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녀 농구는 지난 2년간 국제무대에서 모처럼 좋은 성적을 냈다. 2014년 FIBA 농구월드컵 동반 출전에 이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나란히 금메달까지 수확하는 성과를 올렸다. 농구대표팀에 쏟아지는 뜨거운 반응을 통하여 아직 농구 인기가 충분히 살아있다는 것도 확인했고 그만큼 국제경쟁력의 중요성도 절감했다.

하지만 국내 농구계는 지난해의 상승세와 교훈을 꾸준히 이어가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올해는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있는 남녀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잇달아 열린다. 한국농구는 지난 2012 런던올림픽 본선에 남녀 모두 탈락했다. 특히 남자 농구는 1997년 프로 출범 이후로는 한 번도 올림픽 본선에 나가보지 못한 창피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지난 FIBA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대표팀의 국제 경쟁력이 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정작 올해 한국농구의 올림픽 준비 과정은 상당히 암울해보인다.

구체적인 계획도 아직 안 나와.... 올림픽 준비 과정 '암울'

가장 기본적인 감독 선임에서부터 선수 구성, 훈련 일정 등 구체적인 계획이 하나도 나와있지 않다. 남·녀 대표팀 운영을 전담하는 국가대표 운영위원회(강화위원회)가 아직 구성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자의 경우, 2년간 대표팀을 맡아온 유재학 감독이 조심스럽게 고사 의사를 밝히며 감독 선임도 미궁에 빠진 상황이다. 아시아 경쟁국들이 대부분 몇 년전부터 아시아선수권 우승과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대표팀을 관리해온 것과 비교할 때 뒤처져도 너무 뒤처졌다.

일각에서는 농구계가 사실상 '본선 진출 가능성도 낮고, 나가봐야 성적을 내기 어려운 올림픽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 남자농구는 마지막 올림픽 본선무대였던 1996년 애틀란타 대회에서 7전 전패에 그쳤다. 이후 베이징올림픽과 런던올림픽 최종예선(각 2패), 지난 2014 농구월드컵 조별리그 전패(5패)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무대만 벗어나면 힘을 쓰지 못했다.

그래도 여자 농구의 경우, 2010년까지만 해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꾸준히 8강권의 성적을 올리는 등 남자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다. 하지만 날로 열악해진 선수층 속에서 몇 년째 세대교체를 미루며 노장 선수들에 의존해온 부작용이 깊어지면서 그녀들의 빈 자리를 메워야하는 부담은 오히려 남자보다 더 크다.

농구계도 나름의 사정은 있다. 대표팀 운영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대한농구협회와 KBL-WKBL 간의 공조 체제가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표팀은 농구협회의 소관이지만, 어차피 성인 대표팀을 구성하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모두 프로에 속해있다.

농구협회의 예산과 재정 능력은 한계가 있는 탓에 KBL과 프로 구단들의 지원없이는 대표팀을 유지해나가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올해는 성인대표팀 외에도 연령대별 대표팀과 군인선수권 대회까지 열리다보니, 농구협회는 빠듯한 일정에 인력과 비용 부담은 더욱 늘어난 상황이다.

아무래도 행정 기구가 분리되어 있다보면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고,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추진해나가기도 어렵다. 국제 대회가 있을 때만 잠깐 연대하다가 끝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리니 대표팀 운영의 연속성이 이어질 리도 만무하다. 한때 농구협회와 KBL이 대표팀 운영의 주도권을 놓고 한창 갈등을 벌이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한국농구의 국제 경쟁력이 막장까지 치닫기도 했다.

하지만 대표팀을 둘러싼 이러한 상황은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다. 벌써 수년 넘게 되풀이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임에도 아무런 대안을 마련하려는 시도 자체도 없었다는 게 더 심각하다.

아시안게임 남녀 동반 금메달, '독사과' 될 수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동반 금메달이 안겨준 짧은 환희를 남겨두고 그 뒤로 대표팀 운영은 '올-스톱'됐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아시아선수권과 올림픽 준비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찾을 수 없었다. 당시에도 현안으로 제기됐던 대표팀 전임감독제와 A매치 평가전 상설화, 귀화선수 영입 문제 등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한국농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기적인 비전'의 부재다. 아시안게임처럼 그나마 우승 가능성이 있고 미디어 주목도가 높은 종합 대회가 임박할 때만 반짝 성적에 연연할 뿐, 근본적인 국제 경쟁력 강화나 농구 발전에 대한 치밀한 기획은 찾을 수 없다. 이런 근시안적인 전략으로 한국농구의 인기 회복과 국제 대회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을 넘어 망상에 불과하다.

역사는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다. 묘하게도 현재 한국농구가 처한 상황은 13년 전과 매우 흡사해보인다. 2014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영광도 언제든 한국농구에 독사과로 돌아올 수 있다.

한국농구는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중국을 꺾고 20년 만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만 해도 농구의 인기가 아직 살아있던 시절이었고,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성적까지 냈으니 그야말로 한국농구의 르네상스가 올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한국농구의 암흑기가 시작됐다. 아시안게임 반짝 우승에 도취되어 있는 동안 대표팀의 세대교체와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고민들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절치부심한 중국과 중동농구의 성장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결국 한국농구는 이후 한동안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잇달아 역대 최악의 성적을 경신하는 '참사'를 맛봐야 했다.

2002년과 2014년 아시안게임 우승의 성과는 값졌지만, 그 과정은 보다 냉철하게 돌아봐야할 필요도 있다. 두 대회 모두 안방에서 열린 대회였고 그만큼 우리가 가진 실력과 준비한 이상의 운도 많이 따라줬다.

한국농구가 결승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중국과 이란을 제쳤지만 전력상 10번을 붙으면 7~8번은 지는 게 더 정상이었던 상황이다.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고배를 마셨던 라이벌팀들은 현재 차기 올림픽을 목표로 독기를 품고 있다. 한국은 아시안게임 이후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세대교체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도 닮은 꼴이다. 여자농구 역시 지난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노장 선수들이 대거 대표팀 은퇴를 결정하며 당분간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한다.

전쟁의 승패는 전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판이 나고, 전투는 그 결과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까지 한국농구의 상황을 보면 모든 면에서 2002년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준비 과정만 봐도 이번 올림픽 출전에 대한 기대감 역시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아쉬운 점은 이번 올림픽에 못 나가는 것보다도, 대표팀과 한국농구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이라도 과연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지난 아시안게임의 추억도, 한국농구의 부활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저 기울어져가는 석양의 회광반조(廻光返照)로 그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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