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정범모, 3점포 작렬 31일 오후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넥센과 한화의 경기. 2회초 1사 1, 2루 상황에서 한화 정범모가 3점홈런을 친 후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2014.7.31

한화 정범모 ⓒ 연합뉴스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뼈아픈 대패를 당했다. 한화는 지난 21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LG 트윈스와의 경기에 0-10으로 대패했다.

사실 이날 경기는 결과보다 5회 벌어진 한화 포수 정범모의 황당한 본헤드 플레이가 더욱 화제가 됐다. 한화는 LG에 0-2로 끌려가던 5회 다시 2사 만루의 위기를 맞했다. 한화 선발 쉐인 유먼은 LG 이진영과 풀카운트 접전 끝에 6구째 던진 공이 포수 정범모의 미트에 꽂혔다. 스트라이크 아웃을 확신한 정범모는 심판의 판정이 내려지기도 전에 이닝이 끝난 줄 알고 공을 1루수 김태균에게 던진 뒤 덕아웃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정작 심판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볼넷으로 LG가 밀어내기 추가 득점을 올린 가운데 경기는 아직 인플레이 상황이었다. 정범모가 성급하게 자리를 떠나면서 홈플레이트가 빈틈을 타 2루 주자 정성훈이 그대로 홈까지 내달렸다. 유먼이 다급하게 커버플레이를 들어왔지만, 정성훈의 슬라이딩이 더 빨랐다. 1점으로 그쳤어야 할 실점이 순식간에 2점으로 늘어나며 점수 차는 0-4까지 벌어졌다. 사실상 이날 승부의 분수령이었다.

한화 입장에서는 유먼의 투구가 볼로 선언된 판정이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심판의 판정을 확인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자리를 비운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정범모의 명백한 본헤드 플레이였다. 승부의 가장 중요한 고비에서 초등학생이나 할 법한 어리석은 실수였다.

정범모 실수로 떠오른 하나의 데자뷰

정범모의 실수는 무려 18년 전인 1997년 8월 23일 대구에서 열린 쌍방울-삼성전의 데자뷔를 연상케 한다. 공교롭게도 현재 한화 사령탑인 김성근 감독은 당시 쌍방울의 수장이었다는 점에서 묘한 인연의 연결 고리가 있다. 다만 18년 전에는 김 감독이 본헤드 플레이의 수혜자였다면 이번에는 정반대로 피해자가 되었다는 점도 얄궂다.

당시 4-2로 앞선 삼성의 9회초 마지막 수비 2사 1·2루 기회를 얻은 쌍방울은 마지막 타자였던 장재중이 투스트라이크 원볼에서 헛스윙을 한 바 있다. 심판은 곧바로 스트라이크 아웃과 함께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그러나 경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공이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바운드 되면서 스트라이크 낫아웃 상황이 됐다. 규정상 타자를 태그하거나 1루수에게 공을 던져 베이스를 밟았어야 했다. 곧바로 김성근 당시 쌍방울 감독이 뛰어나와 무려 10분 가까이 격렬하게 항의하면서 결국 4심 합의 끝에 판정이 번복되면서 장재중은 삼진을 당하고도 1루로 살아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삼성 측으로서는 당시 삼진을 잡은 직후 삼성 포수 김영진이 경기가 끝난 줄 알고 곧바로 공을 관중석에 던져버린 뒤라, 장재중을 아웃시킬 수 없었던 게 결국 뼈아픈 결과를 초래했다. 마침 그날 따라 경기가 더블헤더로 치러지던 시절이라 경기가 끝났다고 양팀 선수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도 판정이 번복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쌍방울은 기세를 몰아 결국 그날 경기에서 역전승을 일궈냈다. 이 경기는 오심과 본헤드 플 레이의 콜라보레이션(?)이 만들어낸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황당한 역전극 중 하나로 기억된다.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낫아웃 상황을 살려낸 김성근 감독과 쌍방울의 집중력이 돋보인 반면, 삼성은 성급한 판단으로 다 이긴 경기를 그르친 것이 두고두고 뼈아팠다.

당시 관중석에 성급하게 공을 던진 삼성 포수 김영진은 패배의 원흉으로 몰렸지만, 엄밀히 말하면 스트라이크 낫아웃 상황을 잡아내지 못하고 경기 종료를 선언한 심판의 책임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정범모의 경우는 심판의 판정을 확인하지도 않고 자신의 판단만으로 홈플레이를 비웠다가 대형사고를 초래했으니 김영진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본헤드 플레이라고 할 만하다.

비판 집중 공세... 조인성 빈 자리 절감

정범모는 이날 경기 후 한화 팬으로부터 집중적인 비판 공세를 받아야했다. 사실 이날 정범모의 문제는 본헤드 플레이 하나만이 아니었다. 5회 2사 만루 상황만 해도 이전 LG 오지환에게 도루를 2개나 연속 내준 데서 비롯됐다. 7회에도 대주자 윤진호에게 도루를 내줬다. 상대 주자의 도루 타이밍을 전혀 읽어내지 못했다. 선발 유먼이 초반부터 제구에 애를 먹는 가운데 투수 리드와 볼 배합도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정범모는 승부가 기운 7회 허도환과 문책성 교체를 당하며 덕아웃으로 물러나야 했다.

정범모는 본래 한화의 주전 포수는 아니었다. 2012년부터 차츰 출전 경기수를 늘리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경험이 더 필요한 20대 포수다. 한화는 전임 김응용 감독 시절 지난해 SK로부터 베테랑 조인성을 영입했다. 조인성이 올 시즌을 아두고 부상으로 3개월간 전열에서 이탈하게 되자, 김성근 감독은 넥센과 트레이드를 통해 허도환을 영입하기도 했다. 정범모만으로 안방을 믿고 가기에는 아무래도 불안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성근 감독은 정범모를 주전으로 꾸준히 기용하며 신뢰감을 보여줬다. 하지만 정범모는 올 시즌 17경기에 나서서 타율 .143에 그쳤고, 도루 저지율에도 1할대를 밑돌며 오히려 지난해부터 모든 면에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많은 이는 한화의 최대 취약 포지션으로 포수 자리를 꼽고 있다. 여기에 이날 결정적인 본헤드 플레이로 패배의 빌미까지 제공하며 정범모는 당분간 한화 팬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히게 생겼다. 정범모의 부진은 모든 면에서 조인성의 빈자리만 절감하게 만들었다. 김성근 감독은 정범모의 실수를 바라보며 18년 전 삼성전의 그날을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 편집ㅣ조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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