스마일파는 여성교육에도 적극적이라고 한다.

간단하게나마 영어를 할 수있는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 파미르의 아이 간단하게나마 영어를 할 수있는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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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우주가 담겨있는 파미르 집

랑가르를 여행하는 법은 단순하다. 천천히 토담을 따라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괜히 구멍가게에 가서 물건도 뒤적거려본다. 마을 박물관 앞은 반드시 동네 꼬맹이들 사진을 찍어줘야 통행이 가능하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굴렁쇠도 함께 굴려보고, 당나귀도 얻어 타면서 놀고 있으면 누군가 집으로 초대하곤 했다.

랑가르에서 만난 굴렁쇠.
▲ 굴렁쇠 굴리는 소년 랑가르에서 만난 굴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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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 사람들의 삶과 믿음은 그들이 사는 집에 드러난다. 조로아스터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이슬람 문화와 섞여있다. 파미르라는 말 자체가 조로아스터교의 천사인 '미트라의 발(Feet of Mitra)'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어느 집이나 반드시 방안에 5개의 기둥이 있고, 3면에 마루가 있다. 그 마루가 온 가족의 생활공간이다. 그중 중앙에 위치한 마루에는 우리나라 온돌처럼 불을 피우고 요리를 할 수 있는 설치가 되어 있었다.

이 건물은 랑가르의 박물관 건물이다. 파미르 집안 구조와 풍습을 볼 수 있다.
▲ 전형적인 파미리 하우스 이 건물은 랑가르의 박물관 건물이다. 파미르 집안 구조와 풍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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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에 마루가 있고 5개의 기둥이 있다. 여기서 온가족이 생활한다.
▲ 집안 내부 3면에 마루가 있고 5개의 기둥이 있다. 여기서 온가족이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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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운 건 집 중앙에 위치한 초르코나(chorkhona)라고 불리는 천창이다. 그냥 지붕에 뚫린 창문이 아니라 네 개의 사각형이 45도 각도로 교차되며 층층이 지어져있다. 이것은 흙, 물, 공기, 불을 나타내는 조로아스터의 상징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 파미리 집의 천창 초르코나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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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기둥엔 각자 이름과 상징이 있다. 첫 번째 기둥은 태양을 나타내는 조각이 되어있는데, 이는 예언자 모함메드를 상징한다. 두 번째 기둥은 그의 사위 알리, 세 번째는 딸 비비 파티마, 그리고 나머지는 그들 부부의 아들인 하산과 후세인을 뜻한다. 물론 이슬람화 이전엔 조로아스터 다섯 신들의 상징이었다.

과거엔 조로아스터교를 믿고 지금은 이슬람교를 믿지만, 이곳에 한때 불교의 유입도 있었다. 랑가르 마을 뒷산에 올라가면 암각화가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이곳에 큰 뿔이 있는 동물과 말을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새겨놓았다. 그리고 몇 천 년이 지나 불교가 들어오자 이번엔 불교의 법륜이 이곳에 새겨졌다.

법륜이 안감화로 새겨있는 것으로 이 지역 불교유입을 알 수 있다.
▲ 파미르에 남아있는 법륜의 흔적 법륜이 안감화로 새겨있는 것으로 이 지역 불교유입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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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천 년 후엔 이 또한 역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 새로운 역사로 남을 낙서 몇 천 년 후엔 이 또한 역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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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 천 년이 흘렀다. 이번엔 러시아 문자가 새겨졌다. 2002년에 새겨진 낙서를 봤다. 아마 '누가 누구를 영원히 사랑한다', 혹은 '우리 우정 영원하자'는 내용일 것이다. 유적지가 훼손되었다고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몇 천 년이 지나 누군가가 이 낙서를 보고, 21세기 이곳 풍속을 짐작해보는 상상을 해봤다. 지나고 나면 이 모든 것이 파미르의 역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블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타지키스탄, #파미르, #파미르고원, #랑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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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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